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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dupreneur 크리스티나 Nov 18. 2023

[Book review:우리는 순수한 것을 생각했다]

서문을 다시 읽으니 '은유작가는 정말 글을 잘쓰는구나' 느낀다.

당연히 모든 문장을 공들여 썼겠지만 첫 페이지부터 밑줄치게 만드는 문장들을 읽으며 탄복한다.


“자질구레한 일상사, 감정일 땐 커다래도 말로  꺼내놓으면 쪼그라드는 것들. 시에서 출발해 자기에게 도착하는 이야기”

동거인과 싸운 후 친구에게 말하다 보면 내가 왜이렇게 쪼잔한 것 같지? 란 생각이 들때가 있었다. 

이를 은유작가는 ‘말로 꺼내놓으면 쪼그라든다’고 표현했다. '와씨, 너무 맞잖아.'


이렇게 한 문장마다 감탄하다가는 책 리뷰가 되지 않을테니 전체적인 내용부터 언급해보자.

<책의 종류>

이 책은 '한국 현대시 번역가 7명'의 인터뷰 산문이다. ‘인터뷰집’이 아니라 ‘인터뷰 산문’이라는 책 소개가 눈에 띈다. 인터뷰의 형식을 갖췄지만 은유작가의 해석을 한번 더 거쳤다는 점이 기존의 인터뷰집과는 조금 다르다. 즉, 인터뷰어(Interviewer)-인터뷰이이(Interviewee)의 대담의 거친 형태를 은유작가의 언어로 사포질 하여 매끈하게 만들었다.


영-한 번역가에 비해 한-영 번역가는 상대적으로 소수이다. 그렇다고 '알아주거나, 대우가 좋거나, 돈을 많이 버는' 직업도 아니다. 이들은 모두 덕업일치의 마음으로 한국시를 자신만의 언어로 재가공한다. 이미 완성된 예술을 또 다른 형태의 예술로 만드는 언어 세공사들이다.


최소 두가지의 언어를 거의 완벽하게 구사한다는 점에서 언어 문화자본을 획득했고 문학적 소양도 깊다. 또한 일종의 예술가들이기도 하다. 그러나 은유작가의 말처럼 "인종과 젠더 등의 측면에서 근원적인 억압과 차별을 경험했다.” 


이들에게 시가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시 번역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열렬한 독자가 되어야 한다. 시는 그냥 읽어도 이해하기 어렵다. 열번을 읽어도 논리적으로 이해가 안되는 것이 시다. 그렇기에 그들은 먼저 그 시에 오롯이 빠져 - 감각, 감정, 논리 - 뇌의 모든 영역을 동원해 시를 흡수한다. 그리고 재탄생시킨다.


이들은 왜 시 번역을 하는가? 진정으로 좋아서 하는 일. 그러면서 직업적 한계를 극복 혹은 전복하기 위해 이들이 보이는 저항적 생각과 실천적 모습은 빛나고 아름다웠다.


번역가들의 말들도 당연히 좋지만 은유작가가 풀어 쓴 해석도 탁월하게 좋다. 

이 책에서 인터뷰이들의 언어가 출발어라면 은유작가의 말은 도착어로 기능한다.


7명의 번역가 중 내게 제일 인상깊게 다가온 번역가는 ‘소제’

소제의 저항적이고 실천적 모습이 인상적이고 배우고 싶었다. 멋있는 사람옆에 있고 싶지 않은가? 소제가 그랬다. 


p. 105

“시에 대한 지원을 안 해준다면 내가 시 판을 만들 거야”

번역원에 대한 반항심으로,

권위주의적 교수법에 대한 반면교사로,

무엇보다도 시 토크에 대한 목마름으로,

소제는 번역 공동체 <<초과>> 론칭에 착수한다.

“바보가 되는 것과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번역가,

소제의 역습이 시작된 것이다. (…)

<<초과>>를 론칭하면서 남긴 말들은 힘이 넘치고 아름다웠다. 가령,

“자본주의는 우리가 희소성의 원칙에 얽매이길 바라고 공동체를 이루는 대신 경쟁하길 바란다.”

(…)

“다른 번역가에게 혼자가 아니라는 걸 상기시켜 주고 싶었다.”

(…)

소제는 이런 원칙을 세웠다.

“헐뜯지 않기. ‘이것도 번역이야?’ 이런 말 하지 않기. 어떤 말도 가시처럼 느껴지지 않도록 조심해요. <<초과>>는 원본을 손상하지 않는 한 다른 관점을 허용해요. 시는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읽을 수 있다, 그게 시의 목적이잖아요? 각 언어의 다층적 의미를 허용해요. 그렇지만 제 기준을 없앨 수는 없고, 같은 감정이라도 다르게 표현을 하죠. 이 번역은 ‘이런 단어 선택에서 과감하다’고 한다면 그 이유나 증거를 대줘요. 이 단어 선택을 다른 사람들의 단어 선택과 비교하고, 누가 제일 잘했다는 느낌을 없애려고 해요.”


소제는 인간을 소외시키는 경쟁, 배제, 승자주의를 없애고, 인간을 상생시키는 ‘공동체’를 <<초과>>를 통해 실천했다.


밑줄 친 문장과 인덱스를 붙인 페이지가 많은 책이다.

시를 좋아하는 사람은 물론, 시를 가까이 하고 싶은 사람, 문학과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 덕업일치의 삶이 궁금한 사람 - 아니 그냥 모두에게 추천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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