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에 대한 버르장머리 없는 상상
i.
짧고 강력한 말들이 있다. 그 중에 하나가 소크라테스가 말했다는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이다. 이 말은 2500년 전에 살았던, 소크라테스가 한 말이라 전해진다. 뚱보이며 못생긴 얼굴에 심지어 대머리인 소크라테스는 그래서인지 악처를 두었다고 전해진다. 그의 아내는 2500년 동안 세기를 거듭하며 사람들에게 ‘못된 여자’로 기억되었으니 당시 소크라테스가 그녀에게 받았던 잠시의 핍박은 이제 곱절로 갚고도 남았을 일이다.
너 자신을 알라.
소크라테스의 격언이라고 여져지는 이 말은 사실은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에 세겨져 있었던 것이라 한다. 구지 어디에 적혀있지 않아도 누가 해도 했을 법한 말이다. 다만 전해지는 바에 의하면 소크라테스가 이 말을 입에 달고 살았음은 분명하다.
하지만 “너 자신을 알라.”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누군가 면전에 대놓고 ‘니 자신을 알아라’라고 말을 한다면 제 아무리 너그러운 심보를 가진 사람이어도 이후에 그 사람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는 힘들 것이다. 신전 바닥에 세겨져 있는 것이 어울리는 이 말을 당대 지식인들의 넘치는 사랑을 받고 이를 시기한 자들에 의하여 독배까지 마셔야 했던 이 뚱보 대머리 아저씨가 진지하게 떠벌리고 다녔다고?
ii.
소크라테스가 살았던 시대의 아테네는 그야말로 연설가들의 전국시대였다. 소피스트들이라 불리웠던 이들은 정치적인 이슈를 넘어 신과 인간, 형이상학과 형이하학을 넘나드는 주제들을 논리로 다투었다고 전해지니 아마 어설픈 ‘논객’들이 판을 치는 인터넷 게시판과는 격이 다른 코퀄(높은 수준)의 토론 도시였으리라. 날고 기는 고수들이 바글거리는 아테네에서 강호를 평정한, 인류 역사상 최고의 이빨이 등장였으니 그가 바로 소크라테스이다.
소크라테스는 소위 ‘도장깨기’의 달인이었다. 그는 당시 유파(流波)를 이룬 유명한 소피스트들을 찾아가 소위 산파법(產婆法)이라는 비장의 논법으로 이들을 하나 하나씩 박살내었고 그가 유명해진 후에는 그에게 찾아온 수많은 도전자들을 남김없이 바닥에 내리꽂았다.
그는 단지 ‘말빨’만 센 파이터가 아니고 실재 월등한 논증 실력과 이론을 갖추고 있었다. 만화 <명탐정 코난>에서 코난이 범인을 지목하기 전 항상 “진실은 하나”라고 외치듯이 소크라테스는 이 세상에는 객관적인 ‘진리’라 부를 수 있는 것이 존재하고 우리는 이것을 찾아갈 수 있다고 믿었다. 물론 그의 철학을 여기에 명료하게 요약하는 것은 나의 능력 밖의 일이다.
사실 철학이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는 철학자들이 한 말이 어려워서라기보다는 그 말을 이해하기 위해 앞뒤로 너무 많은 말들을 이해해야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서양 철학사>라는 책을 쓴 러셀(Bertrand Russell)이란 사람은 그의 무모한 시도만으로도 칭찬 받을 만하다. (1950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이 책은 한글번역본(을유문학사) 기준으로 1000페이지에 달한다. 도대체 읽으라는 건가 말라는 건가.)
당대 챔피언 소크라테스는 훌륭한 제자들을 남김으로써 인류사에 영원한 챔피언으로 남게 되었다. 플라톤은 스승의 현란한 입담과 역대급 논쟁들을 글로 남겼고 그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학문에 걸쳐 문어발식으로 영향을 끼치어 서양의 사상과 과학의 기초를 다졌다. 이들로부터 시작된 서양의 학문이 지금도 한없이 커가고 있으니 이게 모두 소크라테스라는 전설의 ‘이빨’이 2500년 전 인류에 심어놓은 씨앗에서 비롯되었다 할 수 있겠다.
iii.
당시 고대 그리스에는 토론문화가 잘 발달되어 있었다. 아크로폴리스(종교와 정치의 중심)에서는 의회주의가 잘 발달되어 토론을 통하여 국가 정책이 결정되었고 아고라(시민들의 교류 공간, 광장)에서는 토론을 통하여 사건의 시비를 가리고 지적인 우열을 가늠하였다.
예나 지금이나 권위보다 합리성이 더 큰 힘을 가지게 된 사회에서 말을 잘 한다는 것은 커다란 무기가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수 많은 공격에 노출되는 위험한 일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마시게 되는 것은 어쩌면 충분히 예견된 일이었을 지도 모른다.
소크라테스가 사형을 선고 받고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을 하였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거짓말이다. 그는 죽음이란 것이 자신을 더 나은 세상으로 데려다 주는 과정이라고 믿었기에 독배를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그는 같은 이유로 자기를 감옥에서 데리고 나가기 위해 찾아온 친구도 그냥 돌려보낸다. (이와 관련 되어서는 <파이돈>을 보라)
소크라테스가 그 ‘대단한 주둥이’를 더이상 나불데지 않고 순순히 다음 세상으로 넘어가 준 것은 그를 죽이고 싶어했던 무리들에게 당시로서는 퍽 다행스런 일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목적을 이룸으로써 2천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자신들이 초딩들도 다 아는 ‘세상에 나쁜 놈들’로 회자되고 그 반면에 자신들이 죽인 소크라테스는 이후 4대 성인 중 한명이 될 수 있었다는 것은 상상도 못했을 게다.
iv.
다시 ‘너 자신을 알라’로 돌아와 보자. 당시 논객들은 서로 대화를 주고 받으며 논쟁을 하기도 했지만 지금처럼 한 두마디를 주고 받고 말꼬리를 잡고 늘어지는 개싸움 수준이 아니라 길게 자기의 논리를 펼치고 검증하는 연설의 형태를 띄었다. (플라톤이 쓴 책을 보면 그런 토론의 장면이 잘 나와있지만 자기 스승의 모습을 더 멋지게 그리기 위하여 작가적 상상력을 들이 부었을 수도 있다. 어차피 너무 오래된 일이라 사진도 동영상도 남아있지 않으니 그냥 그렇다고 생각해보자.)
‘신이며, 진리며, 덕이며..’ 그 시대 사람들은 이 돈 안되고 재미없는 주제들을 어떻게 참고 들을 수 있었을까. 물론 당시의 아테네 귀족들은 돈 걱정은 그리 할 필요가 없었고 너무나 심심한 나머지 세상의 모든 것들이 다 궁금하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아무리 지적이 호기심이 충만한들 재미가 없다면 그 지리한 이야기를 다 들어줄 수 있었을까?
나는 당시의 연설 혹은 토론이 오늘 날의 스텐딩 코메디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상상해 본다. 그 당시의 연사들은 아주 진지한 이야기를 마치 지금의 코메디언처럼 무척 재미있게 하는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사람들의 무지와 편견을 비웃는 블랙코메디가 전문이었겠지. 그렇게 생각해보니 그동안 풀리진 않았던 몇가지 의문들이 동시에 이해가 간다.
첫번째 의문은 소크라테스가 미움을 사 사형을 받은 이유이다. 그가 단순히 자신의 생각을 떠들고 다녔고 그의 생각이 일부 아테네 정치인들과 맞지 않았기 때문에 사형까지 받게 되었을까? 당시 아테네의 소피스트들 중에는 정말 말도 안되는 말을 말처럼 하는 이들이 널렸었으며 아고라(광장)는 그야말로 ‘아무말 잔치’였다. 단순히 그의 주장이 불온하다는 이유로 사형에 처해진다면 아고라는 벌써 문을 닫아야 했었을 것이다. 아마도 소크라테스가 사형을 선고까지 받은 원인은 유력한 정치인들의 숨기고 싶은 치부를 혹은 무지를 웃기게 꼬집은 것이 아니었을까. 정치인에게 진지한 비판은 고려해 볼 여지가 있지만 자신을 조롱거리로 만드는 풍자는 참아줄 수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최고 인기 연애인이었던 소크라테스가 전국 방송(아고라)에 나와 자기를 ‘깐’ 다면? 사형은 그의 풍자에 멈추고자 내려진 엄중한 경고였다. (당시 소크라테스가 사형을 피하여 그들의 경고를 경고로 끝낼 방법은 많이 있었지만 선생은 이 독배를 냉큼 받아 마셔 버렸다.)
두번째 의문은 일반적으로 ‘곱상한’ 철학자들의 생김새에 추남의 이미지를 각인 시켜버린 그의 외모 문제이다. 전해오는 그의 외모(못생긴 얼굴과 뚱뚱한 몸매, 대머리의 삼위일체)는 요즘 같으면 메니저와 코디를 대여섯은 거느렸을 그의 메가톤급 인기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더구나 수십년 간 대중의 앞에 서 온 그가 최소한의 자기 관리를 하지 않았다는 것은 믿을 수조차 없을 정도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당대 최고의 엔터테이너로서의 소크라테스가 일부러 만들어 낸 과장되고 우스꽝스러운 캐릭터였다고 생각해보니 이제야 그의 외모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는 스스로의 캐릭터를 만들고 유지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렇게 이해하고 보니 ‘철학자들은 못생겼다’라는 외모에 대한 편견이 해소되고 그의 무대인으로서의 노련함마저 느껴진다.
마지막으로 가장 풀지지 않았던 의문은 어쩌다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이 그의 대표적인 명언으로 남았는가이다. 이 공격적인 언사는 아마도 당시 소크라테스를 대표하는 최고의 유행어가 아니었나 싶다. 그는 그의 캐릭터를 못 생기고 무능하여 아내에게 핍박 받는 중년으로 설정했다. 그는 우스꽝스우면서도 자신의 주요 관객인 아저씨 팬들의 감성을 긁어주는 재미있는 캐릭터이다. 아저씨들에게 "아내는 남편의 상전"이라는 설정은 예나 지금이나 강한 공감대를 형성한다.
그의 캐릭터는 아내에게 핍박 받는 남편이다. 그의 캐릭터가 대박을 칠 수록 그의 아내는 점점 더 악처로 사람들에게 각인되었다. (이제는 돌이키기도 불가능하다.) 그리고 어느날 그는 아내에게 핍박 받는 자신의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며 아내가 자신에게 한 말을 전한다. '너 자신을 알라.' 이 말은 밖에서 다른 이들에게 뜬 구름 잡는 소리를 하고 다니는 소크라테스에게 자기 집안 사정을 먼저 돌아 보라며 그의 아내 크산티페가 던지 말이다. 이 한 마디 말이 소크라테스의 입에서 나오는 순간, 소크라테스의 캐릭터는 이 한마디 말과 일체가 되어 순식간에 아고라의 모든이에게 그리고 삽시간에 아테네의 모든이에게 퍼져나갔을 게다.
너 자신을 알라. 이 말은 동서 고금을 막론하고 돈 못 벌어오는 남편에게 아내가 던지는 촌철의 일언(一言)이며 쉬이 방어하기 힘든 극진 바가지이다. 하지만 이 말은 역설적으로, 자신을 영원한 악처로 던지며 소크라테스를 역사상 가장 위대한 철학자로 남긴 그의 아내의 숨은 내조이기도 하다. 그러니 이 멋진 격언은 앞으로 소크라테스가 아닌 그의 아내, 크산티페의 이름으로 기억되어야 할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