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밥으로 혼밥을 하며
요즘 부쩍 김밥을 자주 먹는다. 김밥이란 무엇인가? 김밥은 한국식 샌드위치와 같다. 여러 가지 재료를 김 안에 꼭꼭 말아 넣고 한 입에 넣는다. 재료들은 입안에서 뒤섞이며 그 안에 든 재료에 김밥의 이름에 맞는 맛을 만들어 낸다. 여러 재료가 맛을 낸다는 점에서 김밥은 비빔밥과 닮아있다.
비빔밥은 재료를 섞는 걸로 모자라 비빈다. 숟가락으로 꾹꾹 눌러가며 비비는 동안 모든 재료들이 하나의 맛으로 통일된다. 고추장과 참기름으로 하나 되는 밥, 나물, 고기, 계란은 잘 비빌 수록 전체가 비슷한 맛이 된다. 반면 김밥은 입안에 들어가 각자의 맛이 따로 잘게 섞인다. 각자의 맛을 그대로 유지한 채로 김밥의 이름에 걸맞은 맞을 만들어 간다 한 그릇에, 김밥 한 줄 안에 모든 재료가 담겨있지만 굳이 비유하자면 비빔밥은 전체주의이고 김밥은 다원주의이다.
나는 비빔밥 보다 김밥을 더 좋아한다. 비빔밥도 무척 매력적인 음식이지만 우선 비비는 수고가 귀찮다. 큰 사발에 담겨 나와 푸짐하지 않으면 야박해 보이고 푸짐하면 양이 너무 과하다. 반면에 김밥 한 줄이 주는 정갈함은 매우 모던하다. 시크한 블랙에 속내를 감춘 김밥 몸뚱이가 가로로 베여 긴 접시에 실려 나온다. 몇 번째 조각부터 먹을까 잠시 고민이 된다. 나는 보통 오른쪽 끝에서 서너 번째 토막을 집어 든다. 그 옆의 한 조각을 눕혀 놓는 데 재료를 보기 위해서이다. 입에 들어간 김밥의 재료들을 눈으로 확인하며 맛을 납득한다.
점심이나 주로 저녁으로 한 줄의 김밥을 먹으면 왠지 음식에 대한 자제력을 실현하여 뿌듯하다. 물론 나의 평소의 식사량에 비하면 조금 부족한 양이지만 대신 단무지를 많이 먹고 딸려 나온 다시 국물도 여러 번 리필한다. 시커먼 김밥의 잘린 토막을 하나하나 집어 입에 넣어 음미하며 먹는다. 한 칸의 김밥을 해치울 때마다 마치 여러 단계로 나누어진 일의 한 단계씩 완수하는 기분이다. 목, 배, 머리를 하나씩 집어 입안에 넣으며 김밥 한 놈, 아니 한 줄을 깔끔하게 끝장낸다.
김밥을 먹을 때 나는 대부분 혼밥을 한다. 김밥이란 원래 싸들고 움직일 수 있는 음식이라 은박지에 싼 김밥을 들고 집에 와서 먹을 수도 있지만 나는 김밥집에서 혼밥을 하는 것을 좋아한다. 무엇보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사람들을 관찰할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저녁시간 김밥과 분식을 파는 가게에는 혼밥을 하는 손님들이 대부분이다. 두 사람 네 사람이 앉는 자리에 혼가 앉으니 붐비는 시간에는 입구에서 기다리는 사람도 있다. 합석을 하면 좋으련만 웬만한 맛집이 아니고서는 손님들에게 합석을 권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혼밥을 하는 사람들을 보는 것은 재미있다. 어떤 사람은 이어폰을 끼고 코미디나 드라마를 본다. 어떤 사람은 먹는 둥 마는 둥 게임을 하고, 어떤 사람은 밥 먹는 내내 누군가와 전화 통화를 한다. 물론 나처럼 아무것도 안 하고 두리번거리는 사람과 눈이 마주치기도 한다.
너 나 할 것 없이 오른 물가에 김밥의 가격도 눈에 띄게 올랐다. 1000원에 한 줄의 김밥은 이제 전설 같은 이야기가 되었다. 해외에서도 건강식으로 사랑을 받는다는 한국의 김밥은 그 속내에 각가지 새로운 시도를 해 가며 새로운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다. 무엇보다 재료가 고급화되며 변방에 있던 김밥이 메인 요리로 변모할 수 있을지가 궁금해진다. 스시(초밥)에 오마카세가 있듯이, 언젠가 미쉐랑 3 스타를 받고 빈티지 와인과 함께 하는 매우 고급스러운 김밥집이 나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때에도 여전히 김밥이 혼밥을 하는 이들에게, 가벼운 한 끼의 식사를 하고픈 이들에게 편한 선택지로 남아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