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매일 똑같이 반복하는 일상이 가장 좋다. 아침에 일어나서 씻고, 주변 정리하고, 출근하고, 일 하다가 집으로 돌아온 가족들과 저녁 챙겨먹는 그런 하루 일과 말이다.
기자 때부터 알고 지내던 중견기업 대표님께선 내 일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럼 하루종일 혼자 글 쓰는거야? 나는 때려 죽여도 못해"
옛말에 글쟁이들은 폐병들고 골병 든다는 말이 있다. 다음은 이 일을 시작하는 작가들 사이에선 전설처럼 내려오는 썰이다.
한 신참 보조작가가 일을 하다 공황장애가 와서 메인작가에게 정신과에 좀 다녀오겠다고 말하자, 메인작가가 "어머 여지껏 정신과 약을 안먹었단 말이야?" 라고 놀라 반문했다는 이야기다.
다행히 나는 뭐 그런거 없다. 그냥 평범한 직장인처럼 사무적으로 일한다. 그래도 약간의 불안장애 같은게 있는데 일을 안할 때 찾아온다. 직장인과 달리 휴일이 싫은 이유도 이 때문이다. 휴일엔 보통 아기 놀이터에 데려가서 모래놀이 하고, 그네 태워주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돈까스도 사주는 여유로운 시간을 즐긴다.
아이에겐 언제나 웃으면서 친절히 말하고 있지만, 동시에 내적으론 잘못된 시간과 공간 속에 와 있는 강한 불안감을 느낀다. 숨이 턱턱 막힐 정도고 머리가 뺑글뺑글 돌만큼 어지럽다. 나도 이런 감정을 느끼는 스스로가 정신병자 같고 달갑지 않다. 아이를 돌보는 엄마의 심리가 이래선 안된다고 생각하고 자책도 많이 한다. 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느낀다. 이게 개인적인 성향 때문인지 아니면 경쟁이 치열한 직업적 특수성 때문인지 나는 판단이 안된다.
일할 때, 깊이 들어가는 순간이 있다. 완전한 몰입과 집중이 이뤄졌을 때다. 두뇌는 뺑글뺑글 최고속도로 돌아간다. 밖에서 나는 소리가 잘 안들리고, 배가 고픈지 부른지도 모른다. 시계를 보면 몇 시간이 훌쩍 지나가 있다. 그런 날들을 매일 반복하면 분명 어딘가로 올라가 있다. 자주 오지 않아 너무 안타깝지만.
한꺼풀 더 깊이 들어가면 이전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인다. 이 과정에서 표현할 수 없는 즐거움이 있다. 이전의 나는 눈 뜬 장님이었구나, 진짜 아무것도 몰랐는데 나댔네 하면서 과거의 나를 돌아볼 수 있어서 좋다. 그리고 이 과정이 좀 중독적이다. 더 들어가고 싶고, 더 알고싶어서 갈증이 막 난다.
20대에는 이 노력을 좀 피상적으로만 했다. 보이는 걸 곧이곧대로 봤고, 보이는 현상 그 안의 것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깨보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다. 어쩔땐 머리로는 알고 있었는데 실천하지 않고 게으른 요행을 부렸다. 그래서 30대가 된 지금은 더 절실하다. 나보다 빨리 자각하고 앞서 나가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다.
매일 이 난장을 피우다보니 학교에서 배운 건 정말 아무것도 아니구나 하는 섬뜻한 자각이 들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그러니 학벌이라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나 싶다.
새로운 전자기기를 쓸 때, 사용 전 사용 매뉴얼을 읽어보는 사람과, 읽어보지 않는 사람이 있다. 약을 복용할 때, 이 약의 효능과 영향을 읽어보는 사람과 쓰레기라고 생각하고 갖다 버리는 사람이 있다. 어떤 사람이 일을 잘 할까? 당연히 전자다. 모든 것은 매뉴얼부터 시작한다.
일을 대충 하는 사람과 대충하지 않는 사람의 차이도 여기서 나온다. 화장실을 청소한다고 해보자. 그러면 대부분 타일과 세면대, 변기, 거울 등 보이는 곳을 위주로 깨끗하게 닦을 것이다. 하지만 결정적인 차이는 하수구에 있다. 하수구 타일을 들어내서 배관까지 닦아내고, 내부에 고인 물을 비워내는 것과 아닌 것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화장실 하수구에다 뜨거운 물까지 부어주면 베스트다. 대부분 이 작업을 하지 않아서 화장실에서 냄새가 나고 벌레가 나온다. 보기엔 깨끗한데, 결정적으로 가장 더러운 곳이 청소가 안된 셈이다. 백날 세정제 뿌려댄다고 해도 해결이 안된다.
무엇이든 원리를 알아야 잘 한다.
나는 아이를 무척 잘 웃기는데, 아이가 웃는데도 원리가 있다. 아이들은 우스꽝스러운 표정과 뜬금없는 의성어, 그리고 예상밖을 벗어나는 행동을 좋아한다. 누구누구 잡으러 가자~! 하고 잡으러 갈 것처럼 뛰어가다가, 갑자기 훽 몸을 돌려서 나 잡아봐라~! 하면서 도망치는 행위 같은 것 말이다. 대체로 개그맨들이 대중을 웃기는 방법과 유사하다.
웃음의 핵심은 인지의 불일치 또는 반전이다. 인간의 뇌는 특정 상황을 예상한다. 하지만 그 예상을 벗어난 순간에, 새로운 의미가 등장할 때 웃음이 터져나온다. 예를 들어 엄마가 아기를 잡으러 갈 것처럼 뛰어가면 아기는 엄마에게 잡힐까봐 잔뜩 긴장하면서 도망친다. 그런 쫄리는(?) 상황에서, 엄마가 갑자기 자신으로부터 도망친다. 자기가 엄마를 잡을 수도 있다는 반전의 상황에 웃음이 터지며, 신나게 엄마를 잡으러 간다. 이런 식이다.
무엇보다 위험한 건, 대충 알아놓고 '안다고 믿는' 태도다. 대충 아는 건 하나도 모르는 것보다 더 나쁘다. 더 알기 위한 시도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이 늘 겸손해야 한다는 말이 있는지도 모른다.
계속 왜 그럴까 끙끙대며 묻고 묻다보면 궁극적으로는 모르겠다는 답이 나올 때가 많다. 이럴때 약간 머리에서 멘붕이 오긴 하는데, 그래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더 가봐야 한다. 그래야 남들이 보지 못하는 걸 본다. 진짜 재밌는 건 남들이 보지 못하는 걸 보는 사람들을 바로 또 알아보는 눈이 생긴다. 물론 내가 그렇다는 건 아니다. 그렇게 되고 싶다는 말이다. 갈길이 너무 멀다. 죽기 전엔 할 수 있을까 싶다.
결론 :
- 연인의 학벌보다는 공부하고 연구하는 습관이 있는 사람인지 살펴보길 바란다. 잘 암기하는 사람보다 깊게 파는 사람들이 진짜다.
- 새로운 물건을 사용할 때, 매뉴얼을 먼저 읽어보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필히 능력있는 사람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7maJOI3QMu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