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불륜 드라마는 행복한 가정을 보여주는 것부터 시작한다.
어느정도 키워낸 반듯한 아이 둘 정도에, 사회적으로 성공한 남편, 그리고 그런 가족 구성원들을 뿌듯하게 바라보는 자존감 높은 주부(혹은 부부의 세계나 닥터 차정숙, 굿파트너처럼 전문직 여성 캐릭터도 있다)의 모습이 그려진다.
이들 캐릭터의 공통점이 있다면 똑똑하고 잘났다는 거다. 일과 가정 두가지 토끼를 완벽하게 잡았다.
그리고 남편을 사랑하며 가정에 충실하다.
그래서 주인공은 일상의 순간순간 어떤 불길한 암시와 기운이 고개를 들어도, 아닐거라며 고개를 흔든다.
'설마 내 남편이 그럴 리가' 라는 클리셰로 시청자의 심장을 쫄깃하게 만든다.
시청자들은 행복한 가정을 꾸린 이 남부러울 것 없는 여자가 어서 진실을 마주하고, 추락해 바닥에 떨어지길 애가 타게 지켜본다. 이 여자가 원래 있던 자리가 견고하면 견고할수록, 바닥에 떨어지는 고통은 커질 것이다. 여자가 남편의 불륜을 깨닫고, 숨겨져 왔던 진실을 마주하는 장면이 사실상 모든 불륜 드라마의 하이라이트다. <부부의 세계>에선 "모든 게 완벽했다"로 시작하는 나레이션이 "모든 게 완벽하게 나를 속이고 있었다"로 결론을 맺는다.
그리고 이런 류의 스토리는 결혼 제도가 존재하는 한, 스테디셀러다. 구매력이 어느정도 갖춰진 30대 이상의 사람들은 (특히 기혼자들은) 이혼과 불륜이라는 주제를 본능적으로 찾는다. 마치 남자들이 여자 가슴이라는 단어에 본능적으로 반응하듯이 움직인다.
기혼자라면 누구나 처할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나도 언제나 이런 상황들을 상상하곤 하는데, 그냥 매뉴얼대로 할거다. 배우자의 배신을 깨달았을 땐, 감정을 앞세우기보다는 이성적으로 대응할 계획이다. 변호사 찾아가서 최대한 유리한 입장을 취할 수 있는게 무엇일지 같이 연구해보면 된다. 주저앉아 울거나 상대 또는 스스로를 원망할 시간 따위는 없단 말이다.
결혼과 이혼에 대한 무수한 격파썰들이 돈다 해도, 아무리 그 불행을 지켜보고 싶은 사람들이 줄을 섰다 해도, 행복하게 살 사람들은 두 사람이 평생 백년해로 하며 잘 산다. 그리고 한번 맺은 결혼생활을 죽을 때까지 잘 매듭짓는다는 것은 상당히 명예로운 일이다. (물론 그렇다고 이혼한다고 불명예스러운 건 아니고. 내 글을 읽는 구독자들은 수준이 높다. 이분법/흑백논리 같은 사고는 안할거라 믿는다.) 나도 이 명예로운 결혼생활의 마침표를 지향하는 바이다. 최악의 경우 헤어진다 해도 서로 진흙탕 싸움하지 말고 갈라서기로 합의를 봤다.
그럼에도 시간이 지날수록 이혼률이 높아지는 이유는 세상이 과거보다 훨씬 더 예민해지고 날카로워진 까닭이라 생각한다. 사람들은 상대방의 행위에 대한 옳고 그름을 '객관적'으로 평가받고 싶어한다. 그것도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커뮤니티 유저들을 통해서 말이다. 여친/남친이 한 말에 대해 기분 나쁘게 느끼는 자신이 이상한건지, '객관적'인 막말인지 등의 고민을 공유한다.
(사실 이런 식의 욕망은 언제나 존재했으니, 온라인 법정과 온라인 판사님들을 활용한 플랫폼 비즈니스도 제법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 디씨인사이드나 블라인드처럼 잡다한 썰 푸는 플랫폼 말고 주제를 확 좁혀서 연인간의 잘잘못을 따지고 평가받는 시스템을 만들면 좋을 듯 하다.)
나쁜 방법은 아니겠으나 자기자신을 믿는 힘을 길러야 한다. 나는 댓글을 거의 안다는데 (한 스무살인가 그 언저리에 댓글을 몇번 달았던 적이 있다.) 주변 사람들을 관찰해본 결과, 정상적인 사람들, 또는 높은 사고를 할 줄 아는 사람은 인터넷 기사나 커뮤니티 같은 게시글에 댓글 같은 걸 안단다는 걸 깨달았다. 그러니 거기서 도출되는 결론이랄 것도 대개 불완전할 확률이 높다. 원본적으로 일단 제공한 정보 자체가 편파적이기 때문에.
곰곰이 생각해본 뒤 스스로 판단을 내리는게 좋고, 믿을만한 가까운 이에게 고민 상담을 해보는 것도 방법이다. 물론 믿을만한 커뮤니티에 속내를 털어놓는 것도 나쁘지 않다. 하지만 그 모든 결론을 선택하는 행위도 온전히 자기 자신의 생각을 통해서여야 한다. 안그러면 대충 선 봐서 부모 또는 결혼정보회사에서 골라주는 상대와 만나서 결혼하고, 결혼하다 안맞으면 갈등 해결도 스스로 못하고 부모가 치워주는 꼴이 된다.
예를 들면 이런 사연이 커뮤니티에 있다. 부부가 모두 9n년생인 신혼부부가 있다. 여자 쪽에서 아기를 낳지 않겠다고 시댁 쪽에 말하자, 시어머니가 화를 냈고, 아기를 낳으라고 채근하셨단다. 이 얘기를 들은 여자의 친정어머니가 시어머니에게 연락을 해서 두 사람이 크게 싸웠다고 한다. 한마디로 다 커서 결혼한 성인들의 부부 문제를, 사돈들이 나서서 싸웠다는 말이다. 그리고 앞으로 이런 일들은 더 비일비재할거라 생각한다. 대한민국 문화 특성상 자식의 인생에 부모가 너무 많이 개입하다. 무척 끔찍한 현상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에 절대적인 가치란 없다. 나는 불가지론을 믿기 때문에 더 그렇게 느낀다. 그저 생각도 시야도 전부 다른 무수히 많은 개인들만 있을 뿐이다. 그 개개인들 중에서 또라이와 최대한 안엮이고 피하려고 애쓰면 인생이 평균보다 2배 정도는 편해진다. 하지만 관찰해보면 모든 사람들이 편한 인생을 추구하는 것도 아닌 것 같다. 스스로 사랑이니 운명이니 하면서 불구덩이에 자발적으로 기어 들어가는 사람들이 있는걸 목격해보면 말이다. 하긴 나는 어려서부터 원체 체력이 약해서 본능적으로 편한 걸 찾는거라 이마저 일반화시키면 안된다.
아무튼 결혼을 했건 안했건 간에 믿을 사람은 나 자신밖에 없다. 그리고 배우자는 믿는 존재가 아니다. 고마움을 느끼는 존재다. 함께 시간을 나누고, 곁에 있어줘서, 가정의 책임을 함께 지어줘서 고맙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상대방에 대한 감사함을 최대한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행동으로 보여주면 가정이 튼튼해진다. 가령 집에 돌아온 배우자를 따뜻한 미소로 맞아주는 일이나, 다정한 말투로 오늘 하루가 어땠는지에 대한 대화를 나누는 일이 그에 해당한다.
그 이외의 것들은 사실 불필요하다. 가령 사랑이라든지 믿음이라든지.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된다. 거듭 말하지만 이런게 없어야 한다는 말은 아니고 이런 사랑 믿음 같은 감정이 전부 다 채워져야지만 행복한 가정이 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최대한 현재 존재하는 것에만 집중할 뿐이다. 그러면 알아서 불행이 퇴치된다. 불행 퇴치도 부지런해져야 한다. 잡초 뽑기나 해충 퇴치, 화장실 청소와 아주 유사한 성질을 가졌기 때문이다. 몸을 움직여야 성가신게 사라지듯 머리를 움직여서 그냥 그런 의구심이나 생각들을 쫓아버리면 그만이다. 물론 수련이 필요한 일이다. 타고 태어난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최소한 노오력이라도 해봐야 한다.
결론 :
-누구나 결혼생활을 하다 불행을 경험할 수 있다.
-불행은 피할 수 없고, 오직 대처만 가능하다.
-불행을 현명하게 대처하기 위해선 자기 성찰과 노력이 필요하다.
-가정을 소중하게 지키려면 상대방에게 감사함을 표현하자.
매일 몸에 좋으라고 먹는 영양제처럼, 감사 표현은 가정의 건강을 유지하는 방법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pB-5XG-DbA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