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맙다는 말은 뻔뻔하게 합니다
연말에 내가 아이들을 친정에 데려가기로 하면서 아이들이 아빠와 크리스마스이브를 보내는 걸로 면접 일정이 바뀌었다. 친구들과 약속을 잡지는 않았고, 이브 전날은 카페에서 사람들을 만나기로 했으니 갑자기 생긴 빈 시간은 버릴 것 버리면서 집 정리에 쓰기로 했다. 보람찬 연휴가 될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그러다 단체 채팅창에 식사 메뉴가 정해졌는지 글을 남겼는데 한동안 연락이 뜸했던 오빠한테서 따로 연락이 왔다. 각자 먹을 분위기라며 (전혀 안 그랬고 당일 다른 분과 밥 먹고 차도 마시러 갔지만) 내 이브날 일정을 묻더니 밥을 먹자고 했다. "특별하지 않게" 그냥 밥 먹고 카페 가자고.
고시생 전용 학습실을 이용하던 친구가 만나자고 학교 앞으로 왔던 어느 오래된 이브날이 생각났다. 분명 잠깐 바람 쐴 겸 나오는 거라더니 실은 설렜다는, 십여 년이 흐른 후에도 늘 설레었다는 말을 했던 친구. 어떡할까 하다가 어차피 저녁에는 일정이 있으니 잠깐 나가서 얘기 좀 나눠 보는 것도 괜찮겠다 생각했다. 지금까지의 내가 본 게 틀렸을 수 있으니까.
검색왕처럼 맛집을 찾아낸 오빠를 이브날 만났고, 밥을 잘 먹었다. 전보다는 편해졌고, 같이 아는 사람들의 안부가 대화 내용이었다. 밥을 다 먹고 이동하는데 크리스마스에 집에 혼자 있는 건 불행한 일이라는 프레임 때문인지 카페마다 사람이 많았고, 어쩌다 보니 세 번째 카페에 정착했다.
오빠는 나이가 마흔을 넘기고, 괜찮았던 사람도 보내고 나니 이제는 결혼을 꼭 안 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하지만 애기는 갖고 싶어 했다.) 사는 게 별 재미가 없어져서 사람들과 연락을 잘 안 했었다는 말로 그간 연락이 뜸했던 이유도 설명했다. 궁금하진 않았지만.
얘기를 나누다 날이 어두워진다 싶었을 때 오빠가 물었다.
“도비야, 몇 시까지 가야 되지? 집으로 내려 줄까?”
”아, 저 식당에서 내려 주실 수 있을까요?“
“식당?”
“애들이랑 애들 아빠랑 다 같이 저녁 먹기로 했어요.”
눈이 조금 동그래지던 오빠는 이어진 내 말에 큽 하고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지랄 맞죠? ㅎㅎ 둘째가 그러더라고요, 엄마랑 누나랑 아빠랑 다 같이 밥 먹는 게 보고 싶다고, 못 본 지 오래됐다고. 걔는 지금도 아빠집 갔다 올 때마다 엉엉 울거든요. 그래서 그래, 밥 같이 먹는 정도는 할 수 있지, 아빠랑 따로 살게 한 것도 너무 미안한데 내가 이거는 해야지, 하고 그러자고 했어요. 아까 사는 게 재밌냐고 물으셨나? 이럴 때 보면 퍽 재밌기도 하네요.“
당황해서 맨 처음 애기 엄마 아닌 척을 한 후에 왔던 현타를 통해 배운 점이 있다면 애 딸린 이혼녀의 삶에 존재하는 여러 사건들을 나 스스로도 남들 앞에서도 부정하지 말자는 것이다. 실수야 어쩌면 또 할지도 모르지만 나는 앞으로도 의도적으로는 이 부분을 감출 생각이 없었다. (물론 광고할 생각도 없지만.)
시동 걸러 오빠가 먼저 내려간 사이 나는 디저트를 몇 개 포장해서 전에 오빠가 잘 먹었다던 비타민과 같이 넣고 차에 탔다. 해 떨어지기 시작한 하늘과 잔잔한 발라드 사이사이로 경쾌한 전주가 몇 번 건너뛰어 혼자 웃었던 시간이 끝났고, 오빠는 혹시나 전남편 만날 것을 신경 쓰며 길 건너편에 나를 내려줬다. 잘못한 것이 없는데 잘못을 하는 마음이 드는 건 나뿐만이 아닌가 보다.
“고마워요, 아무 생각 없이 청소하려고 했는데 덕분에 잘 보냈네.”
“아냐 뭘,”
고맙다는 말을 안 받길래 내가 급발진을 하며 흘겨봤다.
“아니, 내가 잘 보냈다는데 왜 그걸 오빠가 부정하지?”
알았으니까 빨리 내리라는 말에 등 떠밀려 차에서 나왔고, 잠시 후 나는 이미 울먹울먹 모드가 된 아들과 멀쩡해 보이는 딸과 통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애들 아빠를 만나 맛있는 저녁을 먹었다. 이상한 하루였다.
얘기를 다 들은 친구가 말했다.
“그래도 그분이 니 상황에 따라오는 그런 일들을 감수하려는 모습이 있네?”
그런 것도 같았다. 근데 그런 모습만 보이는 게 아니라 내가 불편하게 생각하는 다른 모습도 자꾸 보여서, 나는 예의는 차릴 수 있었지만 다른 좋은 마음이 들어올 자리가 없다는 걸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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