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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호 Apr 22. 2023

돌담사진관 돌담이

20230421

돌담이가 돌담사진관에 온 지도 반년이 다 되어간다. 막 어미의 젖을 떼었을 무렵 그의 어미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혼자 남은 돌담이는 미로마냥 꾸불꾸불 이어진 돌담 사이를 휘져으며 며칠이고 어미를 찾아 헤맸다. 미로는 끝이 없고 어미는 보이지 않았다. 오래전부터 이곳 사람들은 검은 돌로 집과 밭 주변에 담을 쌓아 올렸다. 귀 끝부터 꼬리 끝까지 하얀 강아지는 검은 돌담 사이의 좁은 길을 낑낑 소리를 내며 돌아다녔다. 동네 사람들은 어미를 찾는 돌담이의 애절함도 모른 채 작고 하얀 것이 귀엽다며 먹을 것을 던져주고 생선을 손질하던 손으로 그의 희고 작은 대가리를 쓰다듬고는 했다.


어미에 대한 그리움을 끊지 못해서일지 아니면 동네 사람들이 던져주는 먹이를 끊지 못해서일지는 알 수 없지만 돌담이는 시간이 흘러도 마을을 떠나지 않았다. 청보리가 흐르는 탁 트인 들판으로 나가기보다는 검은 돌담 사이에서 살겠다고 마음먹은 듯했다. 시간이 흐르자 돌담이는 하루가 다르게 덩치가 커져갔고 꼬질함도 나날이 더해졌다. 마을 사람들은 그의 귀여움이 식상해지자 더 이상 돌담이 가 자신의 집으로 먹이를 구하러 오기를 기다리지 않았다. 몇몇 집이 그를 위해서 담 아래 놓았던 먹이 그릇에는 먹이 대신 빗물이 고여 넘쳤다. 


마을 사람들이 돌담이에게 먹이를 주지 않은 지도 한참이 되었을 텐데, 돌담이 가 여전히 돌담 마을을 배회하자 사람들은 이내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돌담이는 얼핏 보아도 대형견의 새끼이다. 이대로 두어 사납고 커다란 들개가 된다면 마을에 오는 외지인들을 쫓아내는 골칫덩어리가 될 것이고 저렇게 아무도 돌보지 않아 병에 걸리거나 굶어 죽는다면 제발 자기 집 앞에서만 쓰러져 있지 않으면 좋겠는 데 자칫하면 족보에도 없는 송장을 치우는 난감한 상황을 맞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술자리에서 마을 사람들 사이에 이런 우려가 오가자 이장은 다시 한번 주민들을 위해 공권력을 발동하기로 결정했다. 실은 돌담이의 어미도 이장의 공권력에 의해 희생되었다. 완장을 찬 자를 조심하라. 


몇 년 전 한 연예인 커플의 섬살이가 티비를 통해 알려진 후, 육지의 젊은이들은 저들도 그들처럼 살겠다고 앞다투어 이 섬으로 내려왔다. 그들은 티비에 나온 연예인 커플처럼 하나같이 커다란 개들을 데리고 왔는 데 그들 중 대부분, 대충 꼽아도 열의 여덟, 아홉은 그 연예인들이 말해주지 않았던 혹은 그들은 느낄 필요가 없었던 이유들 때문에 채 1년을 버티지 못하고 육지로 돌아갔다. 섬은 땅이 좁은 데 육지는 집이 좁다. 그들은 도시의 화려함과 편의를 대신 이곳에서 가지려 했던 큼직한 마당과 그 마당에서 키우려던 커다란 개를 버리고 육지로 돌아갔다. 버려진 개들은 이내 무리를 지어다니며 사람들을 위협했고 시정부는 들개가 되어 버린 유기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담반을 신설했다. 잡혀간 유기견은 새로운 주인을 기다리지만 대부분이 살처분이 된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마당발로 유명한 마을의 이장은 사돈의 팔촌의 지인이라는 시청 공무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응 내일 아침 빨랑 와서 잡아가. 얼마나 마셨는지 혀가 꼬여도 한참 꼬인 목소리이다. 이대로라면 돌담이는 내일 아침 일찍 시에서 내려온 한 무리의 사람들에게 끌려가겠구나. 술집 구석 자리에서 졸고 있던 김씨는 고개를 들어 이장을 째려보았다. 그래보아야 허옇게 벗겨진 뒤통수이지만. 잔인한 놈들! 잔인한 놈들! 그는 벌떡 일어나 이장처럼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로 외치고 싶었지만 목소리는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육지에서 나고 자란 그는 육지 것들의 매정함에 질려 몇 해 전 이 섬으로 내려왔다. 아름다운 것만 보고 살려고 사진사가 된 그는 섬에 온 후로 매일을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살았지만 또 하루도 빠짐없이 섬사람들의 텃새에 치이며 살아야 했다. 차라리 익숙한 육지것들이 낫겠다. 그날 밤 그는 지난 시간 섬에서 겪었던 억울한 일들을 회고하며 이제 미련 없이 떠나자며 스스로의 결심을 굳혀가고 있었다. 다행히 그는 혼자 살기에 누군가의 동의를 구할 필요가 없다. 게다가 그의 집 작은 마당에는 버리고 갈 개도 없으니 그에게는 이제 이 섬과 헤어질 결심만 있으면 되는 일이었다. 그런데. 하필. 이 막중한 순간에, 인간의 이기심이 낳은 결과를 또 다른 이기심으로 묻어버리려는 무도함과 마주하게 되다니. 그는 오늘 낮에도 자신의 집 돌담 밑에서 기웃거리는 돌담이에게 아껴 먹던 소세지의 반 쪽을 던져 주었더랬다.   


결국 그는 돌담이를 구하기 위해 이 섬에 남기로 했다. 그렇다. 그에게는 사는 자리를 옮기는 결정보다 생명 하나를 죽이고 살리는 결정이 훨씬 더 중했다. 돌담이는 이제 제법 컸다. 야무진 근육과 잘 빠진 자세를 보니 돌담이는 원래 뼈대 있는 족보의 자손이었다보다. 돌담이를 위해 섬에 남기로 결심한 김씨는 그날 밤 이후 텃새에 주눅 드는 선량한 육지것이 되기보다는 누가 뭐라든 하고 싶은대로 하고 사는 되바라진 육지것으로 살기로 했다. 그가 적응을 포기하자 주변 사람들이 그에게 적응하기 시작했다. 이제 그는 누가 뭐라든 상관하지 않는다. 밖에서 무슨 일이 있었다 하여도 돌담으로 둘러진 작은 마당으로 돌아오면 온종일 그를 기다리던 돌담이가 그를 반긴다. 참으로 열렬한 환영이다. 이 반나절만의 뜨거운 상봉, 이 순간 담 밖에서 입은 상처들은 씻은 듯 아물고 마음 깊숙이엔 살아가는 힘이 솓는다. 돌담이에게는 그가, 그에게는 돌담이가 있어 참 좋다. 


# 돌담이의 이야기는 픽션입니다. 하지만 제주 대정읍 돌담사진관에 가시면 정말로 선량한 사진작가와 그와 함께 사는 돌담이를 만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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