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것을 시도하자
나는 한번 습관을 정하면 잘 바꾸지 않는다. 여름과 겨울의 옷은 매일 같은 스타일이다. 여름에는 흰색 혹은 회색 폴로티와 면바지를 입고, 겨울에는 긴 팔 와이셔츠를 입는다. 와이셔츠 색은 모두 푸른색이다. 사무실에서 점심을 먹을 때는 근처 서브웨이에서 샐러드를 사 와 먹는다. 하루는 참치 샐러드, 다른 하루는 튜나 샐러드이다. 두 샐러드의 맛은 대동소이하다.
나는 패턴을 정하면 잘 바꾸지 않고 반드시 패턴에 따라 움직이려 한다. 이유를 굳이 따지자면 나 스스로 만들어낸 집착이다. 어릴 적부터 호기심이 많았던 나는 항상 쉬이 관심사가 바뀌었다. 매번 바뀌는 관심사를 따라 이것저것 시도하였지만 이내 또 다른 관심사가 생기면 그동안 하던 일은 그만두고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 무엇이든 이렇게 수박 겉핥기식으로 하니, 실력도 늘지 않고 일의 결과도 볼 수 없었다.
어느 날 나는 쉬이 그만두고 꾸준히 하지 못하는 습관을 고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첫 번째 훈련은 매일 아침 108배를 하는 일이었다. 코로나로 돌아다니지 못하고 집에 발이 묶여 두 해를 꼬박 지내던 시절이었다. 100일 동안 108배를 하는 것은 참 힘들고 지루했지만 나는 내친김에 200일을 채우고 그만두었다. 매일 108배를 천일, 만일동안 하는 사람이 있다지만 나에게 200일의 절하기 훈련은 매우 뿌듯한 경험이었다.
안국동에 사무실을 열고 그 근처에 작은 숙소를 얻었다. 그리고 내가 만든 습관은 매일 아침 북악산을 오르는 일이었다. 비가 오는 날을 피해 거의 매일 말바위까지 올랐다. 주말이면 백악산 정상을 지나 삼청공원으로 내려왔다. 거의 일 년을 뜨거운 여름에도 쨍하게 추운 겨울에도 산을 올랐는 데, 어느 추운 날 산에 올랐다가 심하게 감기가 걸린 후에 습관을 멈추고 이제는 맑은 날 가끔 기분 날 때에 산을 오른다.
패턴이 있는 생활은 행복하다. 우선 무엇을 할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란 자질구레한 고민들이 사라진다. 정해진대로 하면 되니까. 고민의 에너지와 시간을 덜어 다른 일에 집중할 수 있다. 변수가 사라지면 예측이 수월해지고 예측이 가능하면 불안이 줄어든다. 나처럼 성격이 예민하여 작은 변화에도 쉬이 불안을 느끼는 사람들에게는 패턴을 만들고 따라가는 생활이 안정감을 준다.
꽤나 오랫동안 일상에 큰 변화를 주지 않으려 노력하며 지낸 덕에 아침에 일어나서 잠자리에 들 때까지의 행동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패턴에 익숙해지면 마음도 몸도 무리 없이 상당히 편하다. 하지만 요즘 나는 의도적으로 일상 속에서 새로운 시도들을 하려 한다. 나이가 들 수록 더욱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가 힘들다는 데 나는 스스로 점점 더 고루해져 가는 것이 아닐까 하는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양복을 사러 백화점에 들렀다. 새로 산 두 벌의 양복재킷과 네 벌의 양복바지가 모두 남색이다. 푸른 셔츠와 가장 잘 어울리는 색을 골랐기 때문이다. 어제 점심에는 샐러드 말고 샌드위치를 먹어 볼까 하다가 마지막 순간에 다시 참치 샐러드로 마음을 굳혔다. 오래된 습관일수록 고치기가 힘들다. 굳히기가 어려워 보이지만 굳고 나면 굽히기가 더 어려운 모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일부터는 그동안 안 해보았던 것들을 시도해 보아야겠다.
스트레칭도 좀 하고, 더 유연하게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