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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종의 詩,<섬>을 읽으며

짧은 시 <섬>에 대한 잡담

by 박종호

이 글은 시론(時論)이 아닙니다. 그저 추억 속 시 하나를 떠올리며 떠오르는 생각들을 적어봅니다.


i.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나의 대학 시절 시 선생님이셨던 시인 정현종의 <섬>이란 시이다. 정현종 시인을 모르는 사람도 이 시는 한 번쯤 들어 보았을 것이다. 혹시 들어보지 못한 사람도 이제는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이 느껴지지 아니한가?


ii.


<섬>이란 시가 유명한 가장 큰 이유는 다른 시보다 월등히 짧기 때문이다. 누구나 젊어서 시 하나 쯤 외우고 있어야 할 것 같았던 시기에 김소월의 <진달래>같이 흔한 시는 외우기는 쉽지만 모르는 이가 없으니 어디 가서 써먹을 데가 없고, <님의 침묵>같이 긴 시는 낭송하면 참 멋있는 시이지만 길이가 반야심경 수준이어서 자칫 중간에 한 행을 빼먹거나 하면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바로 이때 안타까운 기억력을 가진 우리를 위하여 정현종님의 <섬>이 있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 정현종 <섬>,


다시 적어도 딸랑 한 줄이다. 짧으니 외우기 좋고 어디 가서 바로 꺼내어 써먹을 수도 있다. 서부 영화의 총잡이들이 허리 춤에서 ‘착!’하고 재빨르게 권총을 빼듯이.


iii.


시쓰기 수업 중 누군가가 선생에게 <섬>의 의미를 정중히 물었다. 눈썹까지 허연 백발의 시인은 특유의 ‘허허’ 하는 천진한 웃음과 함께 ‘시인이 자기가 쓴 시에 대하여 해석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지’라며 대답을 빗겨갔다. 시는 세상으로 나오는 순간 시인의 것이 아니다. 시의 해석은 전적으로 읽는 사람의 몫으로 남겨진다. 그래서 나는 <섬>을 이렇게 읽는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 정현종 <섬>


1) 복수의 '사람들'이 관찰된다. 나와 그 혹은 그들이며 나는 이를 보고 있다.

2) 그들 혹은 우리들 ‘사이에’는 거리가 있다. 그들은 서로 떨어져 서 있다. 혹은 떨어져 존재한다.

3) 그들 혹은 우리들 ‘사람들’ 사이에 문득 ‘섬’이 관찰된다. (‘섬이 있다‘)

4) '섬'의 등장과 함께 그들 혹은 우리들 바다로 변한다. 그들 혹은 우리는 바다를 사이에 두고 서로 떨어져 있다.

5) 나와 그, 혹은 그들은 바다 위에서 떨어져 있으니 ‘사람들’은 섬에 있거나 모두 섬(비유)이다.

6) ‘사람들’ 각각이 바다로 고립된 섬이거나 섬에 고립되어 있다면 그 ‘사이에’ 있는 ‘섬‘은 무엇인가

7) 나와 그, 혹은 그들은(‘사람들’) 사이의 바다에 떠있는 섬은 그들이 함께 바라볼 수 있는 섬이다.

8) 하지만 ‘그 섬’은 사람들 사이에 있는 사람이 없는 섬이다.

9) 가고 싶다는 희망은 갈 수 있다의 전재이다. 내가 갈 수 있듯이 그 혹은 그들도 그 섬에 올 수 있다.

10) 나와 그, 혹은 그들은('사람들'은) 서로 떨어진 고립된 섬에 있거나, 고립된 섬이지만

11) 우리는 우리 사이의 어느 ‘섬’에서 만날 수 있고

12) 나는 누군가와 만나기 위하여 ‘그 섬’에 가고 싶다고 화자는 말한다.


<섬>은 인간은 서로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고립된 섬 같은 존재이지만 서로 이해하려 노력한다면 서로가 공감할 수 있는 어느 지점(섬)에서 서로를 만날 수 (이해 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시 속의 화자는 인간의 실존론적 한계를 인정하면서 동시에 이를 넘어선 타인과의 교감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는 것이다.


1939년생이신 정현종 선생은 짧디 짧은 두 문장으로 인간과 인간 사이의 심오한 통찰을 이끌어 내었다. 혹은 까마득한 후배이자 제자인 나의 글을 보시며 “꿈보다 해몽”식의 해석에 뿌듯해 하실런지도 모르겠다. 선생의 어린 아이처럼 맑던 눈빛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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