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꼭 하게 되는 내가 싫어하는 것들
나는 좋고 싫음이 확실한 편이다. 어릴 적부터 어떤 것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명확했고, 나 자신도 그걸 잘 알고 있었다. 특히 내가 싫어하는 일들은 표정에서 그대로 드러나, 남들이 봐도 금방 알아챌 정도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 인생은 내가 싫어하는 일들을 언제나 피할 수 없게 만들어 놓곤 했다. 그래서 결국, 한 번씩은 꼭 마주해야만 했다. 이런 운명적인 패턴은 아주 어릴 때부터 시작되었다.
어릴 적부터 나는 부끄럼이 많은 아이였다. 반장 역할을 맡는 것도 힘들었지만, 그나마 성적순으로 정해지는 바람에 어쩔 수 없었다. 나를 가장 두렵게 했던 것은 바로 학생회장이었다. 6학년 학생회장이 되면 전교생 앞에서 구령을 외치며, 전체를 통제하는 역할을 맡아야 했기 때문이다. 나는 남들 앞에서 큰 소리를 내는 것이 너무 부끄러워서, 학생회장이 되는 것은 절대 피하고 싶었다. 그러나 운명은 내가 피하려고 하면 할수록, 오히려 그 일들을 내 앞에 놓아두곤 했다. 6학년이 되었을 때 나는 다시 반장이 되었고, 당시의 관례에 따라 6학년 반장과 부반장 중에서 학생회장을 선출하게 되었다. 투표권은 5학년과 6학년의 반장, 부반장들이 가졌는데, 나는 조용한 학생이었기 때문에 학생회장으로 뽑힐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생각했다. 선생님이 나를 학생회장 선거에 나가게 했을 때도, 나는 그냥 형식적으로 출마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선거 연설을 마치고 자리로 돌아가는 순간, 5학년 학생 중 한 명이 친구들에게 "저 사람이 XX의 오빠야!"라고 말하는 것이 들렸다. 그 말이 퍼지자마자, 나는 예상치 못하게 압도적인 표차로 학생회장이 되었다. 그렇게 나는 결국 내가 가장 싫어했던 일을 하게 되었고, 졸업할 때까지 매월 전교생 앞에서 구령을 외치는 일이 반복되었다.
나는 고등학교 시절 수학과 물리를 무척 싫어하는 학생이었다. 한국에서 수학을 잘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공식을 암기해야 하지만, 나는 기호나 숫자를 외우는 것에 상당히 취약했다. 물리의 경우 공간에 대한 이해력이 필요하나, 공간 인지 장애가 있어 좋은 점수를 받는 것이 무척 어려웠다. 하지만, 아버지는 나의 내성적인 성격으로 인해 인문 계열보다는 이공 계열을 택할 것을 권장하였다. 결정적인 이유는 당시 공대 졸업생이 취업이 잘된다는 신문 기사가 많아서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수학과 물리를 제외한 다른 과목들의 경우 재미도 있었고, 성적도 꽤 괜찮아 그 당시 속으로 아버지 원망을 많이 했었다. 대학에 가서도 4년 내내 온갖 종류의 수학과 물리를 배웠으며, 졸업할 당시에는 정말 다시는 수학의 수자도 보고 싶지 않았다.
대학교 졸업 무렵, 컴퓨터가 빠르게 보급되면서 과제도 손이 아닌 컴퓨터로 작성하는 것이 추세였다. 프로그램으로 과제를 제출하면 가산점을 받을 수 있었지만, 나는 컴퓨터도 싫고 프로그래밍은 더 싫었다. 방학 동안 따로 컴퓨터와 프로그래밍을 배워보았지만, 나의 소질 없음을 다시 한번 확인했을 뿐 성과는 없었다. 그래서 손으로 하나하나 적어서 과제를 냈고, 대기업 IT 부문에서 서류 합격 통보를 받았을 때조차 면접을 보지 않았다. 그러나 운명은 나를 비웃듯 IMF가 터졌고, 취업 연기로 인해 국가에서 제공하는 IT 인재 양성 프로그램을 수강하게 되었다. 몇 개월 동안 프로그램을 배운 이후 일본계 IT회사에 취직하였으나, 새벽까지 이어진 야근과 스트레스 속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경험은 나를 지치게 했다. 그렇게 힘든 일을 겪고 나서야 원래 입사 예정이었던 회사에서 연락이 왔고, 프로그래밍을 더 이상 하지 않게 되어 다행이었다.
이 외에도 내성적인 성격 탓에 고객을 직접 만나 영업 활동하는 것을 싫어했지만, 미국, 대만, 중국 등 여러 나라에서 주재원으로 Business를 해야만 했다. 내 아내는 나 같은 사람이 고객 접대를 하는 것을 아직도 신기해한다.
결국, 나는 내가 싫어하는 일들은 언젠가는 꼭 하게 되는 운명을 가지고 있다. 처음엔 힘들고 받아들이기 힘들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경험들은 내 삶의 일부가 된다. 그럼에도, 여전히 나는 싫어하는 것들을 마주하는 것이 두렵고, 때로는 가슴이 두근거리기도 한다. 나이가 들면 이러한 상황이 익숙해질 만도 하지만, 오히려 거쳐야 할 과정을 알기에 두려움이 더 커지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