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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dupreneur 크리스티나 Sep 28. 2023

공교육 교사의 도전, 그리고 한계

학교란 무엇인가


1. 감정코칭

 교사가 된 첫 해, 내가 들어가는 반에는 감정조절을 어려워하는 학생, 원빈(가명)이가 있었다. 또래보다 키는 작지만 한번 화가 나면 말 그대로 눈에 뵈는 것 없이 격렬한 분노를 표출했다. 의자를 집어던지고, 창문에서 뛰어내리겠다고 소리를 지르고, 친구들과 늘 싸우던 원빈. 아무도 원빈과 친구가 되길 원하지 않았다. 모둠수업을 하다가 말다툼을 하는 것은 예삿일이고, 쉬는 시간에는 이미 친구와 싸워 수업이 시작되었지만, 화를 식히지 못하고 눈물이 그렁그렁한 상태로 씩씩대고 있어 나를 자주 당황하게 했다. 이때부터 아이들의 심리와 감정에 관한 책을 읽고 온라인 연수를 듣기 시작했다.


 교사들 사이에서는 꽤나 유명한 최성애, 조벽 교수의 [청소년 감정코칭]이란 책이 있다. 이 책과 함께 들었던 동 교수의 연수가 이런 학생들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중 기억나는 한 가지 방법은 ‘심장 호흡법’. 화가 있는 대로 나있는 원빈에게 다가가 눈을 맞추고, 부드럽게 이야기하며 천천히 심호흡을 하게 했다. 5초간 들이쉬고 5초간 내뱉고의 반복. 사람의 심장박동은 옆 사람의 박동과 비슷하게 맞춰진다고 하여 나도 함께 옆에서 호흡을 했다. 5분 정도 지나자 다행히 원빈이는 차분해지기 시작했고 수업을 진행할 수 있었다. 원빈에게 화를 내지 않고, 감정을 다독이는 방법을 알려준 시도는 그가 나를 신뢰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이 방법은 지금도 종종 사용한다. 범죄청소년 대상으로 독서수업 봉사를 하고 있는데, 대부분의 아이들이 감정조절을 어려워한다. 작은 친구의 장난도 불씨가 되어 ‘화’의 감정을 활활 타오르게 한다. 그럴 때 행동에 대해 화를 내기보다 일단 괜찮은지 묻고, 천천히 호흡을 하게 한다. 그래도 화가 가라앉지 않을 때는 잠시 걷고 오라고 할 때도 있지만 초기 불씨를 끄는 데는 분명 도움이 된다.


 다시 원빈이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감정 코칭의 방법은 효과가 있었지만 ‘이 아이는 대체 왜 그럴까?’라는 의문이 계속 남아 있었다. 그래서 다른 방법을 더 시도해 봤다. 바로 <힘든 학생의 장점 50가지 써보기> 30분이 넘도록 5가지 써지지 않았다. 그래도 꾸역꾸역(?) 찾아보려 애를 썼고, 결국 끝까지 썼다. 50개를 쓰자 한 가지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원빈이는 체구는 작을지 몰라도 굉장히 큰 에너지를 갖고 있다는 것. 그 큰 에너지가 화로 전환되면 폭발적으로 변한다는 점이었다. 이 통찰 이후 신기하게도 원빈이를 힘들다고 생각했던 나의 초겨울 같던 마음이 눈 녹듯 사라졌다.  벌써 10년 전의 일이다. 원빈은 지금까지 매년 스승의 날이 되면 안부 문자를 보낸다. 잘 지내고 있어 보여 다행이다. 이 학생을 통해 교사는 가르치는 일을 넘어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감정을 이해하고, 적절한 방법으로 반응하며 코칭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배웠다. 끊임없이 인간에 대해 탐구하고 배워야 하는 직업. 그래서 어렵지만 그렇기에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직업이 교사라 생각한다.  


2. 무기력한 학생들 깨우기

 교사가 되기 전, 과외나 학원에서 가르쳤던 학생들은 크든 작든 공부를 하겠다는 동기가 있었기에 무기력하거나 멍한 모습으로 있지 않았었다. 교생실습을 했던 모교의 고등학생들도 교생 선생님에 대한 호기심과 수능 준비의 열망으로 늘 똘망똘망한 눈빛을 보여줬었다. 그러나 첫 발령지인 중학교에서 자거나 무기력한 모습의 학생들을 처음으로 마주하게 되었다. 나름 게임도 하고, 수업자료도 열심히 만들었지만 나 홀로 원맨쇼를 하다 수업이 끝나는 느낌이었다. 아이들의 머릿속에서 학습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알 수 없었다. 돌이켜보니 임용고시 공부를 할 때는 무기력한 학생들에 대해 실질적으로 고민해보지 않았다. 주된 내용도 아니었을뿐더러 교육학 이론 어딘가에 한 두 문장 적혀 있었을 뿐이다.  임용고시는 통과했을지 몰라도, 실제 교실 현장에서 나는 아직 준비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강의식 수업에 한계를 많이 느꼈다. 자라고 멍석을 깔아주는 것과 다름없었다. 한 학기 동안 수업을 하며 다른 수업방법에 갈증을 느끼기 시작했고, 학습방법과 아이들의 심리에 관한 책을 읽고 연수를 듣기 시작했다. 그런 과정에서 여름방학, 당시로서는 새로운 학습자중심수업 방법인 ‘거꾸로교실’ 연수를 참여하게 되었다. 교사의 강의를 10분 미만의 영상으로 제작해 수업 전에 학생들이 보고 오도록 하여 지식을 미리 학습하게 한 후, 수업시간에는 친구들과 과제나 문제를 함께 해결하고 토론하고 배운 내용을 적용, 종합, 창조하는 활동 등을 하는 수업이다. 참여했던 연수에서 ‘내가 찾던 수업이 이거다’ 하는 생각이 들었고, 2학기 개학하자마자 바로 적용했다. 효과는 굉장히 좋았다. 먼저 자는 아이가 없어졌다. 모둠활동 위주였고, 각자의 역할을 구체적으로 주었기에 아이들은 능동적으로 참여를 해야만 했다. 영어를 못하는 학생에게도 조금이라도 자신의 역할을 하도록 했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은 점차 학습하기 시작했다.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는, 무언가를 해야만 하는 수업이었기에 어찌 보면 아이들에게는 굉장히 귀찮은 수업방식이다. 그럼에도 친구들과 ‘얘기’를 할 수 있게 되자 아이들은 서서히 잠에서 깨어났다. 자신이 무언가를 해내는 성취감은 아이들을 학습으로 이끌었다. 그래서 교사가 된 첫해의 2학기부터 지금까지 10년간 학습자중심수업을 해오고 있다.

 이 수업을 하다 보니 아이들의 다양한 역량과 가능성들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고 더 많은 기회를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은따 같은 여학생, 은진(가명)이 있었다. 친구들과 대화는 하지만 약간 흐름에 맞지 않는 얘기를 하고, 잘 씻지도 않아서 대놓고 아이들이 따돌리지는 않지만 굳이 친구를 하지는 않는 아이. 영어 교사이지만 나는 모든 사람이 영어를 잘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교실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모든 과목을 잘해야 할 필요도 없고, 그러기도 어렵다. 조금이라도 영어를 알게 되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어떤 식으로라도 참여하는 수업이 되길 원할 뿐이다.

 한 단원이 끝나고 배운 내용을 정리하는 방법으로 중요한 학습 내용을 종이에 쓰고 종이를 6각형으로 접어 모둠원이 만든 종이를 쌓아 올리는 활동을 했다. 이때 손재주가 좋은 은진이가 실력 발휘를 했다. 반을 계속 왔다 갔다 하며 종이접기를 어려워하는 친구들을 도왔다. 아마 처음으로 다른 친구들에게 도움을 주는 역할을 했을 것이다. 아이들도 계속 은진이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은진이의 얼굴은 기쁨으로 발그스레해졌다. 아이가 반짝이는 순간이었다.

 친한 소수의 남학생들과만 어울리던 소극적인 남학생 윤서는 여학생들과는 초등학교 4~5학년부터 얘기를 안 했다고 한다. 여학생들 왈 “윤서 목소리를 들어본 지 꽤 오래되었어요.” 윤서에게 다가가 질문을 하면 뒷걸음질을 칠 정도였고 목소리도 굉장히 작았다. 거꾸로교실 학습법은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교사가 수업시간 강의를 하지 않는 대신 필요한 지식을 10분 미만의 영상으로 제작해 수업 전에 학생들이 보고 오도록 한다. 아이들이 거꾸로교실 학습법 익숙해질 때쯤, 즉 2~3개월이 지난 후에는 학습영상을 학생들이 직접 만들어 보게도 한다. 한 번은 윤서(가명)와 윤서의 친한 친구가 제작을 맡았다. 영상 속에서 윤서는 또박또박 큰 목소리로 얘기를 하고 있었다. 영상으로 윤서의 목소리를 처음 들어본 아이들도 있었다. 수업시간에는 영상을 제작한 아이들이 학습 내용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다른 학생들의 질문에 이 친구들이 직접 도와주게 한다. 즉, 윤서는 친구들과 소통해야만 했던 구조. 윤서는 약간은 어색해하면서도 친구들의 질문에 천천히 다가가서 도움을 주었다. 이후에는 윤서의 목소리를 전보다 자주 들을 수 있었다. 첫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인 원빈이도 수업 시간, 서로 배우는 활동을 하며 다른 친구들과 도움을 주고받는 경험을 여러 차례 했다. 늘 싸움의 주인공이었던 원빈이는 적어도 내 수업시간에는 싸우지 않기 시작했다.

 자신이 분명한 역할이 있고, 도움을 주기도 받기도 하는 인간관계를 자연스레 경험하는 것. 단어를 외우고 문장을 해석하는 인지적 훈련뿐 아니라 협력과 소통을 기반으로 한 인간관계 역시 학습하는 것. 자신이 잘하는 것을 더 잘하게 되고 잘하는지 몰랐던 재능을 찾게 되는 것. 앉아서 필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림도 그리고 음악도 듣고 글도 쓰고 발표도 하고 토론도 하는 다양한 형태의 학습 경험으로 고루고루 성장하는 것이 내가 바라는 학습이다. 다행히도 이런 학습방법을 일찍 찾을 수 있었고 덕분에 지난 10년간 아이들과 즐겁게 수업하고 있다.  


3. 교사의 주체성

 임용고시는 쉽지 않은 시험이다. 노력은 물론 개인이 통제할 수 없는 외부적 상황과 조건 역시 중요한 변수로 작용한다. 시험을 보는 해에 나의 전공과목을 몇 명이나 뽑는지, 내게 익숙한 내용의 문제가 나올지, 시험 당일이나 과정에서 아프지는 않을지 등의 변수 말이다. 그렇기에 여러 번 시험에 낙방했다고 해서 그 사람이 교사의 자격이 없다고 단정 지어 말할 수는 없지만, 그만큼 힘든 시험을 통과한 사람들이 교사의 자리에 있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들은 학교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전문성과 주체성을 발휘하기 어려운 구조를 맞닥뜨린다. 위의 사례에서 나는 교사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여러 방법을 시도해 봤다. 그러나, 이런 시도들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요소들이 학교 이곳저곳에 존재한다.

 많은 이들이 교사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것 중 하나는 ‘수업만 하잖아.’, ‘칼퇴하잖아’이다. 그러나 최근 교사들의 잇따른 자살로 그들이 겪는 어려움이 아주 조금 수면 위에 드러났다. 자살이든 산재든 누군가 죽어야만 어려움이 입증되는 건강하지 않은 사회에 살고 있음이 조금은 가슴 아프다.

 교사들에게는 꿈이 있다. ‘수업만 하고 싶다.’는 꿈. 아이들을 만나 그들의 앞을 이끌어주고 수업을 하기 위한 꿈으로 교사가 되었건만, 수업준비를 일과 중에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국제고 같은 일부 고등학교에서는 업무가 적어 가능하기도 하다.) 퇴근 전까지 하루 평균 4시간 정도 수업을 한다. 그리고 무엇을 할까? \


- 각종 부서에서 요청하는 작거나 큰일들의 처리

- 내가 맡은 부서 업무

- 조회, 종례 때 아이들의 출결과 건강 체크

- 반에서 벌어지는 각종 일들 처리           

- 수행평가, 시험출제

- 수행평가, 시험 채점

- 시간이 난다면 아이들 상담(거의 나지 않음이 문제)

- 학습지 체크(도 급한 다른 업무에 밀리는 경우가 많다.)


 카톡이나 학급 밴드, 학교 알리미 시스템 등을 이용하여 아이들과 학부모에게 각종 소식(학교 학사 일정 및 각종 행사 등) 알림도 출. 퇴근길에 한다. 그러다 보니 퇴근 후에야 수업준비를 시작한다. 필요한 영상과 자료를 찾고 활동을 구상하고 학습지도 만든다. 칼퇴는 성공했을지 몰라도 집에서도 쉬기는 어렵다. 이 와중에 교사를 죽음으로 내모는 끊임없는 각종 민원도 두더지게임처럼 고개를 내민다. ‘왕의 dna’를 가진 자녀의 부모에게 받는 민원은 물론 과목의 영역도 자유롭지 못하다. 특히 영어는 시험 후 민원이 없길 간절히 바라는 과목이다. 내 동료 교사는 “서울대도 안 나온 새끼가…”라는 말을 듣기도 했는데 이런 언어적 모욕과 폭력은 생각보다 꽤나 자주 발생한다. 이 정도는 그냥 흘러들을 수 있다. 참으면 되니깐. 그러나 “내가 미국에서 살아왔는데”, “내가 영어교수인데” 등으로 복수정답 민원을 끈질기게 걸면 시험을 다시 치러야 한다. 수업준비 시간의 부족이나 민원이 끝이 아니다. 교사는 굉장히 전문성을 요구하는 직업이지만 학교 구조는 교사를 수동적 존재로 만든다. 업무는 물론 생활기록부에는 마침표 하나까지 교육청에서 전달된 매뉴얼대로 처리해야 한다. 학생들에게 전달하는 내용 역시 마찬가지이다. 나 스스로도 교육적 가치나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내용들도 학생들에게 전달해야만 한다. 한국 교사의 질은 높은 편이다. 그러나 이들은 힘들게 교사가 되었지만, 교사로서 정체성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존재가 된다.

 

 이런 학교 구조 속에서 내 수업을 지키기 위해 때로는 화장실을 가거나 점심 먹을 시간도 없이, 퇴근 후에도 늘 수업준비를 하며 그나마 학생들의 변화를 보며 몇 년을 보냈다.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학교구조에 지칠 때 즘 대안학교를 만드는 모험에 동참했다. 다음 글은 대안학교에서 근무하며 배운 내용을 적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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