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위치에 난 털만 살아남는다
사람은 누구나 털로 덮여 태어난다.
그런데 자라면서, 털에게도 운명이 생긴다.
어디에 나 있느냐에 따라, 어떤 털은 보호받고, 어떤 털은 조용히 사라진다.
머리카락은 단연 상급지다.
없어지면 다들 난리가 난다. 모발이식, 가발, 탈모약, 영양제까지...
이 구역은 언제나 재건축 중이다.
머리숱이 많으면 젊어 보이고, 줄어들면 한순간에 세월이 내려앉는다.
사람들은 오늘도 이 부동산을 지키기 위해 애쓴다.
눈썹과 속눈썹은 그 옆의 준상급지다.
모양이 흐트러지면 인상이 달라지고, 조금만 손봐도 분위기가 바뀐다.
그래서 사람들은 매일 그리거나 붙인다.
그 작은 선 하나가 얼굴의 ‘시세’를 바꾸기 때문이다.
하지만 얼굴 아래로 내려가면 풍경이 달라진다.
수염과 콧수염은 늘 재개발 구역이다.
어떤 이에게는 멋의 상징이지만, 대부분의 사회에서는 매일 아침 밀어야 하는 불필요한 땅이다.
‘깨끗하게 정리된 지역’만이 가치가 유지된다는 불문율이 있다.
겨드랑이와 다리, 팔의 털은 이미 비인기 지역으로 분류된다.
깔끔함이라는 이름으로 철거된 지 오래다.
남자들도 제모를 하며 말한다.
“이제는 시대가 달라졌어요.”
하지만 또 이상한 일이다.
너무 매끈하면 어색하고, 조금 있으면 관리 안 한 사람처럼 보인다.
이곳의 기준은 언제나 모호하다.
마지막으로 코털과 귀털.
그 존재가 드러나는 순간, 사회적 신용은 급락한다.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도 그 한 줄기 털이 보이는 순간 ‘관리 안 하는 사람’이라는 낙인이 찍힌다.
이곳은 철저히 숨겨야 하는 그림자 같은 지역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 몸의 털은 사회의 축소판 같다.
머리카락은 심고, 눈썹은 그리며, 수염은 밀고, 겨드랑이는 없애고, 코털은 숨긴다.
같은 몸에서 태어났지만 ‘어디에 나았느냐’가 곧 존재의 가치가 된다.
사람들은 그렇게 말한다.
“보기 좋으니까, 필요 없으니까.”
하지만 어쩌면 그 말속에는 ‘사회가 정한 기준’이라는 말이 숨어 있다.
털도, 사람도 결국 그 기준 안에서 자신의 자리를 지키려 애쓰고 있는 건 아닐까.
가끔 그런 상상도 한다.
모발이식 병원 앞에서 코털이 이렇게 말하는 장면을.
“언젠가 우리도 귀하게 여겨질 날이 올 거야.”
그날이 오면, 모든 털이 평등해질까?
아니면 또 다른 상급지가 생겨날까.
결국 털의 세계나 인간의 세계나, 자리싸움은 끝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