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땡기는

<스토너>를 읽는 중

by 박종호

소설이 '땡기는' 날이 있다. 라면이 당기는 날이 있는 것처럼. 아침부터 봄비가 내리는 토요일이다. 점심을 먹고 저녁 약속 사이에 제법 긴 시간이 남았다.


시간을 보낼 곳을 찾다 서점으로 향했다. 서점은 시간을 보내기 좋은 공간이다. 책을 사지 않아도 서가 사이를 혼자 돌아다니기 편한 장소이기 때문이다. 카페에 가면 커피라도 하나 시켜야 하고 식당은 밥은 먹으면 금방 일어나야 한다. 비용과 눈치를 모두 들이지 않고 편하게 시간을 보내기에는 서점이 최고이다.


나는 자주 서점에 가서 서가를 걷는다. 어떤 책이 새로 나왔는 가 궁금하기도 하고 때로는 읽을 책을 고르러 서점에 가기도 하지만, 퇴근하고 그냥 별일 없이 서점으로 향하기도 한다. 아주 큰 서점이 근처에 있다는 것은 매우 유용한 일이다. 딱히 불러주는 사람도, 갈 곳도 없는 저녁시간에는 서점을 간다.


나는 서가를 걸으며 차곡하게 쌓여있는 책들의 제목을 본다. 그중에 보았던 책이 나오면 반갑기도 하고 보려고 벼르다 아직 못 읽고 있는 두꺼운 벽돌책들을 보면 다시 한번 살까 말까를 고민하기도 한다. 목차를 뒤적이고 묵직한 책을 뒤집어 가격을 확인한다. 나는 책을 고를 때 무게와 페이지수로 책의 가성비를 따진다.


대형서점은 책의 내용에 따라 코너를 정해서 같은 분야의 책들끼리 모아 놓는다. 서점에 가면 그날그날의 관심사에 따라 각 코너에 머무르는 시간이 다르다. 그날의 정서와 기분에 따라 끌리는 책의 종류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서가에 서서 그날 당기는 책들을 찔끔찔끔 들추어 보며 그 안에서 위로와 격려를 얻는다.


오늘은 왠지 소설이 당기는 날이다. 비가 오는 날 집구석에서 배를 깔고 누워 나에게 무익무해한 누군가의 이야기를 따라는 것은 소박하지만 바꿀 수 없는 큰 즐거움이다. 미래의 샘법으로 머리가 복잡할 때 나의 현실을 떠나 소설 속 세상에서 살다 돌아오는 것은 주말의 여행처럼 삶의 기분을 전환시켜 준다.


타인의 삶을 한 권의 책으로 압축한 소설 속에서 살다 나오면 간혹 그 안에서 나의 해답을 발견할 때도 있다. 그렇다면 매우 큰 행운이다. 위로를 받고 기분을 전환하려 읽은 책에서 지혜까지 얻었기 때문이다. 소설 읽기는 역시 유익한 엔터테인먼트이다. 게다가 무척 안전하다.


오늘은 서점에서 존 윌리엄스의 소설, <스토너>를 집어 들었다. 고속도로 차창을 보고 있는 듯한 빠른 전개, 압축적인 표현, 공감을 이끄는 비유가 점점 더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작가가 1965년도에 쓴 1910년도의 이야기가 2025년의 나에게 매우 현실적으로 느껴진다. 마치 시간여행을 하고 있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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