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루어도 허무한, 그러나 멈출 수 없는 인간의 욕망
버킷리스트란,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일들을 적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것을 희망이라 부른다. 하지만 나는 종종 그것이 ‘허무한 희망’처럼 느껴진다.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며 그 과정을 실행하는 동안은 삶이 뜨겁다. 매일이 설레고, 그 목표를 향해 가는 나 자신이 살아 있음을 느낀다. 그러나 막상 이루고 나면 이상할 만큼 마음이 비어버린다.
성취감은 잠깐이고, 그 자리를 곧바로 허무함이 채운다. 그리고 그 허무함을 잊기 위해 또 다른 자극을 찾아 나선다. 그게 인간이라는 존재의 아이러니일지도 모른다.
예전에 내 버킷리스트 중 하나는 ‘출장으로 지구 한 바퀴를 도는 것‘이었다. 당시 나는 엔지니어였고, 해외 출장은 상상조차 하기 힘든 시기였다. 그저 언젠가 비행기를 타고 여러 나라를 도는 사람들을 부러워하며 이루어질 수 없는 소망처럼 마음 한구석에 넣어두었던 꿈이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어느 날 그 꿈이 현실이 되었다. 업무로 세계 곳곳의 해외 법인을 돌게 되었고, 진짜로 지구를 한 바퀴 도는 일정표가 내 손에 쥐어졌다.
처음엔 믿기지 않았고, 모든 것이 새로웠다. 공항의 공기, 이국의 냄새, 호텔 창밖의 낯선 풍경까지…모든 순간이 꿈만 같았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설렘은 피로로 바뀌었다. 시차와 보고서, 일정에 쫓기는 출장이 반복되며 ‘세계 일주’는 더 이상 낭만이 아니었다. 비행기 안에서는 잠을 청하기도 힘들었고, 출장지가 많아질수록 마음의 여유는 점점 사라졌다.
그리고 문득 깨달았다.
‘버킷리스트’는 이뤘지만, 그때 느꼈던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는 걸.
돌이켜보면 인생이 그렇다.
간절히 원했던 것들이 막상 내 손에 들어오면 그 순간부터 그것은 더 이상 ‘꿈’이 아니라 ‘일상’이 되어버린다. 그리고 우리는 또다시 새로운 꿈을 만들어낸다. 조금 더 멀리, 조금 더 특별하게, 조금 더 자극적으로.
버킷리스트를 채우며 살아가는 삶은 분명 의미 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이루기 위한 과정 속에서 느꼈던 뜨거움, 그 시간 속의 나 자신을 기억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제 나는 새로운 리스트를 만들 때마다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걸 이루면, 나는 진짜 행복할까?”
그리고 가끔은 답을 찾지 못한 채, 조용히 리스트를 덮는다. 그 허무함 속에도, 또 다른 희망이 숨겨져 있다는 걸 이제는 조금 알 것 같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