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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암동(安岩洞), 추억(追憶)의 그 단골술집들

by freejazz


1. 엑스세대

이 술집의 이름은, 90년대 당시 가장 파격적인 세대로 불리던 "엑스세대"였지만 막상 분위기는 7080이었던, 단체 손님 위주의 허름한 술집이었습니다. 그리고 고대(高大) 앞 술집답게 실내 인테리어와 테이블에는 신경 쓰지 않아 오로지 죽어라 술만 퍼먹을 수 있게 집중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었지요. 이 집은 특히 독보적인 가격 경쟁력으로 인해 각종 행사 뒤풀이 등에서 매번 1순위로 섭외하던 장소였습니다. 그래서 무슨 행사만 하면 장소가 계속 이곳으로 고정되어 새내기 시절부터 수십 차례 드나들던 곳입니다. 심지어 하다못해 연세대학교(延世大學校)에서 과교류(科交流)를 하러 왔을 때에도 그 귀한 손님들을 그곳으로 모셨던 기억도 있습니다. 안주는 주로 김치찌개나 참치찌개였고요. 그래서 주종(酒種)이 매번 소주였는데, 특유의 몇 달씩 썩은 강냉이 과자로 인해 안주가 나오기도 전부터 소주를 퍼마셔댈 수 있는 장점이 있었지요. 또한 항상 문이 열려있던 1층 화장실 덕분에 취한 이후엔 지하 술집에서 계단을 올라 화장실 입구에서 밖으로 나온 여러 사람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었습니다. 아마도 여기에서 2002년 복학 첫 학기까지 복협모임을 갖다가 그 이듬해 주인이 바뀌고 상호가 바뀌면서 더 이상 이곳을 찾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2. 엑스트라

여기는 엑스세대에 비해 다소 고급스러운 분위기의 호프집이었죠. 물론 그렇다고 여기도 분위기 좋은(?) 술집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엑스세대가 지하의 다소 퀴퀴한(?) 분위기였다면 그래도 여긴 건물 2층이어서 나름 참살이길 전망(?)이 있던 그런 술집이었습니다. 그래서 단체가 아닌, 소수정예로 술을 마시게 될 경우 자주 찾던 곳이었네요. 아마도 새내기 시절부터 선배들이 맥주 한잔 하자고 할 때 자주 끌려가던(?) 곳이었는데, 복학 이후에도 꾸준히 찾다가 2003년 주인아저씨께서 장사를 접으시면서 발걸음이 끊기게 된 또 하나의 단골술집이었습니다. 음... 아마도 주로 동기모임 장소로, 그리고 축구부 뒤풀이 장소로 애용되었던 술집이었을 겁니다. 다만, 감자튀김이나 쏘세지 야채볶음 등 다소 느끼한 안주가 흠이라면 흠이었습니다.



3. 풍년

여기는 1차 엑스세대, 2차 풍년, 3차 제기시장 코스 중 딱 중간 단계였던 곳이었습니다. 다소 무뚝뚝한 인상에 말씀도 거의 없으셨던 주인아저씨와 그나마 인상이 푸근했던 주인아주머니가 계셨었죠. 감자탕과 삼겹살이 주메뉴였던 그곳에서 저는 주로 감자탕에 소주를 원 없이 먹었는데요. 감자탕 다 먹고 밥 비벼 먹는 것도 엄청 맛있었습니다. 그런데 주인아저씨께서 고집이 세셨던 터라, 성질 급한 우리가 불을 최대로 해서 어떻게든 안주를 빨리 먹으려고 해도, 맘대로 불조절도 못하게 하셨던 기억이 있습니다. 처음엔 그런 아저씨가 좀 무서웠는데, 그래도 나중엔 정(情)이 많이 들었지요... 그러다가 2002년 9월이었나, 한일 월드컵이 끝났던 직후 같았는데, 그때 주인아저씨께서 그동안의 단골손님들을 모아 특별히 삼겹살을 구워 주시며 장사를 접으셨습니다. 식당 하시기가 너무 힘드시다고 하시면서요. 제가 새내기로 입학했을 당시 학생회장을 하셨던 선배 형과의 특별한 친분으로 저도 그 자리에서 삼겹살에 소주를 마시며 참 아쉬워했는데... 1차 마치고 2차 가기 전에 항상 2차 갈 사람 숫자를 파악해서 자리 만들어 달라고 부탁드리면 감자탕 大자가 테이블에 하나씩 세팅되던 그 시절 그때 그 풍년집... 아직도 기억이 새록새록 납니다.


* 여긴 안암로터리 근처로, 제기시장의 '풍년집'과는 다른 곳이었습니다.



4. 형제집

3차 제기시장 코스의 단골집이었던 형제집. 제기시장의 겨울은 항상 유난히 추웠습니다. 하지만 술집 안의 그 정겨운 분위기는 한겨울의 매서운 추위도 녹여내는 따뜻함 그 자체였는데요. 오돌뼈와 뼈 없는 닭갈비, 거기에 잔뜩 쉰 김치를 안주삼아 먹던 막걸리 한 사발... 그 새벽녘 늦은 시간에 할머님은 곧잘 주무시고 계셔서 우리가 대신 소주를 한병 한병 가져오던 그 시절의 기억이 떠오르네요. 그 시절, 외상으로 달아놓은 술값은 항상 다음번에 바로 갚아드렸지만, 그래도 버릇처럼 이 놈의 술꾼들은 매번 외상을 했고, 외상값을 겨우 갚으면 다음에 또 외상을 했습니다. 하지만 제기시장에는 그런 외상조차도 매번 잘 받아주시던 넘쳐나는 정(情)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러다가 군대 가기 전까지도 결국엔 형제집에 학생증을 맡겨놓고 외상으로 술을 마신 뒤 군에 입대했는데요. 100일 휴가 나와서 외상값 값아드리고 또 술을 한잔 하려 했지만, 아니 이런.. 휴가를 나와 찾아갔던 그 형제집의 문이 굳게 닫혀 있던 걸 보고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러다 시간이 흘러 제가 복학을 해서, 2002년 가을이 되었는데... 제기시장에서 길었던 술자리 후 입가심(?)으로 떡볶이를 먹으러 갔던 형제집 근처 분식집에서 그때 형제집 그 할머님을 만났습니다. 그 떡볶이집은 며느리분이 운영하시는데 할머님께서는 가끔 음식을 도와주러 나오신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그날 배가 터질 만큼 떡볶이를 주셔서 그 자리에서 감사히 다 먹었는데, 또 거기에 오뎅도 순대도 그리고 김밥도 더 주시던 그분. 그래서 결국 외상값도 못 갚고 오히려 신세만 더 지고 말았던 그곳, 제기시장은 제게 늘 그런 곳이었습니다.



5. 안암장

안암동 로터리의 중화요리(中華料理)집. 특히 겨울에 따뜻한 방에 들어가 탕수육에 짬뽕 국물 시켜서 고량주와 함께 한잔 하면 딱이었던 그곳. 먼저 짬뽕 국물에 단무지를 안주로 고량주를 먹다가 탕수육이 나오면 주종(酒種)을 소주로 바꿔 마시고, 그다음에는 짬뽕 국물만 계속 리필하고 한참 후에 입가심으로 물만두를 시키던 게 아예 습성이 되었지요. 물만두 먹다 보면 소주 한잔 더 먹게 되고 그러다가 짬뽕 국물 더 시키고, 이래도 저래도 술도 모자라고 안주도 모자라고 결국 돈도 모자라 가끔씩 외상까지 하던 그곳... 이곳은 특히, 다른 중국집에는 잘 없는 '어린이세트'를 시켜도 고량주를 주문할 수 있는 아주 괜찮은 집이었습니다. 여기는 제가 졸업을 하고 나서도 남아있던 몇 안 되는 단골집이었는데, 찐하게 마시는 날은 항상 1차 장소가 안암장이었습니다. 2차는 안암꼬치, 3차는 제기시장 뭐 이런 코스... 하지만, 지금은 그 안암장도 네이버 지도상에서 찾지 못하는 곳이 되었습니다.



6. 안암꼬치

그 시절, 그 술집 문 앞에 쓰여있던 문구 '고대인의 먹거리 안암꼬치!' 처럼 안암꼬치는 우리의 먹거리였고, 또 저의 먹거리였습니다. 여긴 밖에서 볼 때는 허름해 보이는 그냥 선술집이었는데, 막상 안에 들어가면 항상 사람들로 붐볐지요. 가격에 비해 싸고 맛있는 꼬치안주류와 삼치구이, 고갈비류가 좋았고, 술에 취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그 허름한 분위기 또한 참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래서 안암동이 아니면 도저히 못 버틸 것 같은 그런 술집이었지요. 게다가 뼈 없는 닭갈비 같은 안주도 별미였고, 특히 무한 리필되는 오뎅 국물(삼치구이에 소주만 4병 시키고 오뎅 국물 5번 리필시켰던 경험도 있었습니다... 주인아저씨 죄송합니다...) 또한 맛이 죽였습니다. 위에 있는 안암꼬치든 큰길 옆에 있는 안암꼬치든 다 좋았지만(당시 동일한 상호의 안암꼬치가 두 군데 있었지요. 그것도 근처에요.) 그래도 큰길 옆에 있는 더 허름한 안암꼬치가 아무래도 더 단골집이었습니다.



7. 왕십리 곱창/감자탕

여긴 초봄부터 늦가을까지 비 오는 날만 빼면 늘 야장 테이블이 세팅되어 있어서, 저도 주로 밖에 앉아 감자탕에 소주를 마시곤 했던 곳이었습니다. 참살이길 뒷길로 지나다니는 수많은 지인(知人) 들을 보면서 저는 그곳에서 주섬주섬 감자탕 등뼈를 뜯고 있었고, 전공책을 들고 가는 죄 없는 선후배 동기들을 옆자리에 앉혀 소주 한잔 돌리고 또 저도 받아먹고 그랬던 기억이 납니다. 몇 명이서 단출하게 술자리를 시작했을지라도 지나가는 선후배 동기들을 불러서 앉혀놓고 술을 같이 마시다 보면, 금세 불어나는 사람들 틈에서 즐거워했던 그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나네요.



8. 가인(佳人)

여긴 심수봉 아줌마의 노래가 자주 흘러나오던 80년대식 술집이었습니다. 저는 매번 이곳에서 황도에 맥주 혹은 황도에 소주를 마셨지요. 아마 황도가 가장 저렴한 안주여서 그랬을 건데, 이상하게 술을 계속 마시다 보면 막판에 좀 단 게 땡겨서(?) 그 통조림에 들어간 불량식품 같았던 황도가 안주로는 제격으로 여겨졌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그 달디 단, 통조림 국물(?)까지도 아껴뒀다가 마지막에 안주로 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겠지요. 아무튼 여긴 새벽녘에 들어가도 날이 밝을 때까지 계속 술을 마실 수 있었던, 제기시장의 초근대식(超近代式) 호프집이었습니다. 한편, 졸업 후에 학교 앞의 분위기를 느끼고 싶어 가을이 막 시작되던 2007년 10월 초입에 이 집에 갔던 기억이 있는데요. 그때에도 이 집엔 여전히 정겨운 사람들이 많았고, 예전이나 그때나 술집을 올라가던 계단 또한 여전히 가파르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벽의 곳곳에 90년대의 영화 포스터가 붙어 있어서(예를 들면, "흐르는 강물처럼", "양들의 침묵", 같은 특 A급의 헐리웃 흥행작도 있었는데, "강원도의 힘" 같은 B급 정서의 한국영화도 있었습니다.) 영화 동아리나 인문학 동아리 사람들도 많이 왔던 곳이었는데요. 졸업 직전 제가 언젠가 술이 이미 잔뜩 취해서 이 집에 비틀거리면서 들어갔던 때가 있었는데, 그때 옆 테이블에 앉아 있던 문과대(녹두문대! ‘새야 새야 파랑새야!’의 그 녹두문대…)의 예쁜 여학우들 목소리를 들으며 맥주를 한잔 더하니 맥주맛이 유난히 더 달콤하게 느껴졌지요... 그리고 그날 스피커에서 나지막이 들리던 심수봉 아줌마의 노래 또한 여전히 간드러지게 좋았습니다. "그대 내 곁에 선 순간, 그 눈빛이 너무 좋아"로 시작하는 "사랑밖에 난 몰라"가 이 집의 시그니처 같은 음악이었지요.


* 가인(佳人)의 그 가파른 계단에는, 술 먹고 구르면 군 면제를 받을 수 있다는, 다소 웃픈(?) 전설이 깃들어 있었습니다. (물론, 믿거나 말거나.. 였지만요.)



9. 고모집

고모집 바로 앞에 있던 "나그네파전"에는 매번 사람들로 북적였지만 고모집에 자리가 꽉 찬 경우는 신입생 환영회나 기타 단체 행사일 때뿐, 평소에는 장사가 너무 안 되는 게 참 씁쓸했었는데요. 하지만 추운 겨울날 고모집에 막걸리를 마시러 가면, 옆자리에서 점잖게 술을 드시던 지긋한 연배의 선배님들이 가끔 말을 거시기도 하고 혹은 말없이 저희 테이블의 술값까지 계산하고 가시기도 했던, 그 고모집은 정말 멋진 추억이 깃든 장소이기도 했습니다.



10. 나그네파전

제기시장의 고모집 이모집 형제집 등등을 몰락시킨 나그네파전이라 처음에 저는 개인적으로 여기를 그다지 좋아하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비 오는 날이나 혹은 아주 추운 겨울날 거기 가서 먹었던 파전과 막걸리는 참 좋았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여긴 후배들이, 특히 여자 후배들이 참 좋아했던 집이었는데요. 그땐 정말 너무나도 귀엽고 어리게만 보였던, 요즘 표현으로 하자면 ‘봄날의 햇살!’(’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대사에서 차용)같이 싱그럽고 상큼했던, 제겐 아주 특별했던 여자 후배가 좋아했던 장소라… 저도 나중엔 여길 꽤 좋아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후배분은 지금 저의 배우자가 되어, 본인은 술을 잘 못하지만 제가 회사생활하면서 술 먹다 늦는 것에 대해 굉장히 관대한 면을 보여, 지금도 제가 이 후배분께(아, 지금은 배우자이지만… 그래도 후배는 후배니까요… 앗… 쿨럭…) 매우 감사해하면서 지금까지도 술 마시며 잘 살고 있습니다. (오! 마이 알코올 라이프!!!) 아무튼 그래서 나중엔 이 집도 제겐 그냥 좋은 기억으로만 남게 되었습니다. 다만, 가게 문을 너무 일찍 닫았던 게 저 같은 술꾼들에겐 흠이라면 흠이었지요.



11. 혜성분식

복학 후 언젠가부터 술 먹다가 중간에 잠시 뛰쳐나와서 (술 먹다 안주가 떨어져 배가 고파오거나 혹은 갑자기 분식류가 땡긴 적이 있어서…) 떡볶이나 튀김, 오뎅, 순대, 김밥 등을 먹으러 혜성분식에 참 많이 갔던 것 같습니다. 그건 제가 평소에 술을 마실 때 안주를 잘 안 먹기 때문이기도 한데, 그 때문에 혜성분식에서 소주도 같이 팔았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여러 번 했던 것 같네요. 그리고 늦은 밤시간이 되면, 특히 저에겐 튀김도 몇 개 더 내주시던 아주머니의 손길이 참 좋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12. 빛고을

여긴 정대 후문에 있었던 최고의 밥집이자 술집이었죠. 토요일 아침에 녹지 운동장에서 축구 끝나고 점심 무렵에 우르르 몰려가면 반찬 세 번 리필에 공깃밥 두 그릇은 항상 기본이었습니다. 게다가 식사 후 식혜 한잔, 항상 나오는 부침개류 음식과 두 종류 이상의 김치, 그리고 그 외에도 너무나도 맛있는 남도 음식에 낮술이라도 한잔 하면 운동을 해서 기분이 좋아지는 건지 혹은 밥을 많이 먹어서 그런 건지 아님 술을 같이 곁들여서 그런 건지 전혀 분간이 안되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그 시절 정대 후문 근처엔 토요일에도 귀여운 여학생들이 참 많았던 것 같은데, 그때 그 친구들.. 이젠 다 예쁘게 나이 들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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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5월 5일인 오늘, 어느덧 모교(母校)가

개교(開校) 120주년이 되었다고 합니다.

제가 입사해서 1년이 채 되지 않았을 2005년에

개교 100주년이 되었으니,

입사 21년 차에서 22년 차로 넘어가기 직전인 지금,

그로부터 딱 20년이 흘렀네요.


개교기념일이라고, 또 개교 120주년이라고

교우회(校友會)에서 계속 연락이 오고 초대장이 와서

오랜만에 제 모교를 생각해 봤는데,

사실 학교 강의실에서 뭘 배웠고

또 학생회에서 무슨 활동을 했었는지 보다,

학교 밖 술집에서 누구와 어떤 이야기를 했고,

또 그 속에 무슨 추억이 있는지가

더 선명하게 생각이 났습니다.

그러다 보니 학교 근처에 있던,

단골술집(혹은 밥집)들이 더 먼저 떠올랐네요.

그래서 아직까지 제 머릿속에 남아 있는

12개 식당을 추려봤고,

그 장소와 엮인 기억들을 오랜만에 정리해 봤습니다.


그런데, 네이버 지도를 확인해 보니

막상 남아 있는 곳들은

주로 제기시장에 있는 허름한 집들 뿐이네요.

고모집과 형제집, 그리고 안암꼬치는

예전 그 시절과 위치까지 꼭 같고,

나그네파전은 제기시장에서 안암역 근방으로

위치를 옮긴 것 같습니다.

하지만 빛고을이나 혜성분식, 그리고 왕십리 곱창 등은

이젠 지도상에서도 자취를 감춰버려

90년대 학번인, 저 같은 졸업생의 입장에서는

아쉬움이 다소 크네요.


그래서 더욱 그리워지는,

그 시절 안암의 단골술집들입니다.

이젠 진정 추억의 장소로만 남은 곳들도 많으니까요.


그러다 문득, 위에서 언급하지 않은 노포(老鋪)인,

근처 용두동의 "어머니 대성집"도 생각났습니다.

거긴, 새벽에 주로 해장하러 갔던 곳이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생각보다 많은 미식가들에게

인정받고 있는, 다소 비싼 곳이더라고요.

그 시절에 해장국을 먹을 땐,

일단 소주 한 병 정도는 까고 시작했지요.

그러다가 소주 한 병 더 까고 결국 마지막엔

어찌어찌 그냥 마무리하고 나와서

추운 새벽 공기에 강제로 몸을 해장시키던

그런 기억이 새록새록 나네요.


모교의 개교기념일을 맞아 5월 4일 저녁에

간단하게 글을 써보려 했는데,

글을 마무리하려니 이젠,

5월 5일 0시가 훌쩍 넘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어쩔 수 없이 냉장고에서 맥주나 한 캔 꺼내서

따고 싶다는 충동이 강하게 드네요.

글에서 술냄새를 잔뜩 풍기다 보니,

현실에서도 술냄새를 맡아야 할 것 같았습니다.


오늘 밤엔 적당히 취한 기분으로,

오랜만에 심수봉 아줌마의 노래를 들어야겠습니다.

그래서 신중하게 고른 클로징 곡은,

그나마 그분의 최신작인

"비나리"로 하겠습니다. (1994년 작품)


"큐피드 화살이 가슴을 뚫고 사랑이 시작된 날,"

"또다시 운명의 페이지는 넘어가네."

"나 당신 사랑해도 될까요."

"말도 못 하고 한없이 애타는 나의 눈짓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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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비나리’를 듣는 제 마음속에서,

안주로 나온 오돌뼈는 이제 제법 익어가고

또 다른 안주로 나온 고추튀김은

특유의 냄새를 풍기며 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밤, 제 마음만은

학교 앞, 추억의 제기시장에서,

짠! 하며

정(情)이 넘치던 그 동네와

오랜만에 건배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진 1. 제기시장 형제집의 오돌뼈)



(사진 2. 제기시장 고모집의 고추튀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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