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공중전화에 십 원짜리 동전 두 개를 넣어 먼 곳에 떨어진 사람과 이야기를 하던 시절이 있었다. 공중전화가 등장하는 그룹 O15B의 <텅 빈 거리에서>는 지금 들어도 명곡이지만 노래방에서 부를 때면 '외로운 동전 두 개뿐'이란 가사에서 '쿡'하고 웃음이 터져서 앞서 잘 잡아놓은 감정을 흩트려 버린다.
떨리는 수화기를 들고 너를 사랑해 눈물을 흘리며 말해도 아무도 대답하지 않고 야윈 두 손에 외로운 동전 두 개뿐 (015B, <텅 빈 거리에서(1990)> 에서)
그 공중전화의 색깔이 하늘색으로 바뀌며 오십 원으로 바뀌었고 다시 얼마 지나기 않아 전화카드라는 놀라운 기술의 도약 덕분에 무거운 동전 대신 얇은 카드를 지갑에 넣고 다닐 수 있게 되었다.
첫눈이 내리면 공중전화 부스에는 언제나 긴 줄이 세워졌다. 첫눈이 오는 것이 무어 그리 대단한 일이었는지 남자 친구 혹은 여자 친구에게 전화하여 무슨 고백이라도 하듯 첫눈이 온다고 알렸다. '여기 눈이 와.' 상대는 대답한다. '응 여기도.' 같은 하늘 아래 사는 이들이 서로 전화를 하여 현재의 날씨를 공유하다니. 얼마나 의미 없는 대화인가 그러니 얼마나 낭만적인가. 애인이 없는 이들은 급조된 장소에 모여서 첫눈을 핑계로 술을 마셨다.
어느 해인가 통신의 기술은 널뛰기를 하여 사람들의 거리는 더욱 촘촘해졌다. 삐삐가 나왔고 시티폰이란 것이 잠시 나왔다 금방 사라지고는 핸드폰의 시대가 도래하였다. 스마트폰으로 손안에 컴퓨터를 들고 다니게 된 지도 지금부터 한참 된 오래된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이제 우리는 네트워크 안에서 가족과 친구, 지인뿐 아니라 생면부지의 타인들과도 접속된 채 살아간다. 언제라도, 누구에게도 쉬이 말을 걸고 영상과 소리로 대화할 수 있게 되었다.
공간을 넘어 생각끼리 바로 연결되는 텔레파시처럼, 발달된 기술 덕에 사람들 사이의 연결에는 시차가 사라졌다. 그리고 시차와 함께 그 시차에 존재하던 기다림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군대에서 손 편지를 주고받던 이야기는 너무 극단적이지만 가끔 비가 오면 공중전화 부스에서 서로의 삐삐에 음성메시지를 남기던 시절이 떠오른다. 빠르지 않았다. 답변을 기다려야 했고 그 기다림의 시간 동안 서로를 그리워할 수 있던 시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