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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아 Sep 22. 2024

시간 낭비도 지겨워 넌 내 것이어야만 해

Foxy Lady

"암컷은 착취당하는 성이다. 착취의 진화적 근거는 난자가 정자보다 크다는 사실에 있다."

- 리처드 도킨스, <이기적 유전자>


생물학자 찰스 다윈은 번식 경쟁을 오롯이 수컷의 역할로만 봤다. 암컷은 구애를 받는 역할에 끝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암컷은 '선택하는' 존재다. 최근 과학연구는 수정과정에서 난자가 정자가 선택한다는 결과를 내놨다. 다양한 동물을 비롯해 인간도 마찬가지다.

사실 인간에게만 존재하는 '일부일처의 결혼제도'란 남성 인간에게 무척 유리한 제도다. 이게 없었다면 남성 인류 80~90%는 번식에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곤충에서 포유류까지 번식에 성공하는 모든 수컷들은 상위 10~20%밖에 되지 못한다. 암컷들은 상위 10~20%의 수컷에게 '몰빵'한다.


곤충, 포유류, 어류, 양서류, 곤충과 동물에겐 '레크(Lek)'라는 공동 구혼장이 있다. 수컷 여러 마리가 암컷을 유혹하기 위해 나서서 공동으로 구혼하는 장소를 뜻한다. 장소 뿐만 아니라 수컷의 구애 행동 자체를 지칭하기도 한다.



"짝짓기 철의 절정에 산쑥들꿩 레크는 아수라장이에요." 게일 패트리셀리가 연구실에서 설명했다. 교미의 대부분이 불과 3일에 걸쳐 일어난다. 이때 암컷들은 가장 인기 있는 수컷에서 가장 가까운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티격태격한다. 가장 잘 나가던 산쑥들꿩 수컷은 짝짓기 시즌에 137번이나 짝짓기를 했고 23분 동안 연속해서 23번 교미한 기록이 있다.


- 루시 쿡, <암컷들> - 숫새는 선택받고 싶어 한다

수컷 산쑥들꿩은 번식기에 암컷을 유혹하기 위해서 가슴 앞 주머니에 공기를 가득 채워 부풀린다. 그리고 온힘을 다해 주머니를 털면서 춤춘다.


수컷 산쑥들꿩새는 암컷들에게 선택받기 위해 무대에 올라 구애의 춤을 춘다. 새들은 구애 행위가 한 번 끝날 때마다 체중이 거의 7퍼센트나 빠진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산쑥들꿩새는 산쑥을 먹고 사는 새다. 먹이에 열량이 풍부하지 않고, 산쑥의 잎에는 독성이 무척 강하다. 한마디로 죽음을 무릅쓰고 구애를 한다는 뜻이 된다.


이들의 목숨 건 구애를 보면서 암컷들은 가장 정력이 넘치고 가장 현란한 수컷을 골라낸다. 이뿐만 아니다. 가장 많은 암컷의 선택을 받는 수컷들은 과시를 잘 할 뿐만 아니라, 암컷들이 주는 미묘한 신호들을 잘 받아내고, 소통하는 수컷이었다. 암컷이 먹이를 쪼아먹거나, 깃털을 정리할 때 조금 힘을 빼고 구애를 하다가, 암컷의 집중이 쏠려 있을 때, 에너지를 쏟는 식이었다.


한편, 암컷의 선택을 받지 못하는 나머지 숫새들은 결국 바닥에 떨어진 말린 소똥과 짝짓기를 시도했다고 한다. 뭐 여기까진 누구나 다 아는 흔한 얘기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어떤 새 중에는 구애를 하기 위해 몸집을 부풀리고 구애의 춤을 추기보단, 암컷 앞에 먹이와 비슷해 보이는 수집품(?)들을 나열해 과시하는 경우도 있다.



오스트레일리아 동부의 새틴정원사새는 암새의 눈을 즐겁게 하는 밝은 색상의 물체들을 오랜시간 공들여 장식한다. 새틴정원사새 암컷은 수새의 몸집보다는 그가 구해오는 푸른색 싸구려 장식품에 더 신경을 쓴다. 수새는 이곳저곳 찾아다니며 꽃에서부터 깃털, 플라스틱 병뚜껑, 빨래집게까지 부리로 물어올 수 있는 것이면 무엇이든 들고 와서 바우어 바닥에 흩어놓는다. 이걸로 성에 차지 않는지 부리로 열매를 씹어서 그 즙을 벽에 색칠하기까지 한다.


- 루시 쿡, <암컷들> - 숫새는 선택받고 싶어 한다



수컷 새틴정원사새의 구애 행위가 인간의 구애 행위와 크게 다르지 않을거라고 본다. 남자가 좋은 차를 끌고 와서 데이트를 한다거나, 반지나 보석 따위로 마음을 사려는 행위가 무척 비슷하다. 남성의 이런 물질적 공세는 여성에게 어떤 마음을 보여주고 있는걸까? 내가 이만큼 너를 위해 돈을 쓸 수 있다 정도의 메시지가 될 것 같다. 새틴정원사새처럼 이런 물질적인 공세에 넘어가는 여성이 있는가 하면, 산쑥들꿩새의 경우처럼 남성의 신체적 조건, 구애의 몸짓(예를 들면 사랑한다는 속삼임과 고백, 매너 등) 처럼 사람 자체를 보는 여성들도 있을 것이다.


무엇이든 정답은 없다. 인류는 어쨌거나 일부일처제와 결혼제도라는 일대일 매칭시스템으로 다양한 유전자에게도 기회가 주며 진화해왔다. 이 책에서도 다양한 생물학자들이 유일하게 합의에 도달한 한가지 진리가 있었다. 그건 바로 암컷의 선택이 '본질적으로 종잡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또한 까다로울 것만 같은 암컷들의 선택도 절대 일관되지 않다는 점에서 희망이 있다. (암컷의 입장에선 불행일지도 모른다.)


암컷들은 기회가 많다고 생각했을 때 짝짓기 상대를 선택하는 걸 무척 까다롭고 신중하게 내리지만, 기회가 점점 없어질수록 초조함에 아무 수컷이나 붙들고 선택한다.


파나마에 서식하는 퉁가라개구리는 짝짓기 시즌의 밤이 시작될 때는 휴대용 스피커로 들려준 합성 수개구리의 조잡한 소리에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저녁이 끝날 무렵 암개구리의 변별력이 심하게 떨어졌다. 가짜 개구리 울음소리를 내는 플라스틱 스피커에 기꺼이 올라가서는 연못의 파티가 끝나기 전 알을 수정시키길 바라며 초조하게 서성거렸다.


- 루시 쿡, <암컷들> - 숫새는 선택받고 싶어 한다



인간과 인간을 제외한 지구상의 다양한 생물 종은 궁극적으로 유전자를 번식하기 위해 산다. 다른 모든 생물이 그러한데 인간만 아니라고 말하는 건 솔직히 기만과 위선 아닌가. 또한 아니라고 주장하기엔 인간은 너무 성적인 집착이 강한 존재다.


핵심은 인류를 포함 여타 생물들의 진화가 여성(암컷)의 선택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의미다. 그러니 판단력이 흐려지기 전에, 희망이 있을 때, 가장 좋은 판단이 들 때 가장 우수한 남성을 선택할 수 있길. 이는 양 성별 모두에게 목숨이 걸린 문제다.

연애비서를 연재하기 위해 앞으로 생물학 책을 더 많이 들여다보고 연구할 예정이다. 그동안 내 뇌피셜과 뇌데이터로만 이런저런 주장을 펼치는게 독자들에게 다소 미안했는데, 과학적 결과를 빗대어 우리 사회 현상들을 설명하면 더 좋을 것 같다. (물론 뇌피셜 생성 역시 멈추지 않을 생각이다. 솔직히 유익하고 재밌기만 하면 된거라고 믿고 있다.)


요약 :

- 암컷은 단순히 수컷의 구애를 받는 존재가 아니라 수컷을 선택하는 추제다.

- 유전자의 번식은 암컷의 선택에 따라 달려있다.

- 하지만 암컷의 선택은 예측하기 어렵다.

- 암컷의 예측불가능함은 생물학적 진화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한다.

- 다른 생물종들을 관찰하는 일은 인간사회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https://www.youtube.com/watch?v=ThkRVTd-tP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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