이현호 에세이
애정하는 글쓰기 동료들과 매월 한 권의 책을 정해 매일 계획한 분량만큼 읽고 본인이 적고 싶은 부분만 필사한다. 2022년 1월의 책은 이현호 시인의 에세이 ‘방 밖에 없는 사람, 방 밖에 없는 사람’.
이 책을 한 문장으로 정의한다면,
가볍지만 가볍지 않은 책’ 즉, ‘읽을 때는 깃털이 살랑이는 것처럼 가볍지만 읽고 나서는 묵직한 사유거리를 툭툭 던져주는 책’
으로 할 수 있겠다.
작가 주변의 사물과 일들(대부분 방에서 경험하는)로 부터 다양한 주제를 뽑아내고 엿가락을 늘였다 줄이듯 생각을 우주까지 확장했다 다시 집안으로 좁히는 탁월한 사유의 감각을 보여준다. 글쓰기에 욕망이 있는 사람이라면 사고의 확장법을 배울 수 있을 만한 책.그렇지 않더라도 가볍게 혹은 진지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방의 주인>
“내 방의 주인은 어둠이다. […] 은근하게 어슴푸레한 방에서 우리는 사이가 좋다. 외출이라고 했다가 돌아오는 날이면, 문 앞까지 마중 나온 어둠은 어디를 갔다가 이제 오느냐며 시커먼 두 팔을 벌리고 나를 안아준다.”
<거미의 방>
“언제부터일까, 방 한구석에 거미가 방을 냈다.” 로 시작한 문장은 “괜한 미안함과 죄책감마저 없다면, 나는 인간의 마음을 잃어버릴 것만 같다.” 로 끝난다. 의식조차 하지 않는 ‘어둠’을 포착하고 작은 존재인 거미로부터 시작한 시선을 ‘방, 창밖의 벚꽃, 거미의 자세, 먼 나라 굶주리는 아이들’까지 넓혀간다.
작가는 방에서 지내는 생활을 지겨워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답답하지 않아?’라고 묻는 질문에
“방에만 있다고 해서 삶이 방에 갇히는 것은 아니다. 다른 인생을 살아보고, 또 그 인생을 읽어주는 사람들을 떠올릴 때 내 방은 무한히 확장된다.”.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해가면서까지 부유하게 살고 싶지 않다. 추위에 떨거나 굶지 않는 정도면 된다. 돈벌이에 드는 시간을 최대한 줄이고, 그만큼 자유 시간을 더 누리는 것이 내 행복이다. 누군가의 눈에 나는 미래가 없는 한량으로 보일 것을 안다. 그렇지만 놀고먹는 것이야말로 누구나 꿈꾸는 삶 아닌가. […] 내 시간이 많을수록 나는 풍요롭다.”.
라고 말한다. 모든 이들이 꿈꾸는 삶의 모습은 다르니 동의를 할 수도 안 할수도 있는 내용이지만 첫 번째와 마지막 문장은 ‘밑줄 쫙 별표’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작가와 나의 차이라면 나는 방에만 있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 책도 글도 카페에서 할 때 더 능률적이고 새로운 환경과 여행을 좋아한다. 집에 수영장이 (아직은?) 없으니 수영장도 가야 하고 요가원도 가야 하고, 한 여름 해가 쨍하고 내리쬐는 바닷가에 누워 책을 읽는 것이야 말로 가장 좋아하는 여가이니 바다도 가야한다.(니스해변에서의 빈둥거렸던 경험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간 중 하나니깐) 독서모임도 해야 하고 미술관도 가야 하니 이래저래 밖에서 하고 싶은 것들이 많고 그에 따른 돈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질문은 할 수 있다.
“나는 나의 방을 온전히 소유하고 있나? 즉, 내 시간을 온전히 소유하고 있나?”
스마트폰에는 놀 거리가 셀 수 없을 정도로 풍부하다. 그러나 그 풍성함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홍수가 되어 날 덮치기도 한다. 각종 미디어는 끊임없이 ‘봐야 할 것만 같은, 보고 싶어 지는’ 영상들을 추천해주고 (보기 전에는 없었던) 갖고 싶은, 먹고 싶은, 가보고 싶은, 되고 싶은 것들을 보여준다. 그리고 어느새 나는 핸드폰 세상에 ‘갇혀’ 버린다.
우리가(혹은 누군가는) 새로움에 질식해 버리는 반면 이현호 작가는 방을 통해 오히려 세상을 여행한다. 방밖에 없다고 말하지만 방이라는 우주를 가졌다. 그리고 어쩌면 작가는 자신의 삶의 주인으로서 충실히 그 역할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가 약간은 부러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