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_와인(가제)_2

민우

“그럼 가는 거다.”


한숨을 쉬고 다시 앉는 내 귀로 민우의 목소리가 달려들었다. 언제 사랑하는 사이라도 됐단 말인가. 가는 사람 팔목을 채 가게.


“너, 나 좋아하냐?”


돋아난 소름을 눈치채지 못하게 손으로 쓸면서 대충 내뱉은 소리에 민우는 얼른 잡은 손을 뗐다.


“그럼 그렇게 알고 준비한다.”


“이 자식이. 뭐,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준다는데, 이까짓 거 들어준다. 줘. 대신 너 오늘 쏴라.”


“새끼. 알았다. 오늘 내가 끝내주게 책임진다.”


말없이 초대장을 이리저리 불빛에 비춰보는 날 보는 민우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민우는 일이 잘 풀리거나 재미난 꿍꿍이가 있을 때 꼭 저런 표정을 지었다. 자주 만나서 술을 마시기는 해도 서로를 깊이 아는 사이는 아니었다. 대학 때 짝사랑 하던 선배에게 차이고 처음으로 찾아간 바에서 아르바이트생과 손님으로 처음 만났다. 위스키를 물처럼 마시고 변기에 머리통을 들이박고 있는 나를 건져준 것이 민우였다.


알고 보니 우린 동갑이었다. 민우는 잘 다니던 학교를 때려치우고 술 공부를 한다고 했다. 하고 싶은 게 있다고 했던가. 하고 싶은 것도 없이 가라는 대학교에 가서 머릿수만 채우고 있는 나와는 많이 달랐다. 부러웠다. 질투도 났다. 하다못해 그의 얼굴을 보러 왔다는 여자 손님조차도. 별 시답지 않은 이유로 나를 찼던 선배도 그렇게 끝내주진 못했다. 한마디로 재수 없는 자식이었다. 민우는.


책임진다는 말은 허투루한 소리가 아니었나 보다. 민우는 나에게 듣지도 보지도 못한 술을 잔뜩 대접했다. 딱 봐도 담겨 있는 병들의 모양새가 예사롭지 않았다. 술이라면 아무거나 다 처마시는 내 입에는 그게 그거였지만 고급이라니 뭐. 나중에는 뭐라고 떠들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지만 변기통에 머리를 쳐 박고서야 끝이 났다. 어김없이 날 건져 올려준 민우는 익숙하다는 듯이 날 우리 집에 데려다주고 집으로 돌아갔다.


점심시간이 한참이나 지나고서야 겨우 눈이 떠졌다. 목이 너무 말라 침을 삼키려다 컥컥 대는 통에 일어났다. 지끈대는 머리를 잡고 희미하게 빙글빙글 도는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거운 몸이 바닥으로 꺼지는 느낌과 함께 욕지기가 났다.


화장실에 가려고 일어나다가 중심을 잡지 못해 바닥에 패대기치듯 쓰러졌다. 반동으로 배가 눌렸는지 속에 있던 것들이 쏟아져 나왔다.


“씨발. 책임지려면 끝까지 책임지던가.”


괜한 민우 탓을 하고 돌아누워있는데 전화가 울렸다.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민우였다.


“여보..”


“야. 준비 다 했어? 지금 너네 집 앞에 도착했을 거야.”


“뭐가?”


“아 이 새끼 좀 보게. 어제 다 이야기했잖아. 와인 품평회 간다며. 오늘 밤에 출발한다고 몇 번을 말했어. 지금 쯤 차가 도착할 테니까 타고 와. 이따 보자.”


“지금 일어..”


마른입을 열어 뻐끔대듯 말을 쥐어짜 내는데 전화가 끊겼다. 동시에 초인종이 울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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