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죄책감 없이 고기를 먹을 수 있을까.
i.
2000년대 초반, 중국 유학 중에 서울서 놀러 온 친구를 데리고 내몽고에 간 적이 있다. 우리는 그날 밤, 초원 한 가운데 세워진 게르(몽골 텐트) 안에서 말 젖으로 만든 몽고의 전통주를 주고 받으며 우리 둘 만을 위하여 갓 잡은 신선한 양고기와 살짝 데친 각종 내장들을 맛있게 씹어 먹었다.
다음 날 아침, 우리를 태운 차가 후허하오터(乎和浩特市, Hohhot) 역으로 돌아가기 위하여 출발할 즈음, 게르 뒤에 나무로 만든 사각 테이블 위에 올려진 허옇고 벌건 물체가 눈에 들어 왔다. 모가지가 뒤로 젖혀지고 클 대(大)자로 뻗어 있는 어린 양의 사체였다. 활짝 열린 뱃가죽 안의 살과 내장은 깔끔하게 해채되어 있었다. 저 양의 뼈와 가죽 사이의 빈 부분 중 일부는, 아니 대부분은 어젯밤 마유주(馬亂洒)와 함께 나와 내 친구의 뱃속에 들어갔음이 분명했다.
숙취로 머리가 깨질 것 같았다. 과속카메라가 없는 초원 한가운데에서 운전수가 미친 듯이 악셀 밟아 그 적나라한 현장에서 금새 벗어나지 않았다면 나는 차안에서 전날 밤 먹은 양의 살들을 한꺼번에 게워 낼 뻔했다.
도축의 잔인한 광경을 보고 혹은 살생의 죄책감 때문에 채식을 시도하는 사람은 이효리 뿐만이 아닐 것이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그녀처럼 오래 몸에 밴 식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다시 고기를 먹는다. 나 역시 그 날 이후에도 양고기를 포함하여 육류의 소비량이 전혀 줄지 않았다.
출장을 다니다 보면 가끔 태어날 때부터 문화적 혹은 종교적인 이유로 ‘평생 채식’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들은 육식이란 생존이나 건강의 필수 조건이 아니라는 사실을 온 몸으로 말 해주는 ‘산 증인’들이다. 그들을 보면 나의 육식 습관에 대하여 생각하게 된다. 간혹 나의 욕구와 가치관 사이에 어디 즈음에 선을 그어야 할지 고민스럽다. 물론 여러분은 알고 있다 내가 고기를 절대로 끊을 수 없다는 것을.
ii.
유럽 몇몇 국가(독일, 덴마크, 스웨덴)에서 돼지고기, 소고기 닭고기 등에 식육세를 붙이는 것을 검토 중이라 한다. 담배와 탄산음료, 설탕에 이어 고기에도 소위 ‘죄악세’를 붙이겠다는 뜻이다. 과세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1) 가축을 기르며 발생되는 이산화탄소가 인간이 발생시키는 전체온실효과가스의 15%(7.1K ton)에 이르며 2) 붉은 색 고기가 건강에 해로울 뿐 아니라 3) 동물들의 복지 문제도 심각한 상황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1) 그동안 고기를 남달리 좋아했던 내가 지구 곳곳의 이상 기후와 북극곰 마릿수 감소의 주범이된 듯한 죄책감이 밀려온다. ‘몰라서 그랬어요’라고 항변하고 싶다. 2) 고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자기 건강을 해치는 댓가로 의료 시스템을 보완할 세금을 더 내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는 잘 수긍이 가지 않지만 세금으로 가격을 높이면 수요가 준다는 ‘죄악세’의 기본적인 작동 원리가 맞는다면 대의를 위하여 수긍할 수 있을 법도 하다.
이러한 주장과 추세 속의 가장 놀라운 변화는3)인간이 자기 종에만 적용하던 복지의 기준을 다른 동물, 특히 먹기 위해 기르는 가축에까지 적용하기 시작한 데에 있다. 최근 확대되고 있는 타종(他種, 다른 동물)에의 공감(共感)과 복지 개념의 확대는 전통적이고 당연시되던 인류의 식습관을 죄악시하고 죄책감을 발생시키는 ‘부작용’을 가지고 왔다.
‘나보다 세 달 늦게 태어난’ 유발 할라리도 (태어난 때와 헤어스타일은 천재와 자신을 연결시키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그의 두껍지만 놀라운 통찰로 넘치는 책 ‘사피엔스’에서 기계화된 방식으로 사육되고 있는 가축들의 감정과 정서적, 사회적 욕구에 대하여 지적한 바있다.
“..얄궂게도 우리의 우유 기계나 달걀 기계를 빚어내는 바로 그 과학 분야는 최근 포유류와 조류가 복잡한 감각과 감정적 기질을 지녔다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을 증명했다. 육체적 고통을 느끼는 것은 물론, 정서적 고통도 느끼는 것이다.”
- 유발 하라리 ‘사피엔스’ 中 (486p)
여기까지 오면, 나같이 선량한 사람은 고기를 먹는 것이 온난화현상을 일으켜 지구 곳곳에 문제를 일으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불편한데, 내가 씹고 있는 고기의 살아있을 때의 정서까지 떠올리자니 죄책감에 괴롭기 그지 없다. 다른 개체의 고통과 살생에서 배를 체우는 우리의 식습관은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가? 이제부터라도 가축들의 정서적이고 사회적인 욕구를 존중하고 이들이 천수를 다하여 자연사한 후에만 이들의 고기를 먹을 수 있다는 말인가?
iii.
해외의 식품 전시를 돌아다녀 보면 최근 몇 년 사이 ‘가짜 고기’ 업체가 부쩍 눈에 띈다. 진짜 고기가 아니니 가짜 고기라고 부를 수 밖에 없지만 가짜라고 다 나쁜 것은 아니다. 이 ‘가짜 고기’들은 대부분 콩이나 전분 등 식물성 원료를 만든다. 이 고기맛 패트는 초창기의 ‘입맛 버리는 식감’을 벗어나 이제 나 같은 고기 애호가도 분간하기 힘들만큼 고기 다운 식감과 맛을 갖추었다.
이 가짜 고기들은 전세계에 불고 있는 채식 열풍과 함께 인류가 새롭게 마주하게 된 육식의 문제, 즉 환경과 건강, 특히 인간 외 종(種)으로 확대되고 있는 복지(행복)의 문제에 대한 대안으로 떠오를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고기를 먹는 이유는 오래된 식습관으로 인한 식감과 맛 때문이지 가축의 학대나 도살에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가짜 고기 가공육은 기존의 (붉은 고기로 만든) 가공육이 생육 사용으로 인하여 불가피하게 가지고 있던 문제들을 해결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불가피한 첨가제 사용과 제한적인 보관방법, 짧은 유통기한 등의 문제들을 해결하고, 나아가 기존의 붉은 고기가 가지고 있던 식감과 맛을 더 싼 값으로 제공하는 동시에 콜레스테롤 상승 등과 같은 부작용을 해결하게 될 것이다.
가짜 고기(良質)가 진짜 고기(悪貨)를 구축(驅逐)하며 가축 사육으로 인한 환경 문제와 사육되는 가축들의 복지 문제가 자연스럽게 해결될지도 모른다. 그러면 언젠가는 지구에도 종(種)들의 평화가 올지어니. 일본을 포함하여 여러 나라에서 이미 상용화되고 있는 이 가짜 고기 제품이 정말 ‘리얼’하게 다가오는 그날, 나는 진짜 고기와 함께 나의 죄책감을 벗어버리고 가짜 고기를 애용하는 베지테리언으로 거듭 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