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시 반 즈음에 산으로 향했다. 뒷산 북악산에 아침에 오를 때면 마주치는 어르신들이 계시다. 이른 새벽에 자주 마주치는 것을 보면 인근에 살고 계신 분들임이 분명하다. 그 중에 한 분은 항상 누런 황구를 데리고 다니신다. 내가 올라가는 시간에 산을 내여오는 중이니 오랜 세월 부지런함이 몸에 베인 사람임이 분명하다. 목줄을 하지 않은 황구는 항상 어르신 보다 앞서 걷는다. 황구는 목줄을 하지 않았지만 위협이 되지 않을 만큼 아담한 크기에 온순한 얼굴을 하고 있다. 뒤따라 내려오는 어르신은 살짝 등이 굽어 더 작아 보이지만 등을 활짝 펴도 그다지 큰 키는 아닐테다. 허연 백발에 수염을 길러 개를 한마리 앞세우고 내려오는 모습은 영락없는 산신령이다. 나는 짧은 목례를 하고 지나친다.
한양 도성의 외벽을 끼고 걷다가 나무 계단으로 이어진 구조물을 올라 성벽 안쪽으로 넘어간다. 말바위로 가는 길이다. 북악산의 등산은 이 능선을 따라 이어지지만 나의 아침 산행은 여기가 목적지이다. 성벽을 넘어가게 만든 구조물은 높고 평평하다. 이곳에 서면 서울의 서쪽이 지평선까지 내려 보이고 멀리 서울 외곽의 산 뒤에서 해가 떠오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나는 이곳에 올라 스트레칭을 하고 짧게 하루를 축복하는 기도를 하고는 산을 내려온다. 아침 마다 산에 올라 태양의 기운을 받는 것은 하루를 시작하는 좋은 방법이다.
등산로를 따라 내려오면 삼청공원이 나온다. 공원을 둘러 난 산책로를 걷는 사람들과 시에서 설치해 놓은 기구를 이용해 운동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예쁜 오두막처럼 생긴 숲속 도서관은 아직 문을 열기 전이다. 공원을 나와 길을 건너면 감사원을 끼고 한옥마을로 가는 언덕이 나온다. 언덕을 올라 북한대학원 맞은 편에 알록달록한 벽화가 조각된 담벼락이 서 있는 건물이 베트남 대사관이다. 대사관 입구에는 언제나 검은 고양이 식구가 누워 있다. 이 새까만 고양이 세 마리는 이 동네에서도 가장 팔자가 좋은 고양이이다. 이 골목 사람들은 고양이에게 인심이 후하여 자기 집 앞에 고양이 방석을 놓아주고 아침이면 밥과 물을 챙겨주는 이들이 많다. 그럼에도 대다수의 고양이들은 골목을 오가며 야외 생활을 하는 반면 베트남집 고양이들은 대사관 입구에 놓인 의자를 집으로 삼아 관리인의 보살핌을 받으며 지내고 있다. 실내는 아니지만 지붕이 있다.
나는 서둘러 집으로 향한다. 막 일곱시가 되어간다. 아침에 산신령과 그가 키우는 개를 만났고 태양의 기운을 받으며 하루를 여는 기도를 하였으니 오늘은 분명 좋은 일이 생길 것이다. 게다가 금요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