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악산의 옛 이름은 백악산이다. 흰 바위들이 여기저기 솟아 있는 것을 보면 이 산을 왜 백악산으로 이름 지었는지 이해가 간다.
내가 백악산을 오르는 코스는 내가 사는 안국동에서 계동길을 따라 시작된다. 계동길 끝에 있는 중앙고등학교 정문에서 왼쪽으로 고개를 넘으면 가회동길이 나온다. 가회동 길을 끝까지 걸으면 감사원이 나오는 데 감사원을 끼고 도로를 따라 계속 걸으면 꾸불꾸불 산 등성이를 지나 와룡공원이 나온다. 와룡공원은 성곽의 담벼락을 접하고 있는 데 이 성곽을 끼고 난 길을 따라 내려가면 혜화동이 나오고 이 걸어 오르면 백악산의 숙정문, 곡창, 정상인 백악마루에 이르는 등산로를 만나게 된다.
조선의 궁궐인 경복궁의 자리를 잡는 데 무학대사와 정도전은 서로 인왕산과 북악산을 궁의 주산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북악산이 궁의 주산으로 선택되어 북악산 밑자락에 경복궁이 지어졌다. 청와대는 그 보다 더 산에 바싹 붙여 자리를 잡았다. 백성들은 바람 잘 날 없는 나라꼴을 보며 역시 무학대사가 옳지 않았느냐라는 말들을 한다. 북악산의 능선을 따라 걸으면 남산이 정면으로 마주 보이고 아래로 청와대와 경복궁이 내려 보인다. 몇 년 전 개방된 대통령길은 역대의 대통령들이 산책을 하던 곳이다. 500년 조선과 80년 대한민국의 권력의 최고봉이 살던 곳에 편히 드나들고 왕과 대통령만이 걷던 길을 걸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북악산은 해발 300여 미터의 높지 않은 산이다. 완만한 능선을 따라 걸으면 볼거리가 많다. 우선 산을 오르면 서울 시내가 시원하게 내려다 보인다. 서쪽으로는 잠실의 롯데타워 너머까지, 남쪽으로는 남산을 사이에 두고 서울 시내가 아래로 펼쳐진다.
말바위는 내가 매일 아침 오르던 곳이다. 양반들이 말을 타고 올라와 놀았다 하여 말바위라는 설과 북악산의 오른쪽 끝 바위라 말바위라 부른다는 설이 있는 데, 나는 첫 번째 설이 더 마음에 든다. 이곳에 오면 양반이 타고 온 말은 묶여 있는 데 양반은 어디에 숨어서 무슨 짓을 하는지 보이지 않는다.
성벽을 따라 등산로를 오르면 숙정문이 나온다. 한양의 북문이다. 이 문은 도성의 음기를 다스리는 문이라 풍기가 문란해지면 문을 단단히 걸어 잠그고 도성 안 출산율이 낮아지면 문을 활짝 열어 출산을 장려하였다는. 인구 감소가 심각한 요즘인지 숙정문의 문은 활짝 열려있다. 음기는 충만한데 출산으로 이어지지는 않는 시대이다.
나무 데크와 두꺼운 밧줄로 엮은 거죽으로 잘 정비된 등산로를 따라 꽃나무를 보는 것도 즐겁다. 산 중간중간에는 큰 바위들이 솟아 있고 동방만세와 같이 바위틈으로 물이 흘러 고이는 자리도 있다. 도심과 가까운 산이지만 여러 새들과 다람쥐, 산에 사는 고양이를 만나기도 한다. 나는 한가로운 아침 북악산 등산로에서 꽃사슴 가족과 여러 번 마주쳤다.
산의 가장 높은 정상을 마루라 한다. 백악마루에는 큰 바위가 하나 서 있다. 사람들은 그 위로 올라가 같이 온 일행에게 사진을 찍어달라 부탁한다. 혼자 온 사람들이 종종 나에게 부탁을 하는 데, 구르면 낭떠러지인 바위 위에서 똥폼을 잡는 태가 위태위태하다. 아주 작은 돌비석에 백악산이라 적혀있다. 청와대 뒤에서 서울을 지키는 군사적 요지로 이전에는 이 자리에 대공포가 놓여 있었다고 한다. 자랑도 아닌 데 표지를 세워 놓았다.
정상에서 내려오면 왼쪽으로 성벽을 따라 길게 내려가는 계단길이 보인다. 창의문으로 내려가는 길이다. 긴 계단길을 내려가야 하여 무릎의 연골이 아까운 분들에게는 추천하지 않지만 일단 내려가면 볼거리가 많다. 창의문, 무계원, 윤동주 문학관을 볼 수 있고 길을 잘못 들거나 자신의 체력을 과신하면 인왕산 등반으로 이어진다.
나는 주로 올라오던 길을 되짚어 내려오다 삼청공원으로 이어지는 데크길을 따라 내려온다. 삼청공원에는 아주 예쁘게 지어진 <숲속도서관>이 있다. 얼마 전 리뉴얼을 마친 숲속도서관은 그 안에 작은 카페도 들어서도 마루로 된 공간에서 볕을 쪼이며 창 밖의 나무들을 보다가 졸 수 도있다. 도서관을 찾는 사람도 드물어 아주 조용히 한숨을 돌리고 쉴 수 있는 공간이다.
조만간 이사를 가게 되었다. 이사를 가면 지금처럼 편하게 북악산에 오르지 못할 것이다. 나의 아침을 열어주던 백악산과 백악산 산신령님께 새삼 감사한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