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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오카 오하시

우리 동네 이야기

by 박종호

나는 일본의 후쿠오카시 오하시라는 동네에 살고 있다. 조금 더 설명을 덧붙이자면 길게 누워있는 일본 열도의 네 개의 큰 섬 중 제일 아래쪽에 자리잡은 섬이 큐슈인데 그 섬에서 가장 큰 도시가 후쿠오카시이다. 큐슈의 북쪽 바다와 인접한 이 도시의 남쪽, 남구(미나미쿠)에 있는 동네가 내가 살고 있는 오하시이다.


집에서 걸어서 십분 거리에는 오하시역이있다. 오하시역에서 후쿠오카시의 가장 번화가라 할 수 있는 텐진에서 열차로 네 정거장 떨어져 있으니 서울 같이 대도시에 살던 느낌으로 치면 여전히 북적이는 동네일것 같은 데 의외로 아주 조용한 베드타운의 느낌이다. 하지만 그냥 베드타운이라 해 버리면, 다시 서울 사람의 느낌으로 고층아파트가 빽빽히 들어선 느낌이 드니 그저 작고 조용한 동네라고 하여 두자.


이 곳은 와이프의 고향이자 처가가 있는 곳이다. 장인은 이곳보다 조금 더 시골이라 할 수 있는 큐슈의 나카스시 출신인데 후쿠오카에서 대학을 마치고 줄곧 이곳에서 살았으니 그 기간이 곧 사십년이 되어간다. 그리고 그 중 대부분 시간을 지금 살았다.


장인의 둘째 딸이자 나의 와이프가 태어난 병원도 오하시에 있고 그녀가 다닌 초등학교와 중학교도 오하시에 있다. 일본은 사는 동네에 따라 고등학교를 배정하지 않기 때문에 와이프는 자기가 고등학교를 다닐 때 매일 아침 한시간 넘게 자전거를 타고 학교에 가야했고 게다가 학교 정문까지는 무진 가파른 언덕이었다며 마치 한참 어르신이 옛날 이야기를 하듯이 이야기하지만 역시 후쿠오카 안에 있는 대학을 다니고 중국 장춘으로 교환 학생을 와 나를 만나게 될 때까지 와이프는 오하시를 벗어나 살아 본 적이 없다.


올 초에 일본으로 오기로 결정하고 오하시에서 집을 찾았다. 처가랑 가까운 곳에 살아야 아이들 키우는 데 이런 저런 도움을 받을 것이라던가 도심과 멀지 않고 동시에 너무 번잡하지 않은 동네를 찾다보니 역시 오하시였다라던가 하는 것은 이미 내려져있는 결정에 대한 양념과 같은 것이었다.


와이프에게 일본으로 돌아오는 것은 오하시로 돌아오는 것이다. 내가 한국으로 돌아가면 서울로 가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아쉽게도 서울과 분당에 걸쳐 이곳 저곳 이사를 다니고 살아온 나에게는 '이곳이 아니면 안되'라든가 '당연히 이곳이지'라 할만큼 애착을 가진 동네는 없다.


내가 후쿠오카의 오하시에 처음 오게 된 것은 십이년 전이다. 당시 동경에 살던 동갑 사촌의 집에 짐을 풀고 동경에서부터 서남쪽으로 기차 여행을 떠났다. 일정 중간 중간에 일본 친구들의 집에 들러 신세를 졌는 데 일정과 위치상 가장 마지막 도시가 후쿠오카였다.


와이프는 나와 같은 시기에 중국 장춘에 교환학생으로 와 같은 반에서 공부하였다. 그날 저녁 예정보다 늦게 도착한 와이프집에서 지금은 나의 장인어른이 되신 와이프의 부친과 아주 조금 배워놓은 일본어와 영어를 섞어가며 한참을 떠들며 술을 마셨다. 장인은 그날밤 무슨 재미가 있으셨는지 다음날 후쿠오카 구경을 마치고 동경으로 돌아가는 나를 붙잡아 하루를 더 묵게 하시고 저녁에 술을 사셨다. 그날밤 장인과 술을 마신 곳이 '히사고'라는 가게인데 테이블 없이 가운데 주방과 주방을 둘러 'ㄱ'자 모양의 바(bar)로만 되어 있는 작은 이자카야였다. 나와 장인은 요즘도 이곳에서 술을 마신다.


십수년간 장인의 단골 술집이 바뀌지 않은 것만큼이나 오하시는 그동안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와이프가 대학 내내 아르바이트를 하였던 레스토랑 '치토(Chito)'의 주인 부부인 마스터와 이즈미상이 은퇴하여 젊은 사장에게 가게를 넘기고 히로시마로 돌아갔고 '히사고'의 맞은 편에 있던 소바집이 없어지고 야키토리 가게가 들어서는 등등의 작은 변화가 있었지만 오하시는 십년이란 시간 동안 그때나 지금이나 눈에 띄게 달라진 것을 찾기 힘들다. 그래서인지 오하시는 언제나 '음. 오하시.'하는 느낌을 준다.


한 동네에 삼십여년을 살고 있는 장인의 경우 만큼이나 전근이나 직업상의 이유 등 특별한 사정이 아니면 구지 여러 곳에 옮겨 살지 않는 이곳 사람들은 대부분 집 가까운 곳에 저녁이 되면 편하게 들러 혼자서 술을 홀짝일 수 있는 오래된 단골 가게가 있다. 단골 가게란 역시 들어서며 얼굴을 알아보아 주는 곳이다.


항상 새로 생긴 맛집을 찾아다니고 그 가게들이 몇 년이 못 가 새로운 가게로 바뀌는 서울에서 자란 나는 이 작은 동네에 수십년이 넘은 가게가 거리에 즐비한 것만큼이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집스럽게 단골집만을 찾는 것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뭐랄까 동네 사람들이 각자 자기가 가는 가게에 지분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일까. 단골 가게가 아닌 가게를 들어설 때면 왠지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게 된다. '어디 얼마나 맛있나 보자'라든가, '주인장의 인상이 좋은지' '종업원들은 친절한지 어떤지' 살피게 된다. 아직 검증되지 않은 맛에 대한 불안함도 있지만 이 가게가 단골이 될 수 있을까에 대한 신중한 검토이다. 이곳에 몇 년을 살다 보니 나도 이제는 술을 한잔 하러 나서면 언제나 가던 곳으로 향한다. 이 동네에서 시간을 들이며 천천히 지분을 쌓아가도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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