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e Sonnenblume. 福岡県福岡市西区今宿駅前1-2-17
둘째 수연이의 생일에 맞추어 후쿠오카 집에 왔다. 아내의 고향인 후쿠오카에 이사를 온 지도 벌써 9년이 되어간다. 2년 전부터 나는 회사일로 주로 한국에 있고 틈이 날 때마다 서울과 후쿠오카를 오가며 지내고 있다. 후쿠오카시의 북단에 후쿠오카 타워가 있고 그 앞으로 모모치하마 비치의 긴 모래사장이 펼쳐진다. 우리는 그곳에서 도보로 10여분 떨어진 곳에 살고 있다.
내가 사는 모모치하마에서 해안 길을 따라가면 이토시마라는 지역이 나온다. 이토시마는 현해탄 쪽으로 툭 튀어나온 반도이다. 이 반도는 파도를 사랑하는 서퍼들이 모이는 해변으로 유명하다. 그리고 그 젊은 이미지답게 도자기와 가죽 공예 등을 하는 공방들이 여럿이고 작은 카페들과 맛집들이 넓게 퍼져 있다.
이토시마를 가는 길 목에 우리가 독일 빵집이라 부르는 빵집이 있다. 이 빠집입의 이름은 <존넨부르메, Die Sonnenblume>인데 몇 년째 절대 기억되지 않는 이름이니 우리 집에서는 그냥 <독일 빵집>으로 불린다. 이곳으로 이사 온 후 몇 년째 주말이면 아침을 먹으러 들르는 가게이다. 오늘 아침에도 내리는 비를 뚫고 독일 빵집으로 향했다.
존넨부르메는 오래된 빵집이다. 이 집이 독일 빵집으로 불리는 이유는 독일어 이름뿐 아니라 이 집 사장님이 독일 사람이어서 이다. 이 가게를 연 독일인 베츠(Erwin Betz)씨는 1972년 일본에 와서 가정을 꾸렸다고 한다. 그는 독일에서 빵을 배워 온 사람이니 가게의 역사를 짐작할 법 하지만 100년 노포가 즐비한 일본에는 아직 역사를 자랑하기에는 이른 감이 있다.
높은 셰프 모자를 쓰고 가게에 나와 빵을 만들던 독일인 할아버지는 몇 년 전부터 보이지 않고 이제는 그 아들이 빵을 만든다. 그도 독일에서 제빵 기술을 배우고 돌아와 아버지가 일본에 만든 독일 빵집의 정체성을 이어가고 있다. 브레첼과 크고 둥근 호밀빵, 반죽을 꼬아서 구워낸 헤페쪼푸(Hefezopf)도 보인다.
독일 빵집은 빵이 진열된 장소와 테이블 구역을 합한 만큼의 널찍한 제빵실을 갖추고 있다. 매장에서 유리로 된 벽 안쪽의 제빵실이 보이는 데 항상 서너 명의 제빵사들과 2대 마이스터(장인)가 분주하게 빵을 만들고 있다. 한 곳에 오랫동안 자리 잡은 가게답게 탄탄한 고객층을 확보하고 있다는 뜻이다.
오래전 일본으로 건너온 독일인이 만든 이 가게는 일본의 노포들이 지니는 몇 가지 특징을 보여준다.
1. 정체성이 분명하다 : 일본의 다른 빵집에서 볼 수 있는 여러 가지 빵들도 있지만 주력은 독일 빵으로 시그니쳐 메뉴이다. 매장에도 오래된 독일 도시와 라인강의 풍경이 담긴 사진들을 걸고 독일풍이라는 통합적인 이미지를 지향한다. 또한 정체성을 사람으로 이어간다. 대부분의 노포는 가업으로 대를 이어 경영한다.
2. 한 곳에서 오래 장사한다. : 프랜차이즈가 잘 발달한 일본이지만 노포들은 자리를 옮기거나 쉬이 확장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대를 이어 장사를 할 수 있는 것은 오랜 시간 품질을 유지하며 신뢰를 얻고 탄탄하고 넓은 고객을 확보하여 (심지어 고객들도 대를 이어가며) 탄탄한 매출을 꾸준하게 유지한다.
3. 보수적으로 하지만 역시 진화한다. : 이 글을 쓰며 독일 빵집도 온라인 판매를 시작하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세대가 바뀌며 지역을 넘어선 고객 확보에 나선 것이다. 하지만 온라인 샵에서 팔고 있는 메뉴는 무척 한정적이다. 모두 독일 전통 빵이며 6종류에 불과하다. 고객의 확장과 품질의 유지, 정체성의 강화를 모두 노렸다. 일본의 노포들도 보수적이지만 역시 진화하는 중이다.
무엇보다 우리 식구가 이 빵집을 좋아하는 이유는 빵이 맛있기 때문이다. 가격은 합리적이다. 한국의 빵 가격에 비하면 무척 싸게 느껴지기도 한다. 우리는 주로 매장에서 아침 식사로 빵을 먹는 데, 커피는 여러 번 리필이 가능하고 식빵을 사서 비치된 토스트 오븐에 구우면 공짜로 버터와 잼도 제공한다. 여느 일본 가게들과 같이 점원들은 앞다투어 친절하다. 이 가게 점원들과 제빵사들에게는 확고한 품질과 정체성에서 나오는 어떤 자부심 같은 것이 느껴진다. 고급스러운 화장실을 비치하고 있음도 빼놓을 수 없다.
우리 집 식구들은 독일 빵집의 오랜 고객이다. 오랫동안 신세를 지고 있다. 자기 동네 빵집을 자랑하며 너무 너스레를 떠는 것 아니냐 하겠지만, 이런 작지만 아늑하고, 편하고 맛있는 명장의 빵집이 지척에 있는 것은 항상 감사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