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슈, 거 내 말 듣고 있슈
“아 하기 싫음 말던가. 되게 비싸게 굴고 있네.”
“야, 넌 왜 그래. 맨날 그렇게 톡톡 쏴대고. 그러니까 아무도 같이 있으려고 안 하는 거야.”
“지 몸 썩는지 어떤지 알지도 못하는 게 더럽게 말 많네.”
“시끄러워 죽겠네. 내가 스스로를 잘 챙기라고 했지. 자기 먼저 잘 챙겨야 남을 챙기든 말든 하는 거 아니야. 말하는 거 들어보면 기가 찬다. 기가 차. 누가 누구보고 뭐라고 하는 건지 원.”
“그만해. 이제 말이야. 우리밖에 안 남았는데. 어. 그러지 말자. 나는. 그 이야기 궁금해. 그래도 뭐, 조금은 정든 사이니까. 애도 정도 해줘야 하지 않겠냐.”
“지랄.”
“넌 좀 찌그러져 있어. 애도라. 뭐 좋지. 마지막을 함께한 정이 있으니까. 그럼 이야기한다. 그러니까 몇 날 며칠 어디서 났는지 정장을 쫙 빼 입고 들락날락했다. 오밤중에. 뭘 하는지야 내사 모르지만, 한 번은 술에 절어서 윗도리는 어디다 던져 버리고 기어 들어왔어. 또 어느 날은 다쳤는지 팔에 붕대를 감고 들어오더라. 그런데 그러고 또 나갔어. 그게 마지막이었던 것 같아. 그 이후로는 나도 못 봤거든. 마지막은 말끔하게 들어오더라. 그때 술을 엄청 사가지고 들어온 것 같아. 안주도 없이 병나발을 불어대는데 보는 내가 속이 쓰려서 혼났네.”
“대성통곡하던 날이 마지막 외출했던 날이구만. 자는데 자꾸 못 살게 굴어서 아주 짜증이 났었는데 말이야. 상황 파악을 못했네 내가. 뭐, 이제와서지만.”
“걔는 그 가족이라는 것도 없냐? 왜 혼자 자꾸 궁상떨고 그랬대.”
“진짜 얘는 아는 게 하나도 없네? 걔 가족 없어. 부모는 이혼했나 그래서 한쪽 밖에 없었는데 전에 돌아가셨다. 이거 아무도 모르지? 한동안 병원 갔다 장례 치른다 바빴어. 이것도 오래전 일이지만. 그리고. 결혼하기로 한 여자 있었던 건 아냐? 이쪽 부모 없다고 차였다. 프러포즈까지 하고 허락받았는데. 여자 쪽 부모가 반대했어. 어이없네. 부모가 같이 사는 것도 아닌데 무슨 문제가 된다고 그러는 거냐? 당사자들이 알아서 잘 살면 되지.”
“그럼 뭐야. 가족도 없어. 기댈 데도 없어. 일도 잘려. 돈은 있었어?”
“더럽게 눈치도 없네. 밥도 못 챙겨 먹는 거 보면 모르냐. 돈 있으면 시켜 먹던지 했겠지.”
“이상하네. 그거 뭐냐. 결혼 준비한 거 아냐? 그러면 말이야. 돈이 필요한 거 아닌가. 어 내가 잘 모르지만. 일 그거 잘릴 때까지 했잖아.”
“야! 조용. 문 여는 소리 난다.”
발소리가 가까워지는가 싶더니 덜컥대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지는 해의 벌건 빛 한줄기가 열린 문을 통해 들어왔다. 단정하게 차려입은 남자가 흰 장갑을 낀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고개를 한번 숙인 뒤 신발을 벗고 들어왔다.
썰렁한 방안에 널브러져 있는 몇몇 물건들이 이전에 사람이 살았던 곳이라고 알려주는 것 같았다. 소동이 있던 날 많은 것들이 밖으로 옮겨졌다. 남자는 겨드랑이에 끼고 있던 노트 같은 것을 손에 쥐고 뭔가를 적는 것 같았다. 방 안 곳곳을 꼼꼼히 확인했다. 방 한가운데에는 여전히 이불이 펼쳐진 채였다. 이불 위에는 사람의 형상 같기도 한 길쭉하고 검은 얼룩이 들러붙어 있었다. 이불 밑을 살피려고 한쪽 끝을 들어 올릴 때였다. 단단한 물건이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남자가 이불을 빙 돌아 소리가 난 곳을 향했다. 조금 뒤 남자가 주워 올린 것은 배터리가 다 됐음을 알리는 메시지가 떠 있는 핸드폰이었다. 주머니를 속에서 지퍼백을 꺼낸 그는 핸드폰을 갈무리했다.
“냅둬. 씨발! 그냥 놔두라고!”
“이불도 안 뒤졌구먼. 빠졌네 이것들이.”
어디선가 전화벨이 울렸다. 남자가 가슴팍을 뒤지는가 싶더니 핸드폰을 꺼내 귀에 댔다.
“여보세요. 어. 야. 여기 조사 제대로 한 거 맞아? 핸드폰 굴러다니고 있는데. 뭐. 약? 그때 그거? 그게 원인이었을 거라고? 그렇지 뭐. 고독사야 고독사. 알아보니까 이 사람 빛도 꽤 많던데. 연고자가 없어서 어쩐다냐. 집주인은 뭐래. 다 봐가니까. 끝나고 내가 집주인한테 연락할게. 알았어. 어. 수고.”
남자는 전화를 끝내더니 앉은뱅이책상 위에 있는 어항을 들여다보았다.
“아 냄새. 이 와중에도 쏜다 쏴. 완전히 썩었네. 안에 뭐가 있던 거야 이거.”
“말하는 꼬라지하고는. 실례잖아요. 썩었다니.”
벌떡 일어난 남자가 이번에는 방 전체를 훑듯 돌아본다. 이상한 얼룩이 묻은 채 펼쳐져 있는 이불과 썩어버린 물을 담고 있는 어항. 이 모든 것을 지켜보듯 형광등이 천장 한가운데 달려 있었다.
“여보슈. 거 우리가 다 봤어. 그거. 이야기해 드릴게. 거기 앉아봐요. 저기. 거 내 말. 듣고 있는 거요? 어이. 듣고 있냐고?”
“지랄들 한다. 야. 저 사람 니들 말 안 들려. 뭐라고들 떠들고 자빠졌냐.”
남자는 주섬주섬 주머니에서 소주병과 잔, 일회용 접시를 꺼내 이불 앞에 늘어놓았다. 바지 뒷주머니에서 꺼내 뜯어낸 것이 일회용 접시에 담겼다.
“아, 내가 이거 이 더운 날 데워서 가지고 오느라 엉덩이에 불나는 줄 알았잖수. 불닭발인데 이런 거 좋아할라나 모르겠구먼.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거요. 잔말 말고 먹어주슈. 이제 이거 한잔 받고 거 가서 편히 지내쇼. 사는 동안 고생 많이 하셨수.”
남자는 잔에 소주를 가득 담더니 한입에 털어 넣고는 다시 가득 따라 불닭발이 담긴 접시 옆에 놓아주었다. 잠시 손을 모으고 있던 남자가 일어나려는 순간 전화밸이 울렸다.
“여보세요. 아 네. 네 끝났습니다. 제가 연락드리려고 했는데요. 네. 고독사고요. 특별한 점은 못 찾았어요. 네. 아닙니다. 네. 그럼 조사 끝났으니 이제 업체 부르셔서 청소 시작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네.”
전화를 끝낸 남자는 돌아서 방을 가로질러 현관문으로 향했다. 그가 나가고 현관문이 닫히자 방안이 어둠 속에 묻혔다. 내내 시끄럽던 소리가 뚝 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