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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비 May 24. 2024

이사 오자마자 이사 가고 싶어졌다

설마가 사람 잡은 이야기

이사를 했다. 로켓배송을 비롯한 온라인 쇼핑의 신세를 많이 질 수밖에 없는 상황. 이삿날 네이버쇼핑에서 신규 배송지 입력을 깜빡하는 바람에 이전 집주소로 고구마 한 상자와 거실용 커튼을 잘못 주문한 뒤 다행히 추가 실수는 없었다. 그렇게 이사 후 첫 주말을 맞았다.


아빠집에서 돌아온 아이들이 새 집을 좋아했다. 고구마와 커튼은 잘 가져왔지만 내 쇼핑 목록에는 책장이라든가 신학기 준비물, 봄옷 따위가 여전히 가득했다. 하나씩 장바구니에 담아 결제 버튼을 클릭, 또 클릭하며 분주하게 소비를 하니 드디어 월요일이 되었다. 상품 준비와 배송 행렬이 시작되면 새 보금자리도 곧 구색을 갖추겠구나, 나는 설렜다.


그리고 화요일 아침, 뜬금없이 전 남편의 친형제나 다름없는 사촌 도련님에게서 문자가 왔다. 내 소중한 택배가 배송될 예정이라고. (응?? 내 택배를 왜 도련님이 가져오나요?)


가슴이 철렁했다. 다정하고 살갑던 도련님과는 올해 초딩이 된 둘째의 돌잔치에서 본 게 마지막이었다. 외국에 다녀온 뒤 발칙한 이혼일지에 쓴 여러 사정으로 다시 만날 일이 없었고, 앞으로도 볼 일 없을 줄 알았던 도련님의 이름으로 문자가 왔으니 놀랄 수밖에.


도련님은 택배 일을 하던 분이 아니었다. 그래서 처음 도련님 이름으로 문자가 왔을 때 나는 기막힌 우연이라고 생각했다. 도련님은 진작 번호를 바꿨는데 어느 택배 기사님이 도련님의 옛날 번호를 쓰는 거라고, 택배 기사님들은 업무용 휴대전화가 따로 있을 거라고 말이다.


어딘가 석연찮았지만 설마 이 번호가 진짜 도련님일 리 없다고 믿고 싶은 마음으로 애써 쿨내를 장착했다. 작은 해프닝이길 바랐던 첫 문자 이후 하루가 멀다 하고 이런저런 택배 알림이 왔다. 그리고 도련님 이름으로 오는 문자를 세네 번째쯤 받던 날, 상품명이나 배송예정시간과는 무관한 문자가 하나 오고 말았다.


안녕하세요 형수~ 인사도 자주 못 드리고 죄송해요~ ㅇㅇ아파트가 제가 배송하는 곳이에요~


그렇다. 설마는 늘 사람을 잡으며,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일은 생각보다 비일비재하다. 첫째가 전학은 싫다고 하여 길 하나 건너로 이사를 왔을 뿐인데 일주일이 채 지나지 않아 또 이사가 가고 싶어졌다. (전)도련님은 사촌형과 형수 사이에 일어난 일을 모르는 눈치였다. 답장을 해, 말아? 고민하기를 잠시, 애들 아빠에게 소식을 알렸다.



이미지 출처: 땅집고 (https://realty.chosun.com/site/data/html_dir/2024/03/06/202403060123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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