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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비 Jul 28. 2023

할아버지는 오늘도 바쁘다

손녀딸 수발드는 우리 아빠

아침에 일어난 아이들이 밥 먹기 전 씽씽카 산책을 나갔는데 공주가 넘어져서 그만 부상을 입고 말았다.


"어머나, 공주야, 어쩌다 다친 거야~ 아이고야, 우리 공주 많이 다쳤네~!"


애기 키울 때는 늘 침착해야 한다던 육아 만렙 우리 엄마지만 손녀딸이 다쳤더니 호들갑도 그런 호들갑이 없다. 정지 버튼 고장 난 사람처럼 걱정하는 할머니 앞에서 공주는 눈물 버튼 누른 것마냥 엉엉 울기 시작했다.


"도비야, 이거 피부 조직이 상했네, 얼른 병원 가 봐야겠다."


피부과 병동에서 일한 적 있는 엄마가 단순한 찰과상보다는 많이 다쳤다고 하니 나도 깜짝 놀라 상처를 다시 들여다보았다. 그러고 보니 표피만 까진 게 아니었다. 덜 따가우라고 포비돈으로 소독하고 항생제 연고 바른 후 집에 있는 거 그냥 바르면 안 되냐고, ㅅㄹ 둘째 날이라 만사가 귀찮아 병원을 안 가도 될 것 같은데 하고 미적거리다가 머리라도 감고 가자며 욕실에 들어갔다 나왔더니 우리 아빠랑 공주가 안 보였다.


흉 안 지게 약이라도 처방받아 먹이고 싶어 공주 데리고 병원에 간 우리 아빠한테 공주 주민번호를 보내고 소파에 모로 누워 있으려니 20년 전 나 다쳤던 그때가 생각났다. 멀미를 많이 하는 편이라 고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기숙사 생활을 했는데, 야자 시간에 2002 월드컵 보던 도중 야자가 끝났고 기숙사 가서 경기 마저 보려고 미친듯이 뛰어가다 이상한 벽돌에 발이 걸려 문자 그대로 공중부양을 했더랬다.


사감실에서 테레비로 월드컵 보며 무릎 소독할 때만 해도 상황이 썩 나쁘지 않았는데 이튿날 상처에 덮어놓은 거즈 아래로 진물이 줄줄 흘러내리길래 집에다 연락을 했더니 아빠는 내 상처가 제법 나을 때까지 이삼일에 한 번씩 나를 학교로 데리러 와 병원 셔틀을 자처하셨다. 소독하고 연고 바르고 거즈 갈고 나오는 동안 나를 데리러 오고 기다리고 데려다 주고 했던 그 귀찮은 수고를 엄마가 되고서도 십 년이 지나서야 깨달았다.


친정에서 몸조리하는 동안 아침마다 직접 갈아 면포에 짠 당근 주스를 한 컵씩 갖다 준 인간 휴롬 우리 아빠, 공주 키우는 동안 아침에 눈 뜬 아기 공주에게 늘 같은 노래를 불러 준 우리 아빠, 왕자 임신한 동안에도, 우리 외국 사는 동안에도 영상통화하면 늘 그 노래를 불러 주던 우리 아빠, 원두 너무 굵게 갈았다고 나한테 핀잔을 먹으면서도 늘 커피를 내려 주던 우리 아빠. (어제는 내가 콩을 잘게 갈아 모카포트로 커피를 만들었다.)


비록 엄마한테, 그리고 엄마가 된 딸한테 욕먹을 일이 열 바가지라도, 좋은 점 한두 바가지 보며 살아간다. 애들 아빠한테는 그렇게 못 했지만 우리는 피붙이니까. 아빠의 애정은 아주 오래되고 진실한 애정이니까.  

나 있는 카페 위치 묻더니 이 더위에 따라나온 엘파마 타는 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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