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마다 사는 세상이 있다.
그 세상 안에선 귀한 것이 각각 다르다.
나는 어렸을 때, 성공한 여성의 삶을 동경했다.
모두가 알만한 직장을 다니고, 매일 아침 완벽한 오피스룩을 차려입고 메이크업을 한 채 출근하는 그런 삶 말이다. 남자는 적당히 만나다 갈아치우는, 연애만 하고 결혼은 안하는 그런 여자의 삶을 살고 싶었다.
지금 내 나이에 결혼해 아기가 있는 삶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내가 어렸을 적 꿈꾸던 삶과 정확히 정반대의 삶을 살다보니 깨달아지는 게 있다.
모든 삶이 귀하다.
내 글쓰기는 이런 식이다.
사람들 이야기를 끄적이다가 이내 다 지운다.
몇번 고민하다 결국 쓰지 말자 생각한다. 어떤 편협한 나의 관점, 시선, 아주 조금이라 할지라도 비판 의식 같은게 들어가 있을까봐. 그 사람들이 연애를 하건, 연애를 하지 않건, 결혼을 했건, 결혼을 하지 않았건, 애가 있건, 애가 없건, 이혼을 했건, 결혼생활을 이어나가고 있건 간에.
그렇게 살면 안된다, 이렇게 살아라, 이런 남자 만나지 마라, 여자는 이런 사람 피해라 어쩌고 저쩌고 하는데 사실 내가 무슨 권한으로 그런 말을 할까? 나는 그럴 자격이 안된다. 나는 그저 20대에 직장 다니다가, 어쩌다보니 좋은 남자를 만나서 결혼했고, 아기를 낳은 평범한 여자다. 편안한 가정을 이루기 위해 뭔가 노력을 했다고 하지만 솔직히 똥밟으려면 얼마든지 밟을 수 있는게 인생이다. 그걸 개인의 탓으로 돌려선 안된다. 나쁜 결과는 결국 너의 선택 때문이잖아! 라고 책임론을 물으면, 그 사람이 그렇게 아픈 이유도 다 본인의 잘못이기 때문이다. 힘든 사람에게 그렇게 말하는 건, 사실 그런 뜻이 아닌데, 듣는 사람 입장에선 죽으라는 소리로 들린다.
그 사람은 그 사람 인생을 산다. 그런데 내가 뭐라고 허락도 안받고 왈가왈부 하나. 나는 그 힘든걸 알아주고, 힘내고, 이젠 이렇게 해보자라고 용기를 줄 수 있는 사람이길 바란다.
그럼 이제 어떻게 용기를 다시 내볼 수 있는지를 이야기 해보려 한다.
EP1.
집 근처엔 등산로로 이어지는 오르막길이 있다. 점심식사 후에 잠깐 운동 겸 그곳을 걷는다. 주변 회사를 다니는 직장인들이 자주 걷는 산책길이다. 오늘 그 길을 걷다 한쪽 무릎 아래가 없이 목발로 오르막길을 오르는 50대 후반정도로 보이는 남성분을 봤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목발로 짚어가며 사력을 다해 언덕을 오르고 있었다. 강해지는 기운이라도 받듯 그의 뒤를 그냥 천천히 걸어갔다. 그분이 멘 가방에는 맨 아래에 남자의 이름이 손박음질 되어 있었다. 저런 작업을 남자가 했을 것 같진 않고 아마 아내분이 해준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언덕을 다 오르고 주변 풍경을 보는 그분의 모습을 보고 내가 그분께 뭔가를 받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작 그분은 코웃음 칠지 몰라도.
EP2.
우리집 아파트 단지에는 70세 이상 비쩍 마른 할아버지가 계신다. 그 할아버지는 90세 이상 나이의 온몸에 뼈밖에 안남은 모친을 휠체어에 끌고 아침 저녁으로 산책을 다니신다. 할마니는 연세가 많아 눈도 다 까매져서 안보이시고, 귀도 간신히 들리나보다. 할아버지는 오래된 노래가 흘러나오는 낡은 오디오테잎을 할머니 귀에 갖다대고 아파트 단지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지켜본다.
올해 여름은 잠깐이라도 밖에 있으면 숨이 멎을 것처럼 무더웠다. 할아버지에게 올 여름 어떻게 지내셨냐고 물어봤는데, 병원도 일주일에 서너번씩 갔다오느라 아주 진을 다 뺐다는거였다. 어머님께서 신장이 안좋았다고, 그래서 큰일 나는 줄 알고 마음을 몇번씩 졸였다고 하면서 웃으신다. 머리는 정리되지 않았지만 언제나 깨끗한 마스크를 쓰고 다니신다. 할아버지도 거동이 불편해 보이는데, 식사는 어떻게 해결하시는지 모르겠다. 지난번엔 주머니에 포장 안뜯긴 나무젓가락이 꽂혀있는 걸 봤다. 라면을 드시는건가 싶었다. 어떻게 매일 저렇게 웃고 계시지, 어떻게 항상 이웃들에게 친절할 수 있을까 궁금했다.
두가지 에피소드를 들려준 이유가 있다. 이들이 강인한 이유에 대해 말하려고 한다.
인간의 강인함은 사랑으로부터 나온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매일매일 더 화려하고, 더 완벽한 것들을 향해 아우성친다. 인간은 모두 자신만의 안간힘을 다해 사는 존재들이다. 그리고 그 안간힘은 사랑하는 마음으로부터 나온다. 나는 우리 아파트 할아버지가 매일 사력을 다해 삶을 살아내는 이유를 알고 있다. 할머니가 계셔서다.
사랑하는 마음을 잊어버리면 서로에게 너무 가혹해진다. 사람이 가혹해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나도 예전에 내가 쓴 기사가 의도치 않은 갑질에 대한 폭로로 번진 적이 있다. 그러자 이해 당사자들이 "죽어버리겠다"고 난동을 피웠었다.
그래서 기사를 부랴부랴 내렸다. 데스크는 허락하지 않았지만. 그냥 내가 다 뒤집어쓰고 기사를 내렸다. 정신이 다 빠져 있는 나를 끌고 선배들이 점심을 먹으러 가는데, 대표가 해준 말이 있었다. "기자는 기사 때문에 누구 하나 죽거나, 죽겠다고 협박하거나 했을 때 진짜 기자가 되는거야" 그런 기자라면 하고 싶지 않아서 안했다.
물론 가혹해진다 해서 나쁜 건 아니다. 나는 일부러 가혹한 사람들, 쓴소리 하는 사람들 찾아다닌다. 시시각각 말랑해지는 정신을 개조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머리가 나쁜 편이라 매운 소리를 들어야 정신이 바짝 나고 집중이 잘 된다. 가혹한 말 하는 사람들 좋아한다. 그리고 내공이 더 깊이깊이 쌓이면 진정성 있는 글들을 쓰고 싶다. 진심으로 그 사람을 위해서 하는 말 같은거 말이다.
나 역시 한발로 언덕을 오르는 자세로 이 길을 걸어가려 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qJ8OUxq7sv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