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인생책>_목정원 산문
한 문장 한 문장이 주는 사유의 통찰과 울림이 이토록 클 수 있을까? 탄복과 감탄을 금치 못하며 시를 읽는 것처럼 단어와 문장을 그리고 그 사이를 조심스레 읽어 내려갔다. 처음에는 문장의 아름다움과 아득함에 취해 두 번째는 각 주제들이 주는 묵직함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지만 다시 처음으로 돌 아가 무한 되돌이표를 시작해야 할 것만 같았다.
에세이처럼 보이는 이 책은 공연예술학 박사학위를 받고 아름다움에 대한 비평을 쓰는 작가가 경험한 ‘세계라는 작품’에 대한 비평집이다. 머리말에서 말하듯 ‘평생을 배워도 다 알지 못할 세계의 아픔’을 작가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아름다운 언어로 표현한다.
‘모국어는 차라리 침묵'이란 제목으로는 내용을 짐작하기 어렵고 읽고 나서도 어떤 의미인지 확정적이지 않다. 예술 작품의 감상이 관객에 따라 달라지듯이 이 책 역시 하나의 예술 작품을 보는 것처럼 독자 고유의 세계와 상상에 따라 서로 다른 색깔로 파장되어 나간다. 그러나, 삶에서 침묵이 필요한 순간이 언제이고 왜인지 그때 우리는 어떤 성찰을 해야 하는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인간의 삶은 공간에서 펼쳐지고 언어로 사유된다. 그 안에서, 그 방식을 통해 무엇을 어떻게 볼 것인지 택하는 것은 각자의 내밀한 영역이지만 때로는 타인의 시각이 필요할 때가 있다. 그래야 개인의 고정된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이 변화되고 주변을, 세상을 그동안 보지 않은 시선으로 더 세밀하게 밀접하게 지저분한 바닥까지 볼 수 있다.
“단지 자유로운 유럽인의 삶을 침해하는 절대악의 행위로 테러를 간주할 만큼 세상의 선악은 자명하지 않다. 어떤 밑바닥까지 가보면 모든 진실은 모순적이게 마련이지 않던가.”
“여성의 존재는 허다한 비극의 원천으로 사유된다.”
“존재하는 것들을 배제시키고, 완전무결의 허상을 쫓는 일”
“요컨대 <안티고네>만을 공연할 수 있고 <돈 지오반니>를 공연해서는 안 된다고 우리는 말할 수 없다. 우리는 다만 노래를 멈추지 않으면서, 흘러가는 세상 속에서 그것이 어떤 노래일 수 있을지를 끝없이 성찰해야 한다. 계속 노래하라는 말이 누구에 대한 폭력도 아니게 될 때까지”
그렇다면 세계를 보는 ‘시각'을 가진 각자의 역할은 무엇일까? “생각해 보면 사는 동안 사람에게 빚지지 않은 것이 무엇이 있을까”라는 작가의 말처럼 개인은 개인으로 끝나지 않는다. 빚을 지고 빚을 내어주는 관계.
책의 한 주제를 차지하는 장 끌로드 아저씨라는 인물은 '오직 좋은 것을 나누는' 귀한 사람의 모습을 보여준다. 돌려받음을 기대하지 않는 선의와 수고. 나는 누구에게 그런 인물일까?
주체적으로 사유할 때 세상 모든 것에 대한 비평(사물의 옳고 그름, 아름다움과 추함 따위를 분석하여 가치를 논함)이 가능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다음이 필요하다.
내가 반복해 온 행위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면, 앞으로 발생할 또 다른 행위가 나를 바꿀 것이다. 우리는 수행을 통해 새로운 주체가 되고, 어쩌면 세상을 조금 바꿀 수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