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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풍경

20240913 인천공항

by 박종호

새벽 4시 반, 공항으로 가는 버스가 정류장에 멈추어 섰다. 만석일 뿐 아니라 전 정류장에서 남은 자리를 자리를 확인하지 못하고 태운 5명을 내려놓고 떠났다. 이번 명절에 공항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120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민족의 대이동이 시작되었다. 나 역시 그중 한 명이다.


예전에는 추석과 설에 고향으로 가는 귀성길의 정체가 가장 큰 뉴스 중에 하나였는 데 이제는 고속도로에 쭉 늘어선 차들 대신 해외여행을 떠나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공항의 풍경이 화제이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나는 귀성이란 연중행사를 모르고 자랐다. 어릴 적에는 텔레비전을 통해 귀성의 풍경을 보았다. 고향으로 가기 위한 차들로 꽉 막힌 고속도로와 고향 가는 기차표를 구하기 위해 매표소 앞에서 밤샘을 하는 풍경을 보면 사람들은 왜 저리도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 할까 궁금했다.


이제 명절이면 사람들은 고향 대신 공항으로 몰려든다. 주말과 이어진 연휴는 모처럼의 외유를 떠나기 좋은 타이밍이다. 명절에 집에 있으면 노인들의 잔소리가 싫어서 떠난다는 골드미스들의 변명도 철 지난 이야기. 이제는 잔소리하던 노인들이 먼저 해외로 나간다. 해외로 떠나는 민족의 대이동이 벌어지는 새로운 명절의 풍경을 보니 궁금해진다. 사람들은 왜 더 이상 고향으로 돌아가는 일에 집착하지 않는가.


약속된 시간에 맞추어 집으로 전화를 하여야 목소리라도 들을 수 있고, 오랜 시간 떨어져 지내면 서로의 얼굴을 볼 방법이 없어 편지 봉투 속에 사진을 넣어 안부를 전하던 때가 있었더. 너무 옛날이야기인가? 지금도 남아 있는 나의 군대 적 사진은 모두 당시 부대에서 편지 봉투에 넣어 집으로 부쳤던 것들이다. 내가 너무 옛날 사람인가?


핸드폰의 버튼만 누르면 멀리 있는 가족과도 얼굴을 보며 생생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고 마음만 먹으면 하루 중 모든 일과를 실시간으로 공유할 수 있는 시대이다. 이렇게 쉬이 전화도 하고, '원하기만 한다면' 언제든지 전화기 너머로 서로의 얼굴을 볼 수 있는 데 굳이 모처럼의 연휴에 고향에 내려가 직접 만나야 할 이유가 있으려나.


평소의 '언터쳐블'한 비대면의 연결이 쉬워진 대신, '터처블'한 만남은 점점 더 줄어든다. 명절날 서울서 내려온다는 자식에게 '아야, 뭐 쓸디없는 거 사오지 마라. 얼굴만 보면 되았지' 하던 드라마 속 시골 엄니의 말이 이제 정말로 핸드폰 너머로 얼굴만 보고 지나가면 되는 명절이 되어버렸다.


새로운 명절의 풍속은 미혼 남녀와 취준생을 잔소리에서 구하고 조선의 며느리들을 가사에서 구하였다. 여자들은 하루 종일 음식을 하고 남자들은 모여 고스톱을 치던 예전의 명절이란 다시 돌아갈 수 없는 풍경이겠지만, 나는 가끔 어릴 적 온 가족이 모여 북적거리던 그 명절의 아침이 그리울 때가 있다.


오래전 읽었던 기사가 떠오른다. 시댁에 모이는 스트레스로 인하여 명절을 전후하여 이혼율이 급증한다는 내용이었다. 해외로 나간 대한민국 부부들의 금슬은 이제 좀 나아졌으려나.


대이동에 나선 사람들로 공항은 북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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