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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루

봄비 내리는 금요일 오후

by 박종호

아침부터 비가 내리더니 오후에는 여름 장맛비처럼 주룩주룩 비가 내렸다. 5월 중순의 봄비라고는 어울리지 않는 폭우다. 혹시 기후의 변화로 봄의 기후도 바뀌어 버린 것인가. 지구와 계절의 불가역적인 변화를 겪는 시대이다. 부슬부슬 내리며 야들야들한 정서를 끌어내는 봄비가 그리워졌다.


하루 종일 머리가 무겁다. 아내가 비가 오는 날이면 머리가 아프다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는 데 나이가 들어 체질이 변했는지 나도 흐리고 비 내리는 날이면 저기압성 두통을 앓는다. 괜한 피로감에 사무실을 나와 산책을 했다. 창덕궁 담벼락을 따라 원서동길을 걸었다. 비가 오니 더욱 운치가 있다.


원서동길 중간 즈음에 노무현재단의 건물이 있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편하게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고 3층 테라스에서 창덕궁의 내원도 보인다. 비가 거세어져 노무현 기념관 건물로 들어가 비를 피했다. 자동문 안으로 들어서니 지하 홀에서 연극 리허설 하는 소리가 쩌렁쩌렁 들렸다.


이 건물의 1층에서 카페가 있는 3층까지는 계단식으로 이어져있다. 누구나 편하게 앉아 책을 읽고 수다를 떨 수 있는 공간이다. 계단을 걸어 3층에 이르면 카페가 나오고 테이블과 소파가 구비되어 있다. 카페를 이용하는 사람들의 공간이 아니고 그 공간의 사람들을 위해 열린 카페이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음료수를 앞에 놓고 책을 읽는다.


카페 키오스크의 메뉴를 보니 이곳의 아메리카노 이름은 <세계 시민 커피>이다. 이 재단의 이사장을 지냈던 유시민 씨가 남기고 간 메뉴가 아닐까 생각하니 픽하고 웃음이 났다. 잘 갖추어진 공간에 공부를 하는 사람들이 제법 많다. 주말에 일찍 와서 글 쓰고 책 읽기 좋은 장소이다.


비가 좀 잦아들고 잡혀 있는 회의에 참석하려 서둘러 사무실로 돌아왔다.

금요일은 참 시간이 더디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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