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세밀화가가 식물을 보는 방법
저는 식물을 잘 키우지 못합니다. 그래서 소심하게 작은 화분들만 시도를 해보았지만 벌써 저세상으로 보낸 아이들이 5-6개쯤 되네요. 죽는 식물들 때문에 더 적극적으로 식물을 키우지 못하는 것 같아요. 지금 유일하게 남아있는 식물은 ‘선인장’입니다. 다행히도 빨간, 노오란 꽃을 핀 선인장이 꿏꿏이 자리를 잡아주고 있네요.
저희 엄마는 식물을 참 좋아하세요. 집에 정원이 있었을 때나 없었을 때나 늘 집 곳곳은 초록의 생기로움이 있었지요. 반면 저는 식물에 전혀 관심이 없었어요.
제가 식물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혼자 살면서부터입니다. 재수를 할 때 살던 작은 고시원에서 ‘로즈마리’가 제 옆을 지켜주었어요. 로즈마리를 손으로 만지면 금세 허브향이 올라와 기분을 좋게 해 주었어요. 지금까지 저와 함께 지냈던 식물들 중 가장 오래 곁에 두었었죠. 어느 날 그만 작은 창에 두었던 로즈마리가 창밖으로 떨어져 버렸고 너무나 속상했지만 제가 갖고 올 수 있는 위치는 아니었어요. 그렇게 스무 살 제 첫 식물과 함께 했던 작별했던 기억이 있네요.
그리고 직장을 얻고 원룸에 살면서 작은 식물이 주는 ‘초록초록’이 집 분위기를 바꿔준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작은 식물들을 가져왔지만 한 달 이내에 다들 작별을 고했답니다. 심지어 아무데서나 잘 자란다던 틸란드시아도 시들고, 선인장도 물렁해져 버리더라고요.
물을 주고 햇빛을 쬐어주고 바람을 맞게 해 주었다고 생각했는데 어쩐지 꽃잎은 금세 시들해지고 잎들도 곧 초록의 생기를 잃고 풀썩 쓰러졌어요. 무엇이 부족했던 것일까요? 아니면 무엇이 넘쳤던 것일까요?
이제 책의 이야기로 넘어가 보려 해요.
책을 통해 ‘식물세밀화가’란 직업에 대해 처음 알게 되었는데요.
p. 16
세밀화를 그리는 나는 식물을 연구하는 모두와 연결돼 있는 동시에, 언제나 독립된 개체였다. 하루는 나자식물 도감에 들어갈 잣나무를 그리다가, 또 그 이튿날은 사초과 연구원이 발견한 사초과 신종을 그리고.... (중략)... 먼저 동료와 함께 식물을 관찰하고 이야기를 나눈 후 그림을 그리면, 완성된 그림을 보고 다시 함께 관찰한다. 수정할 곳은 수정하고, 더 수정할 곳이 없으면 담당자에게 그림을 넘겨준다.
위 단락만으로는 ‘식물 세밀화가’, 아니 그보다 이소영이란 사람이 세밀화가로서 하는 일의 10%, 아니 그보다 더 적은 하나의 단면만을 보여준다고 생각해요. 앉아서 그림을 그리는 일은 지극히 일부더라고요.
이소영 식물세밀화가는 적극적으로 여러 식물원, 가든, 심지어 직업에 도움이 될까 하는 생각으로 대형 원예 상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한적도 있는 만큼 직업에 대한 애정과 사랑이 책을 읽는 내내 듬뿍 느껴졌습니다.
이 책을 읽으며 단순히 ‘식물을 키운다’ 혹은 ‘식물을 내 집에 들여와 함께 한다’에는 반려동물 못지않은 ‘정성과 애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어요. 너무나 당연한 것인데도 저의 부족함이었을지도요. 이 책이 그렇다고 ‘식물을 키우는 법’에 대해 말하는 것은 아니에요. 식물과 가까이하는 ‘식물세밀화가’로서 식물에 대해 기록하고 써 내려간 글을 통해 드러나는 작가의 태도와 애정을 더욱 느낄 수 있는 책입니다.
국내외 16개의 식물원, 공원, 수목원을 배경으로 그 안에 ‘숲 속의 세밀화가’, ‘살아 있는 식물도감’, ‘식물을 기록하는 일’, ‘오래된 나무들’, ‘겨울 정원에서’ 등과 같은 16개의 주제로 글이 구성되어 있고, 식물이 주제이다 보니 작가가 직접 그린 그림과 사진들이 함께 있어 읽는 재미를 넘어 ‘보는 재미’도 책을 읽는 즐거움을 더해줍니다.
본래 직업이 ‘작가’가 아니기에 사실 ‘문체’는 기대하지 않았는데 예상외로 정갈하고 꼼꼼하게 써 내려간 글이 식물을 ‘세심히’ 관찰하는 작가의 특성이 글에서도 전해지는 듯했어요.
식물에 관한 ‘설명의 글’이 아니기에 식물에 관심이 없더라도 식물을 마주하는 작가의 태도, 그와 이어지는 작가의 삶의 태도, 직업에 대한 작가의 애정이 담긴 책이라 천천히 산책을 하듯 읽어나가는 것을 추천합니다.
책의 저작권 상 몇몇 인상적인 부분만 짧게 소개해보려 해요.
작가는 식물 공부에 도움이 되고자 원예 용품을 판매하는 상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고 위에서도 언급했는데요. 이때 사람들이 주로 했던 3가지 질문이
1) 식물을 잘 죽이는데 웬만해선 죽지 않는 식물 있나요?
2) 물을 자주 안 줘도 되는 식물은 뭔가요?
3) 이 식물은 어디에 좋나요?
전 이 질문에 대한 작가의 대답이 인상적이고 굉장히 유쾌했어요. 내용은 직접 책을 통해 확인해보시길 추천드려요! :)
두 번째는 벌레잡이 식물!
작고 약해 습지, 암벽등으로 밀려나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영양분이 충분하지 않았고, 이들이 선택한 생존의 방법은 ‘사냥’.
가끔씩 벌레잡이 식물들은 ‘왜 벌레를 먹는 걸까?’ 궁금함이 있었는데 이와 같은 이유라고 하니 모든 동물의 ‘생존’ 능력, 아니 본능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어요. 인간의 진화 역시 ‘생존’에 맞춰져 있으니깐요. 그런 점에서 리처드 도킨슨의 <이기적 유전자>가 이 부분에서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이 책이 매력적인 것은 위에서도 언급했듯 이러한 ‘식물 정보’만이 아닌 이에 대한 작가의 ‘생각’이 함께 서술되어 있어 더 깊이가 있었어요.
교육분야에 종사하는 저는 ‘부모의 양육방법’에 대해서도 참 관심이 많아요. 책을 읽다 작가는 어떻게 ‘식물세밀화가’가 되었을까 궁금했는데 책의 마지막 부분쯤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아빠는 아름다운 것을 유난히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 아름다운 것에는 당연히 식물도 포함됐다. 주말마다 아빠인 첫딸인 나를 품에 안고 식물이 있는 곳을 찾았다고 한다. (중략) 내 어린 시절 기억의 작디작은 부분이지만, 그 작은 기억이 어쩌면 내가 식물을 사랑하게 된 이유, 평생 식물을 연구하겠다고 마음먹게 된 계기였던 것 같다.
작가의 아버지가 만약 식물에 관심이 없었더라면 작가는 식물세밀화가가 될 수 있었을까?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마지막으로, 우리는 흔히 식물이 초록일 때, 꽃을 피울 때 많이 보려고 하잖아요. 작가의 지도 교수님은 작가의 글에 따르면
p. 268-269
늘 기본에 충실하되, 어떤 것이든 포용하는 자세로 ‘식물’과 식물하는 사람을 대했다. (중략) 식물학 그림을 연구 기록물로만 바라봐온 내가 시중에 나온 식물 관련 제품에 들어갈 그림을 그리고, 우리가 식물을 매개로 살고 있음을 사람들에게 재인식시켜주는 등 식물학 그림의 여러 가능성을 보여주는 작업을 하게 된 것도 늘 열린 마음으로 식물을 생각하는 교수님 덕분이었다. 그러던 어느 겨울날, 수목원에 간다는 교수님에게 누군가 물었다. “겨울에 수목원에 가면 아무것도 없지 않아요?” “겨울 정원이야 말로 제대로란다. 식물의 본질이 보이거든.” 교수님 다운 대답이었다. 그분의 말씀을 되새기며 나는 종종 겨울 정원을 찾았다.
이런 지도교수님의 태도가 '훌륭한 멘토’같이 느껴져 좋았고 또 ‘겨울정원’에 가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몇 해 전 정말 추운 겨울 남이섬을 갔던 적이 있었어요. 너무나 추웠고 초록은 없었지만 나름의 운치와 나뭇가지의 본연의 모습을 볼 수 있어 또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었기에 겨울-남이섬 혹은 또 다른 여러분이 근방에서 있는 정원이든 식물원이든 한 번쯤 가보시길 추천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정리를 하면,
식물에 관심이 없더라도 충분히 즐기실 수 있는 책이라 생각해요. 저도 이 책을 읽으며 식물을 더 키워봐야겠다, 아니 관심을 가져봐야겠다 라고 생각을 하게 되었거든요. 또한 작가가 그린 그림, 여러 식물원의 사진들이 힐링 포인트가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책을 다 읽고 디어클라우드의 멤버이자 작가인 임이랑의 <조금 괴로운 당신에게 식물을 추천합니다.>을 구입하기도 했어요. 이 책도 다 읽고 리뷰를 써볼게요!
요즘은 집에서 보내게 되는 시간이 ‘어쩔 수 없이’ 많게 되는 시기인데, 이럴 때 여러분의 집에 작은 ‘생기’를 이 책을 통해 더해보시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