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가 되면 하고 싶은 일들
내가 부자가 된다면, 나는 나의 아버지에게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널찍한 아파트를 하나 사 드리리라. 그리고 많은 방 중 하나에는 당구대를 놓아 드리겠다. 벽에는 커다란 티비를 걸어 종일 당구를 치면서도 좋아하는 스포츠 중계를 하나도 빠짐없이 볼 수 있게 해 드리리라. 나 같으면 거실에 한강의 야경을 내려보며 위스키를 한 잔을 할 작은 바를 만들겠지만 술도 담배도 좋아하지 못하는 아버지에게는 그저 거추장스러운 공간에 불과할 테니, 그 대신 거실에는 커다란 스크린을 달아 좋아하는 영화를 맘껏 볼 수 있게 해 드리리라. 아버지는 중학교에 들어 가기 전부터 사대문 안에서 개봉하는 영화는 빠짐없이 보고 자랐다고 했다. 지금도 틈틈이 혼자 극장에 가는 아버지는 좋아하는 미국 영화를 실컷 볼 수 있으리라. 창고에는 영화를 볼 때 먹을 간식 거리를 가득 채워 놓고 편하게 누워서 영화를 볼 수 있도록 커다란 쇼파를 들여 놓아야지. 그리고 살림이 서투른 아버지를 위해 요리가 훌륭한 가사 도우미를 부르고 기사를 딸려 고급 세단을 하나 사 드리리라. 매주 토요일 고등학교 동창들의 당구 모임에 가면 아버지의 친구들은 번쩍 거리는 세단과 그 앞에 다소곳이 서서 아버지를 기다리는 기사를 부러운 눈으로 바라 보리라.
내가 부자가 된다면, 후쿠오카에 있는 장인과 장모의 집을 비싸게 사리라. 그 집 거실은 내가 그동안 다녀 본 곳 중 가장 아름다운 일출을 볼 수 있는 곳이다. 그 돈으로 장인은 더 이상 일을 하지 않아도 편하게 지내 수 있으실테다. 장인께는 그 동안 꾸준히 공부해온 영어를 마음껏 써 볼 수 있도록 캐나다로 여행을 보내 드리겠다. 사교성이 좋은 장인은 어디에 가서도 친구를 쉽게 만들 것이다.고향 큐슈의 고구마 소주를 잊지 못하여 이내 후쿠오카로 돌아올 테지만. 장모에게는 일본이건 해외이건 오르고 싶었던 산을 모두 오를 수 있도록 등산 여행을 보내 드리겠다. 검소함이 몸에 벤 장모는 손을 저으며 사양하겠지만 어디를 가든 최고급 호텔을 잡아 드리리라. 장인이 ‘언젠가’라며 바라고 있는 일본 전역의 온천여행을 보내 드리는 것도 좋겠다. 호화 객실을 갖춘 기차표를 끊고 가는 곳마다 그 동네의 가장 고급 료칸을 잡아 드리겠다. 장인은 가는 곳마다 그 지방 쌀로 빚은 술을 마시고 자랑하기 좋아하시는 나의 장인은 그 중 몇 병을 택배로 우리 집에 보내시리라.
내가 부자가 된다면, 나의 아내에게 파리 여행을 선물하리라. 서른이 되었을 때 가장 친한 친구와 단 둘이서 파리로 여행을 보내주겠다고 한 약속은 그 사이 삼 년의 간격을 두고 두 딸이 태어나며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지키지 못하고 있다. 오래 기다린 대신 나는 그녀와 마리의 파리 여행을 호화롭게 준비해 주리라. 최고급 호텔을 나선 그녀들은 골목의 작은 가게들을 돌아다니고 길가에 놓인 테이블에 앉아 카페오레와 함께 팽오쇼콜라(Pain au chocolat)를 먹으리라. 곧 마흔이 되는 그녀들은 여행을 떠날 때는 마흔이 훌쩍 넘었겠지만 그때도 여전히 배낭 여행을 온 젊은이들처럼 여기 저기를 걸어 다니며 작은 가게에서 귀여운 기념품들을 찾아내는 기쁨을 탐할 것이다. 젊은 여행객 흉내를 내다 걷다 지쳐 호텔로 돌아오면 호텔의 스위트룸 창 밖으로 에펠탑의 레이져쇼가 보이겠지. 첨탑의 끝에서 뻗어 나오는 불빛을 보며 마리는 (어쩌면 그때는 있을 지 모를) 남자친구에게, 나의 아내는 우리의 두 딸에게 전화를 걸 것이다. 파리는 아름답지만 조금 외로운 도시이니까.
그녀가 파리에서 돌아오면 그녀가 여행을 간 사이 꾸며 놓은 그녀의 방을 보여주리라. 그녀가 처음 가져 보는 그녀만의 방이다. 책을 좋아하는 그녀를 위하여 바다가 보이는 창가에 발 받침이 있는 푹신한 쇼파를 놓아주리라. 그 앞에는 커피를 올려 놓을 작은 테이블을 놓고 그 위에 예쁜 램프를 하나 놓아주겠다. 그녀가 파리에 다녀와 그림을 그리고 싶어졌다면 이젤을 놓아주겠다. 혹시 그때도 지금처럼 꾸준히 요가를 하고 있다면 요가 메트도 깔아 주리라. 하지만 그녀의 즐거움을 위하여 빠져서는 안될 것. 그녀의 방 한 곳에 텔레비전을 놓고 그 앞에는 커다란 다리미판과 최신식 다리미를 놓아주겠다. 나와 딸들이 잠자리에 들면 아내는 혼자서 거실에 나와 텔레비전을 보면서 다리미를 한다. 아내의 취미이자 혼자만의 시간이다. 부지런한 가사 도우미에게도 나의 와이셔츠 만큼은 그녀에게 양보하도록 미리 말해 놓아야지. 만약에 내가 부자가 된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