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왜 취미에 열광하는가
'오타쿠의 나라', 일본.
이 나라에는 세상에 알려진 다양한 취미를 가진 사람들이 살고 있고, 또 많은 사람들이 세상에 없던 자기만의 취미를 만들고 살아 간다.
이들 중에서 자기의 취미를 삶의 우선 순위 중 상당히 상위에 두고 몰입과 소비의 정도가 일반적인 수준을 넘어선 이들을 '오타쿠'라고 부르지만 실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이 나라의 대다수의 사람들은 무엇이든 하나 이상의 취미에 빠져 살고 있는 듯하다.
'취미가 무엇인가요?'
이 흔해 빠진 질문은 '꿈이 무엇이지요?' 라는 질문처럼 마치 모든 사람이 꿈도 취미도 응당 하나쯤은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 것처럼 들린다.나처럼 특별한 취미가 없는 사람에게는 적지않이 당혹스런 질문이다.
"시간이 나면 책도 보고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립니다. 우클렐레는 독학 중이지만 그다지 열심히 하고 있지는 않고요, 아, 영화를 종종 보네요. 또... 텔레비젼! 열심히는 아니지만 시간이 나는 데로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데.. 이것도 취미라고 할 수 있을까요?' 어디서부터 여가를 보내는 일이고 어디서부터 취미란 이름을 붙일 수 있는 지는 모호한 일이지만 같은 질문에 별다른 고민 없이 바로 나의 취미는 '무엇'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면 그 사람에게 그 '무엇'은 분명 취미라고 할만한 것일 테다. 취미란 스스로가 충분히 몰입하고 있다는 '인증'같은 것이 아닐까.
일본에는 여가를 보내는 일 중 이러한 '취미'라는 인증을 획득한 사람들의 비율이 한국에 비하여 월등히 높다. ('월등히' 개인적인 느낌일지는 모르지만) 어렵지 않게 눈에 띠는 각종 취미 용품을 팔고 있는 전문점이나 전문코너를 보면 그 정도를 쉽게 느낄 수 있다.
곳곳에 군대용품, 열차모형, 에니메이션 케릭터, 낚시, 다도, 서예, 그림, 서핑 등등 수집에서 스포츠에 이르는 각종 취미의 초급에서 고급에 이르는 장비를 판매하는 이른바 '전문점'이 성업 중이다. 이곳에는 구매자의 세밀한 취향의 차이를 반영하는 다양한 제품이 진열되어 있고 또 국내에 이를 출시하는 전문 브랜드 메이커가 존재한다. 모두 이러한 시장을 유지하게 하는 두터운 소비자층이 있기 때문이다. 무엇이 이렇게 다양하면서 거대한 '취미 시장'을 가능하게 하였을까? 일본인들은 왜 취미에 열광할까?
내가 느끼는 일본은 잘 혹은 꽉 짜여져 있는 사회이다. 어느 부분을 보아도 오래전부터 전해 오는 메뉴얼이란 것이 있다. 전체가, 개개인이 오랫동안 이 메뉴얼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으려 노력한 탓에 메뉴얼은 맹목적인 규범이 되어버렸다. 이 사회는 시대가 변하여도 합리적인 변화보다는 개인이 불편을 감수함으로 현상을 유지하는 쪽을 택하는 것 같다. 따라서 개인에게 메뉴얼을 임의대로 해석하여로 편의에 따라 자율적으로 응용할 여유('유토리'ゆとり)는 주어지지 않는다. 수 많은 변명과 개인적 일탈을 허용해야하는 합리적인 요청은 "오랫동안 그렇게 해 왔다"는 말 한마디로 무시되는 것이 당연하게 되어 버린 것이 아닌가 싶다.
상황이 이러하니 이곳에 살아가는 사람들은 누구든 사회적 공간에 있는 동안 이러한 사회적 틀('와꾸' わく) 안에서 살 것을 강요 받는다. 오랜 교육과 관항은 크던 작던 '규칙지어진 바'는 반드시 지켜야한다는 생각과 자기 검열적인 태도가 이 사회 개개인의 머릿속에 깊숙히 박혀있다.
이렇게 꽉 짜여진 사회에서도 개인은 일탈을 꿈꾼다. 아니 오히려 꽉 짜여져 있기에 더욱 일탈은 필요한지도 모른다. 규범에 반하지 않더라도 최소한 규범이 없는 개인의 공간이 필요한 것이다. 일본 사회에서 취미란 메뉴얼이 없는 공간, 그렇기에 메뉴얼에 따르지 않아도 되는 개인의 공간이다.
사방이 온통 메뉴얼로 둘러 쌓여진 삶 속에서 일본의 개인은 취미를 통하여 자기를 확인할 수 있다. 취미란 스스로 선택하고 몰입하는 자율이 허락된 공간이다. 이들에게 취미란 개인의 공간이란 이유만으로 수입을 초월하는 투자도 아깝지 않은 듯하다.
물론 이 메뉴얼이 없는 공간 또한 메뉴얼에 규정된 틀 안에서 존재한다. 취미란 사회가 허용한, 제한된 와꾸(틀) 안에서 개인의 자유를 무제한 허용한 해방구이다. 사회적 공간이 틈 없이 잘 짜여진 만큼 해방구는 더욱 자유롭고 더욱 열정적이다. 일본의 취미가 때로는 변태적이고 사회적인 상식을 아무렇지도 않게 뛰어 넘는 이유는 허락된 테두리 바깥의 사회적인 공간에서 잃어버린 개인이 자기 존재를 확인하려는 몸부림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