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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생이들은 당분간 연애금지

by 스몰빅토크
죽음은 삶의 대극이 아니라 그 일부로 존재한다.
지금 돌이켜보면 참으로 기묘한 나날이었다.
삶의 한 가운데에 모든 것이 죽음을 중심으로 회전했다.

- <노르웨이의 숲>, 무라카미 하루키


도쿄의 대학생 와타나베는 친구 기즈키의 자살을 경험한다. 그리고 죽은 기즈키의 연인이었던 나오코는 그가 죽은 이후 시간을 멈춘 채 살아간다. 나오코는 현실 세계에서 한발짝 떨어져, 산속 요양시설로 들어간다. 와타나베는 손만 닿아도 상처를 받고, 부서질 것만 같은 나오코를 바라본다. 기즈키의 죽음으로 연결된 두 사람은 같은 트라우마를 가진채 서로에게 위로를 주면서, 동시에 상처를 되뇌이게 만드는 존재다.


우리는 서로의 슬픔을 더 깊게 만들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는 그것밖에 할 수 없었다.

- <노르웨이의 숲>, 무라카미 하루키


반면 와타나베의 앞에 나타난 또 한 명의 여자, 미도리는 삶의 충동과 현실의 욕망을 반영하는 인물이다. 말이 많고 거침없이 솔직한데다, 감정 표현이 거칠다 싶을 정도로 생생하다. 미도리는 아픈 가족을 돌보는 현실적인 책임을 짊어진 인물이지만, 그 어려움을 강하게 이겨내고, 삶의 의지를 다져낸다.


"나는 사랑을 할 때, 그 사람이 세상에서 제일 좋아야 해.
사람 냄새, 목소리, 체온까지 전부." - 미도리의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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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타나베는 미도리를 보면서 살아있음을 느낀다. 슬픔을 끌어안지 않고, 뚫고 나가려는 모습에서 생명력을 느낀다. 와타나베는 나오코와 미도리 사이의 관계에서 혼란스러워 하며 방황한다. 그게 일본 문학사에서 가장 상징적인 베스트셀러 중 하나인 노르웨이 숲의 내용이다.


연애 프로그램을 보거나 연애 관련 고민상담을 하다보면 흔히들 부딪히는 문제가 있다. '나도 내 마음을 모르겠다'는 것이다. 두가지 이상의 선택지가 있는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내려야 할지,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고 한다. 연애 프로그램에서 '몰표'를 받은 인기 남&녀 캐릭터가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혼란스러워 하며 쩔쩔 매는 건, 연기가 아니라 어쩌면 상당히 진실된 모습일지도 모른다.


선택지가 많은 상황에서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첫번째로는 가장 좋은 결과가 어떤 선택일지 잘 모르겠어서 그렇다. 두번째로는 한가지 선택을 내렸을 때 날아가는 기회비용이 너무 아까워서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 두가지 이유를 분석해보고 어떤 방법이 있을지 같이 고민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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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이유

어떤 선택을 해야 가장 좋을지 모르겠어서 혼란스럽고 고민이라는 부분에 대해.


충분히 그럴 수 있는 문제다. 인생은 선택의 합이다. 어떤 사람을 만날지 결정한다는 건 그 사람과 상당히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뜻이다. 마치 넷플릭스에 접속해서 어떤 콘텐츠를 봐야할지 결정할 수 없어 1시간째 리모콘만 만지작 거리고 있는 심리와 비슷하다. 뛰어난 AI가 정교하게 당신의 개인화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콘텐츠 추천을 그렇게 열심히 해주는데도 불구하고, 기껏해야 한두시간 정도 쓸 콘텐츠를 보는 것조차 결정하기 어려운게 사람이다. 그런데 길다면 평생을 함께해야 할 상대방을 고르는 일에 어떻게 신중하지 않을 수 있을까. 결혼을 한 사람이라고 해도 그 결정이 마냥 순탄하고 순조롭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만약 그랬다면 이혼율이 왜 이렇게 높겠는가.


어차피 뽑기다.

그럼에도 결정을 해야 할 시간은 다가온다. 아무 결정을 내리지 않는 것도 당신의 선택이다. 시간에 쫓겨서 나쁜 수를 두는 것보다, 차라리 신중하게 끝까지 자기 자신을 지키는 게 더 현명할 수 있다. 그럼에도 꼭 결혼을 해보고 싶다고 생각하고 결심이 섰다면, 마음이 가는 곳으로 선택을 해야 한다. '우물쭈물하다 이럴 줄 알았지' 하지 말고.


결혼한 사람끼리 모이면 하는 말이 있다. '어차피 결혼은 뽑기'라고. 그렇게 이리 재고, 저리 재고, 이것 저것 다 따져서 결혼했는데도, 막상 결혼생활이 시작되면 새로운 면면들을 보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면들이 나와 잘 맞을지 맞지 않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살 부대끼면서 살아보기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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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이유

한가지 선택을 내렸을 때 날아가는 기회비용이 너무 아까워서다. 사실 다들 입밖으로 솔직하게 말하진 않지만, 상대의 적극적인 애정 공세에 미적지근하게 반응하거나, 확신을 주지 않는 이유는, 이 관계가 확정되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기회비용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른 복잡한 이유는 없다. 그래서 상대방의 불분명한 태도에 혼란스러운 사람들은, 99%의 경우 자신이 어장관리를 당하고 있는거라고 보면 된다. 이 사실을 자각하고 직시하는게 물론 현실적으로 어려울 수 있다.


어항 속에 갇힌 고기들보다
어쩌면 내가 좀 더 멍청할지 몰라
너가 먹이처럼 던진 문자 몇 통과
너의 부재중 전화는 날 헷갈리게 하지
너의 미모와 옷 입는 스타일로 미루어 보았을 때
너의 어장의 크기는 수족관의 scale
단지 너 하나 때문에
경쟁은 무척 험하고도 아득해

- <Aqua Man>, 빈지노의 가사


어쨌든 어장관리를 하는 사람을 너무 맹목적으로 비난해선 안된다. 그들은 최대한의 리스크 관리를 하고 있을 뿐. 막말로 어장에 제발로 들어온 사람은 본인이다. 어장의 출구는 언제나 열려 있다는 점도 명심하길 바란다.


중요한 것은 어장관리를 하는 사람이 어느정도의 일말의 죄책감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가능성을 열어두고, 헷갈리게 하는 행위에 대해 양심이 찔려야 한다. 그리고 어장 사육하는 기간을 최대한으로 짧게 끝내려는 최소한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런게 없다면 싸이코패스이거나 쏘시오패스일 가능성이 높다. 높은 확률로 얼마 지나지 않아 어장 속 물고기들은 서로를 물어뜯다 전멸하게 된다. 그리고 그 어항은 더럽기로 소문이 나서 플랑크톤도 살 수 없는 환경이 된다.


결론은 공감과 양심, 배려의 문제다.

자신의 마음과 감정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고 섬세한 크리스탈처럼 다루면서, 상대방의 마음은 아무렇게나 괴롭혀도 되는 장난감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애초에 위험한 냄새를 풍기니까 가까이 다가가면 안된다. 높은 확률로 타인에 대한 공감이 결여되어 있으며, 자신의 비양심적인 행동에 대해 자책하거나 반성의 기미가 없는 삶을 살아간다. 또한 겉으로는 사회화된 배려를 해줄지 몰라도, 그 속을 찬찬히 뜯어보면 오로지 자신의 나르시즘을 채우기 위한 배려를 해줄 뿐이다.


그런 사람들만 피해도 인생사 살아가는데 이런저런 상처는 면할 수 있다. 선택지에 아예 제외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요 그런 사람이 나를 선택하게 하는 불상사(?)를 만들어서도 안된다. 결론적으로 나를 잘 알아야 상대방도 찬찬히 뜯어볼 수 있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태이라는 말은 연애에 딱 들어맞는 표현이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선택을 내릴 때 행복한 사람인지 평소에 잘 아는 사람이 좋은 상대방을 고른다. 그래서 놀아봤던 날라리들이 결혼을 잘 하는 것이다. 진짜로 놀아본 사람들은 자기가 진심으로 뭘 좋아하는지 모를 수가 없다.


http://youtube.com/watch?v=Y0V_Pjfs9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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