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친구라는 이름 아래

우정과 감정 사이, 그 미묘한 균형

by 역마자

남자와 여자가 친구로 지낼 수 있을까? 오래전부터 이어져온 질문이다. 누구는 가능하다고 말하고, 누구는 불가능하다고 단언한다. 영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에서 해리는 단호하게 말한다.
“남자와 여자는 절대 친구가 될 수 없어요. 잠자리가 항상 둘 사이를 방해하거든요.”

그 대사가 늘 마음속에 남는다. 과연 정말 그럴까?


처음부터 서로를 전혀 이성으로 보지 않는 경우가 있다. 외모가 내 취향과 전혀 다르다든지, 성격은 잘 맞지만 연애 대상으로는 상상이 안 된다든지. 그런 관계에서는 정말 아무 문제 없이 친구로 지낼 수 있다. 어쩌면 오히려 동성 친구보다 더 편할 때도 있다.


하지만 반대로, 상대에게서 작은 매력이라도 느끼는 순간 이야기는 달라진다. 처음에는 여자 사람 친구였을 뿐인데, 어느 날 문득 눈빛이 오래 남는다. 술자리에서 스친 손길이 괜히 신경 쓰이고, 다른 남자와 즐겁게 웃는 모습이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다. 그 순간부터는 더 이상 순수한 친구라고 말하기 어렵다. 감정은 애써 외면한다고 해서 사라지는 게 아니니까.


내 주변에서도 그런 사례들을 많이 봤다. “우린 절대 친구 이상은 안 돼”라며 큰소리치던 이들이 결국 연인이 되곤 했다. 또 어떤 경우에는 한쪽만 감정을 품고, 고백하지도 못한 채 조금씩 멀어져 가기도 했다. 그렇게 우정이든 사랑이든, 결국은 예전처럼 순수한 관계로 남지 못했다.


남녀 사이의 우정은 분명 가능하다. 하지만 조건이 있다. 서로에게서 아무런 매력을 느끼지 않을 때, 그때만 가능하다. 그 선이 무너지는 순간, 관계는 더 이상 예전의 우정으로 남아 있지 못한다.


어쩌면 이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모두 사람이고, 감정을 가진 존재니까. 그리고 그 감정이 우정을 넘어설 때, 그것이 문제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흐름일 수도 있다. 중요한 건 그 순간에 서로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다. 연인으로 나아갈 것인지, 아니면 선을 다시 그어 친구로 남을 것인지.


누군가 내게 묻는다.

“남자와 여자, 정말 친구가 될 수 있어?”
나는 잠시 웃고, 이렇게 대답한다.
“가능하지. 그건 서로가 서로를 전혀 이성으로 느끼지 않을 때야. 그런데 그런 경우는 친구도 되기 힘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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