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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둔하고 싶은 마음

by 스몰빅토크


"나는 어떤 미친 절벽 가장자리에 서 있어. 만일 꼬마들이 절벽을 넘어가려 하면 내가 모두 붙잡아야 해. 그러니까 꼬마들이 어디로 가는지 보지도 않고 마구 달리면 내가 어딘가에서 나가 꼬마를 붙잡는 거야. 그게 내가 온종일 하는 일이야."

- 호밀밭의 파수꾼


1951년 JD 샐린저가 출간한 <호밀밭의 파수꾼>은 오늘날 미국 문학을 대표하는 필독서지만, 출간 당시만 해도 사회적으로 파장이 크게 일어 학교와 공공 도서관에서 금서로 지정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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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초 미국은 보수적인 가치관이 주를 이루고 있었기 때문이다. 청소년 문학은 대부분 교훈적이고 도덕적인 메시지 전달에 초점을 맞춘 내용이 대다수였다.


하지만 주된 흐름을 거슬러 거친 언어와 성적 암시, 기성세대를 비판하는 <호밀밭의 파수꾼>이 등장했다. 이 책을 읽고 공감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미국 사회의 권위적인 태도를 모두 가짜라고 여기곤 극도로 혐오하는 움직임이 생겼다. '콜필드 신드롬'이라 불릴 정도였다. 주인공 홀든 콜필드의 태도와 세계관에 감명 받고 따라하려는 10대들을 가르켜 하는 말이었다. 이후 1960~70년대 히피나 반전 운동 등의 반문화 운동에서도 홀든은 기성세대를 거부하는 상징으로 불렸다.


소설의 주인공만큼이나 작가도 대세를 따르지 않는 삶으로 유명하다. J.D. 샐린저는 <호밀밭의 파수꾼>이라는 소설의 폭발적인 성공에도 불구하고 세상 밖으로 나타나지 않았다. 성공을 거둔 이후에, 그 명성을 부담스러워 하며 원래 거주하던 뉴욕을 떠나 시골의 작은 마을에서 살면서 대외 활동을 거의 하지 않았다. 장을 보러 가거나 우체국에 가는 필수적인 외출 이외에는 외출을 피했고, 마을 사람과도 교류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교회 행사 정도 참여를 했다고 알려지는데, 자신의 본명(J.D. 샐린저)으로 불리는 걸 극도로 꺼려하고, 사생활에 대해선 입을 다물었다.

1951년 초판이 출판되었을 때 J.D 샐린저는 자기 사진이 뒤표지에 들어 있는 것을 보고 경악했다. 출판사와 협의를 해 책의 표지에 자신의 사진은 뺄 수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샐린저는 자기 작품을 다른 논문에서 거론하거나 영화하하는 것도 싫어했다고. 한국의 출판사 민음사에서 처음 출간된 초판본에도 작품의 내용과 어울리는 표지 그림이 있었지만 샐린저 재단의 요구로 표지 그림과 저자 약력을 삭제한 채로 판매되고 있다.


J.D 샐린저는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은둔 작가로 불린다.




1936년생 아만시오 오르테가는 세계 패션 유통 그룹 인디텍스를 세운 창업가다. 2016년 포브스 선정 세계 부자 순위 1위, 오랜시간 세계 부자 순위 10위 안에 위치한 인물이다. 그는 스페인 북부의 가난한 철도원 가정에서 태어났다. 1975년 부인과 함께 작은 속옷 가게를 시작한다. 이것이 자라(ZARA)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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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테가는 업적에 비해 얼굴과 이름이 세상에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스페인에서도 그가 길을 지나가면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오르테가는 중산층의 평범한 삶이 좋다며, 철저히 익명성을 추구하는 삶을 산다. 막대한 재산에도 불구하고 매일 똑같은 블루 셔츠와 회색 바지를 입는 것으로 유명하다.


언론 인터뷰에는 당연히 응하지 않고, 대외 활동이나 본인의 사진도 스스로 공개한 적이 거의 없다. 스페인 국왕이나 총리가 초대한 자리에도 참석하지 않을 정도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가 모습을 드러낸 순간은 2001년 인디텍스 그룹이 상장했을 뿐이었다고 한다. 세계적인 갑부 자리에 오른 이후에도 오르테가는 자라 본사에서 임직원과 함께 구내식당에서 식사하고, 일반 직원들과 같은 공간에서 일했다. 보여지는 권위보다 보이지 않는 효율을 자신의 삶에서 추구하고, 실천하며 평생을 살았다.




21세기 현대사회에서 가장 미스테리하고 비밀스러운 인물을 꼽으라면 아마도 사토시 나카모토(Satoshi Nakamoto)가 아닐까. 사토시 나카모토는 비트코인의 창시자다. 그의 실명과 국적, 성별, 소속은 공개된 바가 없다.


2008년, 그는 Satoshi Nakamoto라는 이름으로 'Bitcoin: A Peer-to-Peer Electronic Cash System'을 인터넷에 공개했다. 2008년까지만 해도 이메일과 암호화폐 포럼에서 소통을 했으나, 정체는 마찬가지로 꽁꽁 숨겨져 있었다. 2009년 최초의 비트코인 블록을 직접 채굴하고, 2010년 마지막으로 개발자들에게 "나는 다른 일에 집중하겠다"는 메시지만을 남긴채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그 이후로 단 하나의 공식적 활동, 발언, 인터뷰 활동이 없었다.


사토시 나카모토의 후보로 언급된 인물로는 닉 재보, 할 피니, 크레이그 라이트 등이 있으나 단 한명도 확실히 입증된 사람이 없다. 그가 끝까지 익명성을 유지한 이유로는 비트코인이 기존 금융 질서를 위협했기 때문에, 창시자가 드러난다면 각국 정부의 법적 압박을 받을 수 있었던 가능성이 제기된다. 또한 비트코인의 탈중앙화 철학과도 연관이 있는데, 사토시가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에, 비트코인이 특정 개인의 통제에서 벗어난 '탈중앙화된 화폐' 라는 철학을 완성시킬 수 있었다. 또한 사토시 나카모토가 개인적으로 보유한 비트코인은 백만개 이상으로 추정되는데, 신원이 드러났다면 납치나 범죄, 언론의 집중 공격의 위험이 있었을 것이다.

스크린샷 2025-09-19 오후 5.54.06.png 비트코인의 창시자 사토시 나카모토를 형상화한 동상.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에 세워졌다.


릴스, 숏츠, 블로그, 유튜브, 기타 등등의 SNS...


세상의 수많은 콘텐츠들이 매분 매초 쏟아져 나온다. 단체 메신저방은 쉬지 않고 울려댄다. 어떻게 해서라도 자신을 알리고 싶고, 알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아마 이 시대엔 지배적일 것이다. 하지만 세상에 뭔가 변화를 만든 것들을 떠올려 보면, 진짜 문제를 해결한 것들을 생각해 보면, 그것들은 오히려 숨 죽은 듯 고요하다.


인생은 짧다. 짧은 생에서 집중해야 할 것은 몇가지 많지 않다. 한가지만 온전히 집중해도 성공할까 말까다. 너무 많은 것에 소중한 시간을 빼앗기지 않길 바란다.


https://www.youtube.com/watch?v=Jl8iYAo90pE&list=RDJl8iYAo90pE&start_radio=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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