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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dupreneur 크리스티나 Aug 07. 2023

교사가 되고 3개월 만에 후회를 하다

저는 인천에서 태어나고 자란 인천 토박이입니다. 인천을 벗어나 다른 곳에서 살게 될 거란 생각은 별로 한 적이 없어요. 사람은 보는 만큼 상상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본다는 것’은 꼭 직접 경험이 아니더라도 책을 통한 경험도 포함이고요. 어릴 때 용돈이 생기면 항상 했던 일이 ‘동네 서점 가기’ 였습니다. 1, 2만 원을 가지고 15분 거리의 서점에 혼자 설레는 마음이 풍선이 부풀어지는 것 같았다면 책을 사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의 마음은 잔뜩 부푼 풍선이 구름 위로 둥실둥실 떠오르는 것 같았지요.


 지금은 대부분의 물건들을 인터넷 스크롤을 넘기며 상세스펙과 후기를 보며 구입을 하지만 당시는 오프라인 구매만 있었어요. 당연히 책도 마찬가지였고요. 집에서 책을 읽는 사람은 저 혼자였고, 외동딸이다 보니 읽을 책에 대한 정보는 어디서도 얻을 수 없었어요. 그래도 괜찮았어요. 되려 서점에서 이 책 저 책을 넘기며 고르는 재미가 쏠쏠했거든요. 그러다 보니 표지에 끌려 구매한 히라노 게이치로의 ‘일식’을 초등학교 때 읽기도 했어요. 내용은 기억이 안 나지만 꽤나 재미를 느꼈던 감정만큼은 남아있습니다.


 당시 읽었던 책들은 대부분 소설책이었어요. 그러다 보니 ‘현실’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어요. 조금은 먼 세계 같았지요. 그래서일까요? 책을 통해 상상은 펼쳤지만 여행이나 다른 나라에 살게 될 일이 현실로 다가오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심지어 바로 근처인 서울도 마찬가지고요. 그래서 임용고시를 볼 지역 교육청을 선택할 때 전 당연히 ‘인천’을 선택했습니다. 임용고시 때 많이 했던 생각 중 하나는 ‘섬에 가도 좋으니 합격만 하자!’였어요. (백령도, 연평도, 덕적도 등의 섬들은 인천에 포함되어 있고 발령지가 이런 섬이 될 수도 있습니다.)


‘도서산간지역’은 가산점이 있습니다. 대부분 승진을 원하는 선생님들이 많이 지원을 하는데요, 요즘도 그렇겠지만 10년 전에도 그 이전보다 승진을 하려는 사람도 줄고, 굳이 섬에 가지 않아도 일찍부터 승진준비를 한다면 점수를 쌓을 수 있러서 섬에 신규 교사가 많이 가게 되었어요.


제가 발령이 난 해에도 영어과에서 한 명을 제외하고 모두 섬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저는 차라리 연고가 있는 섬으로 가야겠다란 생각에 ‘덕적도’를 지원했습니다. 덕적도는 외할머니의 고향이고 그전까지는 한 번도 뵌 적은 없지만 작은 할머니와 그 가족들이 살고 계셨어요.


섬생활은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굳이 좋은 점을 꼽자면 학교 안에 교사들이 지내는 관사가 있어 출근이 2~3분 컷이라는 것이에요. 단점이 될 수도 있겠지요?

신규이다 보니, 관사도 좋지 않은 곳으로 배정이 되었어요. 각종 벌레도 많고 3년간 지네에 3번이나 물렸습니다. 한 번은 머리를 감는데 제 발등에 아주 큰 지네가 있기도 했고요. 만약 물렸다면 생명이 위독했을 수도… 벌레란 벌레는 크기 상관없이 모두 무서워했는데 3년간의 단련으로 지금은 돈벌레를 보면 귀엽다란 생각이 듭니다.


다시 이야기로 돌아가볼게요. 아직도 덕적도로 가는 배를 처음 탔던 기억이 나네요. 저와 다른 신규교사 한 명, 20살 이상 차이가 나는 다른 교사 두 분과 함께 가게 되었습니다. (저희 엄마와 연배가 비슷한 선생님과는 여전히 종종 만나고 함께 여행도 다녀온 사이가 되었어요.)

첫 3개월 근무 후 제가 깨달은 점이 하나 있어요. ‘아, 이래서 학교는 변화가 힘든 거구나.’라는 점이요.
교사가 된 것을 후회하며 후배에게 ‘굳이 교사만 생각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라는 (건방진) 말도 했었습니다.
(배부른 소리일 수도 있겠고요. 시험 준비를 하는 제게 누가 저런 말을 한다면 ‘그래도 되고 싶다’라는 생각을 했을 것 같거든요.)


지금도 후회하냐고요? 지난 10년간 일반 학교 외에 다양한 교육경험을 쌓았기에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한 번 결정한 일을 후회하지 말자, 그 선택을 내가 잘 바꾸면 된다.’라는 생각을 하려고 노력하기에 더 후회는 없습니다.

다만 일반 학교에 똑같은 모습으로 있었다면 후회를 떠나 성장하지 않은 제 모습만 남아 있을 것 같아 무섭긴 하네요.

섬학교는 신규교사를 제외하고는 90% 이상의 교사분들이 승진 점수를 위해 온 곳이에요. 선생님들은 정말 좋았어요. 함께 등산도 하고 밥도 자주 먹고요. 그렇지만 아직 현실보다는 이상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는 신규교사의 눈에는 ‘점수’때문에 벌어지는 일들이 조금 속상했습니다. 아직 젊으니 신규교사가 양보하면 좋겠다라든지, 관리자(교장, 교감)가 점수를 주기 때문에 그에 맞춰 행동하는 모습이라든지 요. 또, ‘저렇게 수업을 한다고?’ 하는 분들이 점수를 쌓고 교감이 되는 모습도요.

교장, 교감을 관리자라 부르는 것에서 알 수 있듯  관리자-부장-일반교사의 형태로 위계질서가 있는 관료제적 특성을 갖고 있습니다. 더 크게 본다면 교육청-지역교육청-단위학교도 서열화되어 있고 국가가 만든 교육과정에 따라 교과서의 내용을 가르치고 그 안에서 시험문제를 내게 됩니다. 수업의 형태는 교사의 자율에 맡기지만 그 외에는 엄격히 통제와 관리 시스템입니다. 물론 조직의 운영에는 문서와 위계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너무나 촘촘하게 짜여 있고, 다른 대안을 허용하지 않는다면 교육에 필요한 유연성과 창의성은 제한이 됩니다. 그리고 그 안의 교사는 수동적인 위치에 놓이게 되고요. 


수업은 자율적이지 않냐?라고 질문하실 수 있습니다. 저는 오히려 이것이 또 하나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기존의 것에 의구심, “왜 “란 질문을 많이 갖는 편이긴 해요.)


교실이라는 나만의 ‘성벽’에 갇힐 수도 있거든요. 옆 반 선생님이 어떻게 수업을 하는지 잘 알 수가 없습니다.  일 년에 한두 번 ‘동료장학’이란 형태로 동료 교사의 수업에 들어가 참관을 하는 제도가 있긴 하나 대부분 ‘문서’로만 이루어집니다. 즉 실제로 참관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수업공개도 사실 일 년에 한 번 이벤트 적인 형태입니다. 내가 평소에 하는 수업과 (전혀) 다를 경우가 많습니다. 평소에도 수업에 열과 성을 다하는 교사라 할지라도 내 수업을 누가 본다고 하면 당연히 평소보다 ‘더 있어 보이는’ 수업을 하는 것은 당연하겠지요.


다시 말해, 평소에 “서로 보고 배우고, 수업에 대해 긴밀히 소통하고 발전해 나가는 구조”가 없다는 뜻입니다.

‘전문적 학습 공동체’ 역시 학교와 이끄는 부장에 따라 진짜 학습을 하기도 혹은 문서로만 존재하는 형태가 되기도 합니다. 실제 함께 모여 학습을 한다고 해도 직접적으로 ‘내 수업’에 관한 얘기가 아닐 수도 있고요.

저는 이런 점에 실망을 했던 겁니다. 조직적인 측면에서요.

그러나 여러분은 아직 실망하지 않으시면 좋겠습니다. 끊임없이 연수를 듣고, 수업과 학교를 바꾸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교사들이 많습니다. 다만 그들의 노력이 이런 조직의 특성으로 충분히 발휘되지 못하는 경우가 있을 뿐입니다.


‘조직’ 얘기는 지겨우니 제 얘기를 좀 더 해볼게요.

이전 글(https://brunch.co.kr/@freehj21/147)에서 말씀드렸듯, 저의 경험을 바탕으로 아이들을 공감해 주고 그들의 가능성이 꽃피울 수 있도록 도와주는 ‘좋은 교사’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과외와 학원 알바를 하면서도 잘 가르치는 편이었어요.


하지만 정작 교사가 되고 나니 이런 생각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음을 깨달았습니다.

이미 그들에게 학교는 ‘어쩔 수 없이 가야만 하는 곳’이었습니다. 가야 할 이유는 ‘안 가면 안 되니깐’입니다. ppt로 수업자료를 근사하게 만들고 게임도 했지만 이미 초등학교 때 공부와 멀어진 친구들은 잠을 선택합니다. 저를 초롱초롱한 눈으로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해도 정말 수업을 듣고 있는지 확신할 수가 없었어요. 앞에서는 멋진 교사인척 코스프레를 했지만 등줄기에 땀이 나는 상황을 여러 번 경험했고 수업이 도저히 만족스럽지가 않았습니다.

“나 혼자 하는 설명이 아이들에게 실질적으로 어떤 도움이 되는 걸까?”, “아이들의 학습이 정말 일어나기는 했던 걸까?”라는 질문이 계속 들었습니다.

시험으로 확인하며 되지 않냐고요? 저는 5지선다의 시험이 제대로 측정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물론 공부를 전혀 하지 않은 친구가 100점을 받을 수는 없고, 공부를 많이 한 친구가 50점을 받지도 않을 겁니다. 그러나 단편적인 지식수준의 측정만 될 뿐이고 ‘찍어서 맞출 수도’ 있거든요. 그리고 무엇보다 ‘암기 위주의 지식이다 보니 시험이 끝남과 동시에 휘발된다는 점입니다.

지금은 ‘학생중심수업’이란 말이 익숙하지만 10년 전만 하더라도 개념만 있을 뿐 중고등학교에서는 교사 주도의 강의식 수업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지금도 비율로는 강의식 수업이 많고요.)

이런 고민을 하던 중 학교마다 한 명씩 필참해야 하는 토요일 연수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섬에서 실질적인 주말은 ‘토요일’ 딱 하루입니다. 금요일 4:30에 있는 배를 타고 인천항으로 가고, 일요일 오후 1시 배로 덕적도로 돌아와야 했거든요. 더군다나 주말 근무라도 있거나 날씨가 안 좋아 배가 뜨지 않으면 주말도 섬에 갇혀 지내야만 합니다. 그러다 보니 토요일 연수에는 신규교사인 제가 가게 되었지요. 자발적으로 신청한 연수가 아니었기에 가고 싶지 않은 마음이 더 컸습니다. 하지만 인생은 늘 예측할 수 없는 법. 그곳에서 교직 인생, 나아가 삶의 방향도 바뀌는 강연을 접하게 됩니다.

임용준비를 할 때 힘이 들 때마다 동기부여를 위해 보았던 두 영상이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교육학자 이자 제가 정말 존경하는 켄 로빈슨(Ken Robinson)과 자기주도적 학습을 연구한 수가타미트라(Sugata Mitra) 교수의 Ted 강연. 두 강연을 반복해 보면서 꼭 교직에 가서 영상의 내용처럼 좋은 교육을 하는 교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토요일 연수의 강연자 중 한 분이 바로 위 두 내용을 언급했습니다. 갑자기 집중이 확 되었지요.

연수의 강연자는 정찬필 전 KBS PD(현 미래교실네트워크 사무총장)로 21세기 교육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와 작년에 그가 막 제작했던 다큐멘터리 ‘거꾸로교실의 마법’을 언급하며 거꾸로교실의 효과에 대해 전했습니다.

고민하던 수업을 바꿀 수 있지 않을까란 기대감이 순두부찌개가 몽글몽글 끓듯 부풀어 올랐습니다.


그 해 여름, 강연에서 들은 거꾸로교실 1차 교사 연수에 참여했습니다. 학습자 주도의 거꾸로교실 특징처럼 가만히 앉아 수동적으로 강의를 듣는 형태가 아닌 연수생(교사)들이 능동적으로 참여를 하는 방식이었죠. 그동안 학생으로 학교에서 경험했던 딱딱하고 조용한 교실의 모습과 달리 학생들이 서로의 생각을 나누며 학습을 익히는 모습이 굉장히 인상적이었고 신선했고 연수를 진행하는, 이미 거꾸로교실을 수업에서 실행하고 있는 교사들이 보여주는 열정에 저 역시 깊게 동화되었습니다.


연수에서 돌아온 직후 2학기가 시작되자마자 바로 수업을 변화시켰고, 지금까지도 거꾸로교실이란 이름으로 학습자중심수업을 하고 있고 교사와 학교를 대상으로 배움중심수업 연수를 수십 차례 진행해오고 있습니다. 이때의 시도가 아니었다면 저는 교사의 전문성을 향상시키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연수 참여 전, 수업에 대한 질문과 고민에서 출발했던 것이지요.

이 작은 나비의 날갯짓은 제 인생의 풍향을 바꿨습니다.

다음 이야기에서  좀 더 풀어나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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