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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아 Sep 21. 2024

술 못 마시던 친구가 출산 후 알콜 중독이 된 이유

친구 중에 아들 엄마가 있다. 특이한 점은 아들을 낳고 나서 많이 변했다. 아이는 3살 정도다. 가장 달라진 점은 주량이다. 원래 술은 한모금도 입에 안 대던 애가 술고래가 됐다. 매일 '육퇴 후 짠'이라는 사진을 SNS에 올리곤 했다. 어느날 알코올중독지수 검사를 해봤는데 중증 정도가 나왔다. 술을 좋아하는 남편 따라 한 두잔 마시다보니 그렇게 됐다고 한다.


부부는 닮는다는 말이 있다. 아이를 낳고 나면 더 비슷해진다. 그리고 그게 유전학에서 이미 입증된 결과로 나타난다.


우리는 유전자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게 전부라고 생각한다. 한번 물려받으면 영원히 변하지 않는 성질의 것이라는 믿음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유전학에선 '그렇지 않다'는 연구결과가 수없이 많다. 대표적으로, 임신하고 출산한 여성의 몸에는 자식의 DNA가 남는다는 주장이다.


예를 들면, 아들을 출산한 여성들의 경우 몸 속에서 Y 염색체가 발견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다. 어미 생쥐에다 형광물질로 칠한 Y 염색체를 주입해 실험을 해보니, 수컷을 출산한 엄마 생쥐의 뇌의 신경가지에 형광물질의 Y 염색체가 발견됐다. 아들의 Y 염색체가 피를 타고 돌다가 엄마 뇌의 신경가지에 자리를 잡고 신경 전달 물질을 뿜어낸거다. 여성의 DNA인 XX염색체에 Y염색체가 들어간다는 의미이므로, 아들을 낳은 엄마들이 남성적으로 변하는 이유가 과학적으로 설명이 입증된 셈이다.


태아 세포가 여성의 몸속에서 오래오래 살아남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비앙키는 아들을 출산한 어머니를 더 많이 찾아 이 연구를 이어 가기로 했다. 수혈이나 장기 이식을 받은 적 없는 여성으로 국한해 실험한 결과, 8명 중 6명에게서 Y염색체가 있는 태아 세포가 발견되었다. Y 염색체가 있는 한 여성은 아들이 27세였다. 따라서 그 아들의 세포가 어머니의 몸속에서 25년 이상을 살았다는 뜻이었다. (중략) 마침내 1996년 <미국 국립 과학원 회부>가 이 결과를 발표하기로 했다. 비앙키와 동료들의 논문은 이렇게 끝맺는다. "이렇듯 임신은 여성에게 장기간에 걸쳐 낮은 정도의 키메라 상태를 형성하는 기간이 될 수 있다."


- 책 <웃음이 닮았다>, 칼 짐머



출산 이후 태아의 세포는 감소하지만 어머니의 절반 정도는 아기를 낳은 뒤 몇십년 동안 태아 세포를 보유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마디로 임신을 하면 뱃속에 태아의 세포가 생겨나는데, 그 세포가 출산 후에도 남아있을 확률이 꽤 높다는 말이다. 태아의 세포는 절반 정도가 남편으로부터 온다. 그러니 남편의 DNA의 일부가 아내의 몸에 남아서 뇌 신경세포로도 가고, 회로로도 퍼지고, 그래서 모든 전반적인 삶에 영향을 미친다는 뜻이다.


남성들은 영원히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DNA가 바뀌지 않을 수 있다. 자신의 유전형질을 주고 끝나버리니까. 몸에서 아무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여성은 전혀 다르다. 남자에게 받은 유전형질이 세포로 남아 온 몸에 남는다. DNA 변형을 일으킨다. 그래서 성관계를 할 때 상대방의 DNA가 내 몸에 들어와 빠져나가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항상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한다. 어떤가. 어쩐지 소름돋지 않나.

유전학 책을 읽다가 이렇게 사랑과 연애, 결혼과 출산에 대한 아이디어가 떠올라 공유를 해 보았다. 칼 짐머의 <웃음이 닮았다>는 책은 언더스탠딩 채널의 <아들 낳은 엄마가 남자처럼 변하는 이유>라는 팟캐스트를 듣다 정보를 얻게 됐다. 유튜브에도 있으니 팟캐스트를 듣지 않는 분들은 영상으로도 보시면 될 것 같다.


책 소개글을 듣자마자 이 책이 읽고 싶어져 바로 도서관에 가서 빌렸다. 아무도 읽지 않는 유전학 책이라더니, 도서관 맨 구석탱이에 새 책처럼 꽂혀 있었다.


앞으로 아들 엄마인 내 친구를 만나면 이 이야기를 해주려 한다. 사실은 아들의 유전자가 너의 몸 속에 남아서 알콜중독을 일으킨거라고, 너무 자책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리고 술 대신 차를 마시라며 티백 세트를 선물해주는 것도 좋은 방법 같다.


그래도 그 친구는 남편과 아들을 많이 사랑하는 아내라서 기쁘게 이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여성분들은 부디 상대방의 유전자가 내 몸에 들어와 내 뇌 회로를 바꿔도 괜찮은 남자를 만나길. 임신과 출산을 해도 당신은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있다.


반면, 여기까지 생각해 본 적 없었다면, 고민을 좀 더 해보길 바란다. 뇌가 바뀐다는 것은 상당히 큰 변화다.


요약 :

-아들을 낳은 엄마가 신체와 정신적으로 남성적으로 변할 수 있다는 유전학 연구 결과가 있다.

-출산 후 겪는 변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게 중요하고, 그런 변화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어야 하며, 감당할 수 있는 결혼 상대를 선택하길 바란다.


https://www.youtube.com/watch?v=4WTt69YO2V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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