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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아 Aug 06. 2017

무엇을 봤나요 - 기사단장 죽이기

하루키 판타지

                                                                                     

이사하느라 책장을 정리했다.

하루키의 책이 가장 많았다.


지하철이 옥수역 한강 플랫폼을 지나는 때였다.

옆에 선 남자의 생김새가 분명 누군가와 쏙 빼닮았단 생각이 들었다.

누구지 누굴까 어디서봤더라


아 무라카미 하루키를 닮은 사오십대 남자였다.

검정색 크로스백을 매고, 초록색 카라티에 베이지색 반바지를 입었다.

흰 양말에 갈색 샌들.


생김새는 정말 쏙 빼닮았지만 한국인같아서 관심을 거두었던 것 같다.

(실제로 하루키라 하더라도 내가 일본어를 잘하는게 아니라 별 수 없다)


예술가는 작품을 통해 독자 혹은 관객들에게 상상력을 선사한다.

하루키의 판타지는 독자들에게 고요하면서도 존재감있게, 낯선듯 익숙하게 그려진다.


초상화 전문화가로 활동하는 '니'는 어느날 아내에게 일방적인 이별통보를 받는다.

결혼생활에 별 불만 없이 지내왔던 그는 당황한다.

그리고 아홉달을 다른 곳 - 여지없이 고립된 장소 - 에서 지내게 된다.

이야기는 이 아홉달에 대한 회상으로 시작된다.


1. 신비한 공간


하루키의 소설에서 이야기가 벌어지는 공간은

아파트나 사람들이 바글대는 번화가가 아닌 고립되고 비일상적인 곳이다.

주인공이 가게 된 곳은 친구 아버지의 버려진 집이다.

그곳에서  화가라는 같은 직업을 가진 친구 아버지의 흔적을 더듬게 된다.


2. 미스테리한 등장인물


하루키의 소설치고는 등장인물들이 많은 편이다.

대화가 거의 없는 그의 소설에 등장인물이 이렇게 많다는 것은

그만큼 등장인물들이 모호함 속에 존재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실제로 여러 등장인물들이 나오지만 직접 소설 속에서 주인공과 말을 하는 것은

그의 아내, 친구, 멘시키, 마리에, (가끔) 여자친구, 이데아들 정도다.

특히 주인공의 친구 아버지였던 아마다 도모히코의 존재가 가장 모호하면서도 큰 존재감을 드러낸다.


<기사단장 죽이기>라는 그림을 탄생시킨 장본인,

처음부터 끝까지 요양병원에서 한 마디의 의사표현도 없었던 등장인물.

그래서 더욱 소설의 미스테리는 깊어간다.


그리고 나는 문득 <기사단장 죽이기>를 떠올렸다.

그 그림 속에서 검에 찔린 '기사단장'도 아마다 도모히코에 의해 영속할 생명을 얻었을까?

아니, 애당초 그 기사단장은 대체 누구일까? p.220 (1권)


주인공에게 거액의 초상화 의뢰를 부탁하는 멘시키라는 남자도 미스테리한 남자다.

주인공과 멘시키는 상반된 듯 공통점이 많다.

두 사람 모두 자식을 원하지 않는다는 점,

그럼에도 자신의 딸일지도 모르는 존재를 자신의 아이로 받아들이고 산다는 점,

이데아라는 존재를 의심하지 않고 믿는다는 점이 그렇다.


"당신은 그때 저를 어둡고 습한 구덩이 속에 영원히 내버려두려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그럴 수 있었지만 그 가능성을 머릿속에 조금도 떠올리지 않았어요. 그렇지요?"


"그렇습니다. 하지만 멘시키 씨, 보통 사람은 웬만해선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걸요"


"정말로 그렇게 단언할 수 있습니까?" p.523 (1권)


<기사단장 죽이기>에 등장하는 깊은 구덩이는 하루키의 초기작 <태엽감는 새>의 우물을 떠올리게 한다.

우리의 본질은 어쩌면 깊고 고립된 장소에 틀어박혀 웅크리는 존재들이기 때문 아닐까.


"당신한테는 원해도 손에 넣을 수 없는 것을 원할 만큼의 힘이 있어요.

하지만 저는 제 인생에서, 원하면 손에 넣을 수 있는 것 밖에 원하지 못했습니다." p.298 (2권)


멘시키의 말이다.

현실을 좇으며 성공적 가도를 달리는 사업가가 예술가에게 하는 말.

손에 넣을 수 없는 것을 원하는 모호함과 불명확함의 공간에 있는 예술가에게 건네는 말이다.

이런 이유에서 우리는 예술가를 동경하는 게 아닐까.


"중학교 들어간 해에 죽었거든. 아직 열두 살일 때" p.540 (1권)


주인공의 죽은 누이동생 또한 미스테리한 캐릭터다.

그는 리에와 같은 나이에 죽은 누이동생을 회상하게 된다.

동생과 함께 어두운 동굴 속을 탐방했던 때를 기억한다.

소설 내내 열두살 동생은 그와 함께한다.


3. 기사단장은 무엇일까


친구의 아버지이자 일본의 대화가로 불렸던 아마다 도모히코의 손에서 탄생한 기사단장 죽이기>.

빈에서 발생한 나치정부 암살사건이 배경일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그 그림은 집안 창고에 거의 봉인되다시피해서 보관돼있었다.


그리고 그림 속 기사단장은 이데아로 주인공 앞에 나타난다.

오로지 이데아로서, 환영으로서, 이상으로서 존재한다.


그렇게 기사단장은 주인공을 떠돌다 어느날, 마리에가 실종된다.

온데간데 없어진 마리에를 찾기 위해 기사단장에게 조언을 구하게 되고,

아마다 도모히코의 병실에서 이데아를 죽여야만 한다는 말을 듣게된다.


여기서 실낱같은 기사단장에 대한 힌트가 나온다.

전 세대가 만들어낸 이데어 - 염원을 죽여야만 다음 세대를 보호할 수 있다는 의미다.


다음 세대의 성장을 위해서는 이전세대가 이루지 못했던 숙원,

즉 다음 세대로 계승되는 일종의 굴레를 파괴해야만 다음 세대를 길러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주인공은 기사단장의 말대로 그를 죽이고 깊고 어두운 이중 메타포의 세계를 유람한다.


"이중 메타포는 깊은 어둠 속에 도사린, 말도 못하게 고약하고 위험한 존재입니다." p.373 (2권)


이데아란 꼭 전세대로부터 전해져내려오는 무언가가 아닐 수도 있다.

이전까지 갖고 있었던 이상이라던가, 꿈일지도 모른다.


뭐가됐건 가장 본질 적인 것은,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이데아라는 환상을 죽여야만 하는 희생이 꼭 필요하다는 것이다.

피를 흘리고 고통스러울지라도 그렇지 않고서는 아무런 희망도 찾을 수 없게 되버린다.

이데아를 죽이고 앞에 놓인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것 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고 말한다.


4. 이중 메타포에게 잠식되지 않으려면


아내에게 버림받고 죽은 동생을 떠올리면서도

시종일관 '그럴지도 모른다', '그렇게 됐다' 식의 관조적 태도를 일관해오던 그 또한 어쨌거나 고통은 겪는다.


"당신이 하는 올바른 생각을 붙들어 하나하나 먹어치우는 것,

그렇게 몸집을 불려나가는 것, 그것이 이중 메타포입니다.

그것은 옛날부터 쭉 당신 안의 깊은 어둠에 살고 있었어요." p.417 (2권)


이중 메타포라는 좁고 기다란 통로 속에 갇힌 그는 떠올린다.

치즈 토스트와 블랙 커피, 고양이의 털을.

사랑하는 기억을 고통을 견뎌낸다.

소설 속에서 가장 인간적인 모습이다.


"최대한 좁음과 어둠을 의식하지 않으려 애썼다.

그러려면 뭔가 다른 생각을 해야 했다. 나는 치즈 토스트를 떠올렸다.

왜 하필 치즈 토스트인지는 나도 알 수 없었다.어쨌든 머릿속에 문득 치즈 토스트가 떠올랐다.

무늬 없는 흰색 접시에 놓인 네모난 치즈 토스트.

노릇노릇 잘 구워졌고, 위에 올린 치즈도 먹기 좋게 녹았다." p.279 (2권)


사소하고도 실체적인 기억들을 떠올려야 한다.

그 존재들과 가깝게 지내며 나의 즐거움을, 행복을 방해하도록 내버려두면 안된다는 것이다.


당신은 괴로울 때 어떤 존재들을 떠올립니까?

그건 나를 설명하는 아주 중요한 단서들이 된다.


5. 다음 세대, 그리고 여전히 모호한 현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을 했어요.

이 세상에서 뭔가를 달성한다 한들,

아무리 사업에 성공하고 자산을 일군다 한들,

저는 결국 한 세트의 유전자를 누군가에게서 물려받아 그것을 다음 누군가에게 전달하기 위한

편의적이고 과도적인 존재에 불과하다고." p.144 (2권)


이 소설 속에서 주요 모티프가 되는 것 -

멘시키의 딸아이 마리에와 자신의 아이 무로 - 다.

실제로 그들의 아이가 정말 마리에와 무로가 맞는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그들의 아이인 것으로 믿고 살아간다.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는 태도로.


그의 이야기는 역시 애매모호하다.

아이의 아버지가 누구인지에 대한 사실확인은 없다.

이런 현실에 대한 그 어떤 가치판단도, 정의도 내리지 않는다.


"그것이 내가 원하던 생활이었다.

또한 사람들이 내게 원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 일은 내게 확실한 수입을 가져다주었다.

그 또한 내게 필요한 것이었다.

내게는 부양할 가족이 있으니까." p.590 (2권)


한바탕 소동을 겪은 후,

다시 가정으로 돌아간 '나'는 이렇게 말한다.

착실하게 가정을 부양하고, 딸아이의 유치원을 데려다 주고 저녁을 준비하며 살아간다.


어쩌면 그 이상의 가치는 없을것이다.

이데아를 죽이면서까지 앞으로 나아가야만 했던 이유 또한 여기에 있다.


우리 모두 한덩이의 유전자 전달 흙덩어리의 역할을 착실히 수행하기위해 살아가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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