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지향성을 가지고 있는 존재인가?
훗설은 '현상학의 아버지'라 일컬어집니다. 그는 우리의 의식이 '지향성'을 갖는다고 언급했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경험하는 것은 우리의 감각과 의식이 대상을 향해 열려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는 대상은 지향적인 의식 작용에 내재한다고 했습니다. 대상이 우리에게 나타날 때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대상은 지향하는 인간의 의식이 바라는 바를 따라 취사선택되어 나타납니다.
과학자는 세계를 원인과 결과에 따라 설명하려는 목표를 가진 지향적 존재입니다. 반면 시인은 직관의 눈으로 다가서는 지향적 존재입니다. 훗설이 말하는 '내재성'을 확정시켜 생각한다면 '내가 누구냐에 따라 세계는 나에게 다른 모습을 보인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나를 둘러싼 물질적 환경이 엄연히 존재하지만, 그 사이에서도 희망과 긍정을 지향할 수도 있고, 절망과 부정을 지향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지향적 의식의 내재성'의 개념을 통해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는 기독교 신앙을 가진 사람으로서 '믿음'에 대해서도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의 어머니는 "말이 씨가 된다"는 말씀을 많이 하셨습니다. 어린 시절 나는 이 말이 그저 아이들에게 겁을 주기 위한 것이라 생각했지만, 진실로 과학적인 말입니다.
긍정적인 사고방식이 우리에게 성공을 가져다준다는 말이 다소 천박하게 들리기도 하지만, 결국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긍정과 희망, 좀 더 깊게는 '우리 존재의 토대인 신의 선하신 성품을 신뢰하며 감사의 눈으로 바라보는 세계'를 기대한다면 반드시 그 세계는 현실이 됩니다.
현대철학의 사유와 성경의 가르침은 '인간은 창조적 존재'라는 점인데, 훗설의 철학개념으로 보자면 '무엇을 바라는가'라는 질문을 통해 창조가 이루어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내일은 신이 우리에게 주시는 경이로운 선물이라 믿는다면, 그 시간은 우리에게 그대로 드러날 것입니다.
(다만, 이것은 물질적, 경제적 차원에서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것은 더 깊은 인생의 의미와 관련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