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 개그맨 | 김성중
여기 한번도 춤춰본 적이 없는 여자가 있다.
떠나는 애인의 옷자락을 붙잡아본적도, 사랑하지 않는 이의 접근을 막아본 적도 없다.
존재했을 뿐, 그녀는 한번도 저항해본 적이 없다.
그녀에겐 진심으로 사랑했던 남자가 있었다. 그는 유명 개그맨이었다.
그녀는 그를 통해 세상과 접속했고, 어항 속 자기 자신을 발견했다.
그녀가 무탈하게 결혼한 목수인 남자가 말한다. 목수의 아내는 다음생에 옹이가 된다고.
그녀는 나무 속에 깊이 박힌 옹이가 된다. 세상 밖으로 가지나 이파리를 틔우지도 못한 채, 텅 비어버린 허무를 껴안은 옹이.
그녀가 사랑했던 남자는 사람들이 바라보는 별은 이미 오래전에 죽은 별일수도 있다고 말한다. 영원한 것은 별이나 그걸 바라보는 우리가 아닌 빛뿐이라고. 죽은 별이 비치는 빛처럼 웃지 못했던 그의 개그를 통해 그녀는 사람들의 표정을 읽고, 유행어를 들었다. 주목받아본 적 없었던 여자는 애인에게 쏟아지는 관심을 훔쳐보며 스스로에게 안도했다..
처음 그들의 데이트 장소였던 동물원에서, 오랑우탄의 몸짓을 보며 그녀는 깨닫는다.
한번도 유리에 머리를 부딪혀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녀는 앞으로도 스무살이 서른 아홉이 될 때까지 잠자코 기다릴 것이며,
참아낼 것이라는 운명을 지나치게 잘 알고 있었다.
여자는 끈질기도록 수동적이다. 히피들이 모여 약을 빠는 곳에서도 편안해 보이려는 강박증에 시달리다 결국 권하는 마약을 거절하지 못해 그대로 빨아들인다. 거절하고 싶은지, 약을 하고 싶은지 스스로의 마음도 알지못한채 한결같이 애매한 태도로 재채기를 뿜는다. 어항 속 물고기가 물 안에서 헤엄치고 호흡하듯, 그녀에게 있어 운명은 그녀 인생에 잠겨있는 것이었다.
그녀는 개그맨이 죽는 순간에 함께했었던 여자에게 묻는다. 그녀의 온몸에 새겨진 문신을 보며 아프지 않았냐고. 그 물음은 이 소설 속에서 그녀가 하는 유일한 한줄의 대사다. 어항 속 물고기처럼, 아무런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그녀가, 어항 밖에서 건져진 채 뻐끔거리며 아픔에 대해서 묻는다.
마지막 순간에, 그녀는 마침내 고통을 느낀다.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던 그녀가. 존재만으로 타인에게 부담을 주진 않을까 노심초사하던 그녀가, 마침내 스스로의 황홀한 고통에 빠져든다.
'운명'이라는 불가항력적 힘에 대해서
침묵은 평화인가? 동의는 순응인가? 궤도는 충동의 말살인가?
문학은 인간의 존재에 대한 질문이다.
이 소설은 관음과 침묵으로 가득했던 한 여자의 일생을 통해서
역설적으로 고통이 인간의 숙명이라는 사실을, 존재의 증명이라는 사실을 드러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