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_와인(가제)_3

품평회

그녀는 눈부셨다. 타고 온 매끈한 스포츠카만큼이나 잘빠진 몸매를 한 그녀는 눈이 나쁜 모양이었다.


“세훈 씨? 준비됐죠? 따라와요.”


옆얼굴에 쳐 발린 냄새나는 토사물과 아무렇게나 걸쳐져 있는 옷이 보이지 않는 듯한 말투였다. 아까 그건 꿈이었나? 입안에 남아있는 씁쓸한 액체의 맛과 단추가 벌어져 드러난 가슴팍에 닿는 담배연기의 뭉근한 감촉이 꿈일 리가 없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갑자기 눈앞으로 그녀의 손이 다가왔다. 내 얼굴을 쓰다듬으려는 건가? 나도 모르게 몸이 움찔하며 뒷걸음질 쳐버렸다.


“15분. 이거 마시고 준비해서 내려와요.”


한 손에 쏙 들어오는 작은 갈색병에 뭔지 모를 액체가 찰랑거렸다. 독이라도 들었나 싶어 얼결에 받은 그것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무표정했던 그녀의 얼굴에 냉소가 떠오르나 싶더니 휙 돌아서 나가버렸다. 천천히 닫히는 문 사이로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비집고 들어왔다.


“술 깨는 약이야. 꼭 마셔요.”


속을 들킨 것 같아 보는 사람도 없는데 괜히 몸이 뜨거워졌다. 힘이 들어가지 않아 겨우 뚜껑을 열고 단숨에 들이켜고는 화장실로 들어갔다.


2시간쯤 지나고 드디어 민우와 만났다. 민우는 뭐가 그렇게 좋은지 싱글벙글한 표정을 하고 나를 반겼다. 다시 그녀가 운전하는 차를 타며 비밀 장소에 가는 거라는 이야기와 함께 눈가리개를 했다. 자꾸만 쏟아지는 잠을 숙취 탓으로 돌리다 깜빡 잠이 들었나 보다. 너무 추워서 깨보니 이번엔 내가 어디 있는 줄도 모르겠다.


“저기요. 얼마나 더 가야 돼요?”


대답이 없었다. 이빨이 덜덜 떨린다. 아까부터 얼어 죽을 바람이 불어온다. 모르긴 몰라도 여긴 어디 높은 산이거나 피서지로 유명한 계곡이거나 그럴 거다. 안 그러면 이 한 여름에 이렇게 살이 덜덜 떨리는 냉기가 휘몰아칠 리가 없다. 거 어디 산속에 있는 동굴에 가면 한 여름에도 얼음이 얼어있고 그렇다던데. 어디였더라.


“민우야, 야, 민우.”


출발할 때만 해도 같이 있었는데 지금은 옆에 있는지 어떤지 조차도 모르겠다. 옆에 있으면 쳐서 말이라도 걸어볼 생각으로 팔을 휘휘 저어봤지만 괜히 드러난 살이 찬 바람에 닿아 소름만 돋았다. 몸통을 꽉 조이는 벨트는 어디로 연결이 돼 있는 건지 아무리 더듬어도 밋밋한 곳만 만져졌다. 최신식 스포츠 카의 벨트는 다 이런 식인가. 아까 출발할 때 봤던 매끈하게 잘 빠진 스포츠 카가 떠올랐다.








“야. 너 뭐 해. 안 내려? 그만 쳐 자. 이 새끼야. 도착했어.”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민우가 도착했다며 눈가리개를 풀어주었다. 차고인 모양인지 실내로 들어와 버려서 주위 풍경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이빨이 덜덜 떨리는 냉기도 느껴지지 않는다. 이거야 말로 꿈이었나. 저 멀리서 클래식이 흘러나왔다.


와인 품평회장은 평범했다. 넓은 홀에 둥그런 테이블이 늘어져 있고, 각 테이블마다 와인이 차가운 얼음물에 담겨 놓여있었다. 우리는 그녀가 안내하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그녀는 민우에게 관심이 있는 듯했다. 시종일관 민우 옆에 딱 붙어 있었다. 입을 끊임없이 움찔 대는 걸 봐서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은데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이제 보니 그녀는 웃고 있었다. 아까 날 볼 때는 무표정이더니.


품평회라더니 맛에 대한 이야기고 뭐고 다들 그저 춤추고 먹으러 온 사람들로 보였다. 소리가 어디로 흡수되기라도 하는지 음악소리 빼고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할 일이 없으니 괜히 눈앞에 높여진 술잔에만 손이 갔다. 권하는 사람도 없는데 끊임없이 술잔을 채웠다. 술병은 술로 고치는 법이지.




“뭐가 끝내주는 애들이냐 씨발. 술 먹이는 모임이구만 이거. 뭐 하자는 거야.”


또 기억이 끊긴 모양이다. 침대에 누워 이불까지 얌전히 덮고 있었다. 지끈대는 머리를 붙잡고 데자뷔처럼 빙글빙글 도는 천장을 보고 있었다. 갑자기 요의가 느껴졌다. 배가 풍선처럼 빵빵하게 부풀어 오르는 기분에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화장실이 어디라고 했더라.”


한숨을 폭 내쉬고는 버릇처럼 머리맡을 더듬어 핸드폰을 찾았다. 보들보들한 이불만 손에 닿았다. 일어나는데 현기증이 일어나 잠시 비틀대다가 다시 주저앉았다. 열린 창문으로 후텁지근한 바람이 들어와서 술기운을 부채질하는 것 같았다. 올려다본 하늘에 걸려 있는 초승달이 마치 비웃는 것처럼 입을 찢고 있었다. 갑자기 신트림이 올라와서 입을 막고 화장실을 찾다가 방 밖으로 뛰쳐나갔다.


나가자마자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냅다 달렸다. 이제껏 살아오면서 제일 빨리 달리는 중인지도 몰랐다. 초대받은 친구 덕에 붙어 온 주제에 복도에 토악질을 하는 일은 있을 수 없었다. 그런 예의 없는 손님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려면 최대한 입을 틀어막고 화장실에 가는 수밖에 없었다.


저 멀리 어두운 복도 불빛을 받으며 걸어가는 익숙한 뒷모습이 보였다. 민우였다.


“민우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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