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_와인(가제)_1

초대장

“야, 너 와인 품평회 안 갈래?”


“와인? 그런데 야 품평회면 그거 뭐냐. 와인 맛이 어떤지 고상 떨면서 말하고 그래야 하는 거 아니야? 술을 미주알고주알 따지면서 마시면 맛있냐?”


세훈은 불빛에 물들어 오렌지빛으로 번들거리는 물이 찰랑대는 잔을 입에 가져갔다. 둥둥 떠 다니는 얼음이 유리잔에 부딪히며 카랑카랑 듣기 좋은 소리를 냈다.


반대편에서 민우가 꼬나물고 있는 담배가 빨갛게 타 오를 때마다 조금씩 짧아졌다. 아까부터 무슨 생각을 하는지 술잔은 입에도 대지 않았다. 사실 술집에 와서 앉을 때부터 저놈 자식이 다리를 떨어대는 바람에 계속 신경이 쓰였다. 온몸을 울리는 쿵쾅대는 음악소리에도 미세한 떨림이 테이블을 타고 전달되었다.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쓸어 올려서 괜히 내 머리도 이상한지 신경이 쓰였다.


“야 인마, 술 쏜다고 데리고 왔으면 분위기 좀 살려 새끼야. 술맛 떨어지겠네.”


“그러는 새끼야. 너는 술맛을 뭐 알고 쳐 마시냐?”


민우는 겉옷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손바닥만 한 봉투를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놨다.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은 빨간 봉투였다. 뭘로 칠하면 저렇게 피처럼 빨갛게 되는지 신기했다.


“너, 이게 뭔 줄 알아?”


“봉투네 봉투. 연애편지라도 써 왔냐? 남자는 사절이다.”


얼음이 다 녹아 미적지근할 것 같은 술을 한 번에 반이나 털어 넣고 민우는 어이가 없다는 듯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개그 하냐? 헛소리하지 말고 열어나 봐.”


봉투를 내 앞으로 미는 녀석의 얼굴은 진지했다. 방금 전에 본 웃는 얼굴은 꿈이었나? 봉투가 흘러나온 피처럼 새빨간 탓에 손을 대기 싫었다. 이깟 봉투가 뭐라고. 나도 모르게 손이 떨려 봉투를 집어 올리는데 괜히 시간이 걸렸다. 엄한 술잔을 들어 남은 술을 한 번에 넘기고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씨발”


내 입에서 나온 목소리인가 싶은 이상한 소리를 들으며 봉투를 열었다. 새하얀 종이가 보였다.


“이게 뭐야. 씨발. 괜히 긴장했네. 아무것도 없잖아.”


“거기 뒤에.”


“뭐가 있다고...”


뒤집은 종이 한가운데에 노란 링 같은 것이 찍혀 있었다. 오렌지색 조명 때문인지 금색으로 빛나는 것 같았다.


“로호 앙헬. 들어본 적 있어?”


홀린 듯 손바닥만 한 종이를 들여다보던 나는 뜨뜻한 입김과 함께 들려오는 민우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손에 힘이 빠져버렸다. 떨어진 종이를 줍는데 갑자기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와인 좋아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다 안다는 이름. ‘로호 앙헬’.


“야. 그 뒤에서 소문 자자한 와인? 진짜 있는지 없는지도 모른다며. 그거 구라 아냐?”


민우는 말없이 손에 든 종이를 가지고 가더니 어디서 꺼냈는지 팬 뒤에 붙은 보라색 불빛을 비췄다.


“지도?”


“얼마 전에 갑자기 신영선배한테 연락이 왔어. 소개팅을 주선하는데 남자가 한 명 빈다나 뭐라나. 그러면서 나한테 나가달라는 거야. 내가 또 그런 거 거절을 못하잖냐.”


“지랄하고 자빠졌네. 그냥 여자가 궁금했던 거겠지.”


“근데 거기서 제일 인기 있던 애가 나한테 연락을 하더라고. 그래서 한동안 만났거든. 걔 술 얼마나 잘 마시는 줄 아냐? 내가 술로 진건 걔가 첨이다 야. 요 전에 필름 끊겨가지고 걔네 집에 갔었어.”


“야. 너 씨 일부러 필름 끊겼냐?”


“잘 들어봐. 새끼야. 그런 거만 관심 있어가지고. 아 근데 걔가 주는 와인이 진짜 이 세상 맛이 아닌 거야. 취한 와중에도 느껴지더라 그게. 나중에 알았는데 그게”


“로호 앙헬이었다 이거냐?”


갑자기 소곤거리는 민우가 어이가 없었다. 이 자식은 지금 도시전설 같은 이야기를 진짜라고 믿고 있기라도 한 건가? 술을 쳐 마시더니 머리가 어떻게 됐나.


“미친놈. 정신 차려 새끼야. 그딴 이야기하려고 만나자 그런 거냐? 나 간다. 정신 좀 차리면 다시 연락해라.”


일어나려는데 민우의 억샌 손이 팔뚝을 잡아챘다. 손을 씻고 말리다 만 사람처럼 차갑고 젖은 손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나 제정신이다. 이거 초대장이야. 로호 앙헬 품평회. 새로운 와인이 나올 때마다 이런 걸 한다나 봐. 같이 가자. 끝내주는 애들도 온대.”




(계속)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저기압인 날은 방구석이 제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