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유지비가 많이 들지 않는 여자
2022년 **월 **일 아침, 남편과 나는 여전히 어색한 걸음으로 다시 법원을 찾았다. 미성년 자녀가 있는 부부의 협의이혼 절차에서 요구하는 상담을 받아야 했다.
서너 페이지 정도 되는 질문지 작성을 마쳤고, 남편과 내 답변을 각각 훑어보던 상담사님이 질문지를 내려놓으면서 상담이 시작되었다.
“음, 이런 과정을 통해 두 분의 결정을 번복하려는 건 아니구요, 일단 두 분이 미성년 자녀가 있기 때문에 생기는 고민이나, 성인들의 감정 때문에 놓치는 게 있는지 확인하고, 두 분이 어떻게 하고 계신지를 점검하는 시간으로 생각하시면 돼요.“
내가 물었다.
“그러면 이건 부모로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상담인가요?”
“그걸 포함해서 전반적으로 얘기를 나눠 볼 겁니다. 자녀는 아내분이 키우기로 하셨구요. 주로 양육을 아내분이 하신 거죠?”
“네, 원래는요.”
부연하길 바라는 상담사님의 눈빛을 확인하고는 설명을 보탰다.
“아이들 태어나고서나 외국 살면서는 남편이 학업을 해야 했고, 저는 비자법 때문에 전업주부를 해야 했거든요. 그래서 그동안은 제가 애들을 케어했고, 한국에 와서는 제가 출근하면서 남편이 둘째 하원 시키고 저 퇴근 전까지 애들 챙겼어요.”
“네에. 우리 공주와 왕자, 정서적인 부분은 일단 괜찮은 것 같다고 써 주셨네요. 제가 두 분과 따로따로 얘기를 나눌 건데, 아내분과 먼저 상담을 하겠습니다.”
개별 상담 시간이 있을 줄이야. 그렇게 법원까지 와, 나는 상담사 님과 단둘이 자그마한 상담실에 남겨졌다.
“덥지는 않으세요?”
“네, 괜찮아요.”
그리고는 바로 시작된 본론.
“일단 법원에서 권장하는 대로 내용 작성은 잘 되었어요. 주양육자가 1명이라는 거, 친권자와 양육자가 동일하는 거, 그리고 양육비 지급을 한다는 거,
서류를 들여다보시며 항목을 짚어나가던 상담사님이 양육비 지급 부분에서 갑자기 흐흐흐 웃음을 흘리시더니 잠시 끊어졌던 말을 얼른 이으셨다.
“금액이 작든 크든 어쨌든 양육비 지급을 한다는 거,”
이번에는 웃음이 아닌 내 질문 때문에 상담사님이 말을 멈추셨다.
“금액이 그렇게 작은가요? 많지는 않죠?”
“그렇죠, 뭐 그래도 여기 작성하신 거 보니까, 금액이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남편분의 상황을 충분히 이해하시고, 그래서 적은 금액이지만 이렇게 받으시는 걸로 쓰셨어요.”
“네, 남편 상황이 있으니까요.”
상담사님도 나도, 전혀 우습지 않은 일로 서로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이들에게 남편이 너무 적나라하게, 그러니까 엄마가 아빠를 보기 싫어해서 이혼하는 거라고 말한 얘기도 했다. 아이들한테 너무 미안하다고.
“그래도 그건 두 분이 같이 상의하고 얘기하는 게 가장 좋죠. 애들 앞은 상대 배우자를 평가하는 자리가 아니니까요.”
나도 아이들 듣는 데서 남편을 평가한 적이 많았을 텐데 싶어 또 미안해졌다. 변명을 늘어놓았다.
“지금 둘 다 제정신이 아니라서요. 그래서 더 그래요.”
“맞아요, 지금 그러실 수밖에 없어요. 아이들이 상황을 어떻게 느끼고 받아들일지보다는 어른들 감정에 충실하게 되다 보니 실수를 많이 하시게 돼요. 아이들을 놓치게 되죠. 아무래도 한 분은 이혼을 원하고, 한 분은 원하지 않는 상황이라 더 그럴 수 있어요. 그래서 제가 몇 가지 여쭤 볼게요. 그러면 아내분은 이혼 의사가 정확히 있으세요?“
살면서 진심 어린 급발진을 해야 할 순간이 있다면 바로 지금.
네! 네네네네!
결혼식 때보다 아마 몇 배는 더 확신에 찬 대답. 상담사님이 입을 꾹 다문 채 코로만 웃음을 내보내시는 모습에 잠시 집 나갔던 차분함이 돌아왔다.
“선생님, 어쩌자고 저는 여자 문제도 없고, 술, 담배도, 도박도 안 하는 남편에게 이혼해 달라고 했을까요. 저는 이 결정을 하고 실행에 옮기기까지가 정말 너무 힘들어서 외도로 상간 소송한 친구가 부럽기까지 했어요. 외도는 이혼을 요구할 이유가 분명하니까요.“
숨을 크게 고르신 상담사님이 물으셨다.
“아내분 마음은 언제부터 그러셨어요?”
언제부터였더라. 긴 숨을 뚝뚝 끊어가며 깊이 들이쉬고 내쉬는 시간 동안 나는 수많은 세월을 거슬러 올라갔다.
“남편과 사는 게 힘들어진 걸 물으시면 그건 굉장히 오래되었어요.“
나는 참 솔직하게 마음을 털어놨다. 오래 알고 지낸 친구들이 듣고 놀랐던 그런 학바라지를 십 년 넘게 했다거나, 남편이 학위만 몇 개 했다거나, 아이 낳고 몇 개월 만에 시작된 남편의 기숙사 생활이 3년간 계속되었다거나, 평일에는 학교를 다녔고 주말에는 일을 해서 함께할 시간이 없었던 점, 첫째가 다섯 살이 될 때까지 생활비를 별로 받지 않고 지낸 점 같은 건 솔직히 나에게는 가장 중대한 이혼 사유가 아니었다. 나에겐 더 큰 슬픔이 있었고, 상담사님께도 그 부분을 밝혔다.
“선생님, 제가 유지비가 많이 드는 여자가 아니거든요. 그냥 커피 한 잔 같이 마시면서 얘기 나누고, 같이 산책하고 뭐 구경하고, 그런 거 좋아해요.
근데 참다 참다 말하면 남편은 안 된다고 했어요. 그게 학업에 방해가 된다고. 그러다 제가 눈에 띄게 우울해져서 작년쯤부터는 남편이 여행이라든가 그런 시간을 가지려고 애쓰기 시작했거든요. 근데 그땐 이미 늘 어디로든 사라지고 싶었었어요. 그러다 암이 생긴 것도 알게 됐고요.“
“어머. 지금은 괜찮으세요?“
“네, 수술 잘 받았고 지금은 주기적으로 검사받아요.”
“다행이네요. 학위는 마치셨고요?”
“하나는요. 그리고 외국 간 거는 진행이 잘 안 돼서 마치지 못했어요. 그 학위는 5년째 하고 있어요.“
“어유, 힘드시겠어요.”
힘들었다. 정말로 진심으로, 몸과 영혼이 닳고 닳아 삶을 저버리고 싶어질 만큼. 그러고도 나는 상담사님께 남편의 편에서 그의 입장을 설명드렸다. 나를 상하게 하면서까지 그를 이해하려 애썼던 나는 아마도 세상에서 그를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