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수아비

비가 내린다. 쭉쭉 뻗은 새파란 이파리가 싱그럽다. 알이 맺혀 배를 불리기 시작한 쌀알도 작지만 탐스럽다. 조롱조롱 매달려 급하다는 듯 몸을 부풀리고 떨어져 내리는 빗물은 사랑스럽기까지 하다.


일주일쯤 됐나? 몇일째인지 세다가 잊어버렸다. 비가 오지 않아 타 버릴 것 같았다. 강렬한 햇빛에 시달리는 피부를 그늘 속에 숨기며 버틴지 한참 되었다. 드디어 비가 오기 시작했다. 그처에 호수가 있었기에 망정이지. 없었다면 벌써 말라 비틀어져 알 수 없는 형태로 굴러다니고 있겠지.


비가 오니 신나는건 나 뿐 만이 아니었다. 얼굴 한가득 함박웃음을 띄우고 저쪽 논떼기 주인장이 나타났다. 그간 코빼기도 안보이더니 뭐가 그리 좋은지 콧노래까지 흥흥대고 있다. 그렇게도 좋은가. 커다란 주전자까지 들고 와서 무어라무어라 하고 앉았다. 신났네. 신났어. 저 인간은 늘 저렇게 쳐 마시는게 일이다. 같이 오던 주름이 자글자글한 노인네는 어디갔을까.


어? 어? 저 사람이 미쳤나. 정신이 나갔구만. 왜 저 호수쪽으로 가고 난리지? 저걸 막아? 말아?


“어이, 거기. 뭐하는거요. 미쳤어? 그 호수 보기보다 꽤나 깊어. 이 사람이 빠지면 어쩔라고 그쪽으로 가는거야. 멈춰. 멈추라고 이사람아! 어이!”


있는대로 목청을 돋우어 소리쳤다. 귀가 막혔는가. 계속 걸어가는 것이 몇 발만 더 가면 호수 속으로 들어가게 생겼다. 비 덕에 살랑살랑 바람이 부는 호숫가는 확실히 기분 좋긴 했다. 그렇다고 호수로 들어가나?


“제기랄”


잠시 고민하다가 가까이 가 보기로 마음 먹었다. 혹시 아는가 콩고물이라도 떨어질는지. 세상일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니까.


“여보쇼!”


이제는 손에 잡힐만큼 가까이 왔다. 뭘 본다고 들어쳐먹지를 않는걸까. 한발만 더 가면 호수다. 보고 있는데 심장이 벌렁 거린다. 펄떡대는 것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까봐 괜히 침만 삼켰다. 저기 뭐가 있는건가. 호수쪽에 못 박힌 듯 다른 곳엔 눈길 하나 안 주고 걷는 꼴이 뭐에 씌인 것 같다. 길쭉길쭉 자라난 풀들이 앞을 가려 잘 보이지 않는다. 춤을 추는 것처럼 걸어가는 저 인간의 모습이 들쑥날쑥 거린다. 뭐가 들리는 것 같은데?


“...보라고. 에이. 거기서 뭘 하는가. 이리 와 봐.”


“어이, 거기 누가 있어? 대체 누굴 보고 그러는거야.”


“내가 갈게. 거기 딱 기다리라니까는.”


저 사람이 실성을 했나 히죽 거리는 꼬라지 좀 보라지. 어, 어, 어, 저 미친놈이 호수로 들어갔네. 아 뭐야 이거. 내가 사람 구하게 생겼냐고.








“오랜만에 비가 오니 기분이가 좋구나. 오늘은 비랑 쌀알들 안주로 술이나 한잔 해야겄어.”


새파란 벼가 늘어선 논이 끝나는 곳에 살고 있는 김씨는 한참만에 밖으로 나왔다. 어제까지만 해도 논에 대 놨던 물이 다 말라붙어 맨 땅이 드러났다. 김씨는 올해 농사도 다 글러 먹었다며 집구석에서 술이나 퍼 마셨다. 다행히 하늘은 김씨를 버리지 않았는지 단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비에 젖은 논두렁에 주저 앉아 술을 마실 때였다. 저 멀리 호숫가에서 뭔가가 움직이는게 보였다. 김씨는 벌게진 얼굴을 하고 비틀거리며 그 쪽으로 갔다. 어디선가 개구리가 시끄럽게 울어댔다. 걸어가며 보니 머리에 두건을 쓴 젊은 여자 같았다. 꽃무늬가 그려진 옷이 화려했다.


“어? 왠 젊은 여편네가 있네. 여보슈. 거기서 뭐하는거요.”


김씨는 먹던 술그릇은 내 동댕이치고 호수쪽으로 향했다. 하얀 얼굴을 한 여자가 호수를 유유히 헤엄치고 있었다.


“아이고. 지금 비도 오는데. 감기 걸려. 여기. 이쪽 좀 보라고. 에이. 거기서 뭘 하는가. 이리 와 봐.”


김씨는 어린시절을 이곳에서 보냈다. 호숫가는 어른들이 근처에 가지 말라고 귀가 닳도록 말하던 곳이다.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어지는 법이다. 김씨는 친구들과 몰래 호수에 와서 헤엄치며 놀았다. 수영이라면 자신 있었다. 특히나 호숫가에서 하는 수영이라면 더욱 그랬다. 시끄러운 개구리 소리가 귀에 찰싹 달라붙어 따라왔다.


“이놈의 개구락지가 왜 이렇게 시끄럽게 울어싸.”


김씨는 소리를 쫓는 듯이 귓가에서 손을 휘저었다. 한발만 더 가면 호수였다. 비가 오는데 들어가는 것이 조금 걸렸지만 화사한 꽃무늬 옷을 입고있는 그녀가 부르는 것 같았다. 물 속으로 들어갈 때마다 부풀어 오르는 옷이 꽃밭처럼 보였다. 김씨는 취기가 올라 제멋대로 움직이는 몸을 겨우 움직여 헤엄치고 있는 그녀에게 향했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향기로운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아 거 참 비싸게 굴기는.”


김씨는 바로 앞에 꽃무늬가 보인다 싶자 뒤에서 확 끌어안았다.


“엄마야!”


하얀 천으로 만든 얼굴에 대충 낙서 해 놓은 듯한 눈, 코, 입이 휙 돌아 웃고 있었다. 김씨는 소리지르느라 먹어버린 호숫물 때문에 켁켁 기침을 해 댔다. 바람 때문인가 막대기같은 인간이 김씨 쪽으로 흘러왔다. 깜짝 놀라 있는 힘껏 밀쳐내는 김씨의 눈에 옆으로 쭉 뻗은 막대기가 보였다.


“뭐야 이거. 허수아비잖아. 누가 이딴걸 만들었어.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네. 아 재수없어.”


김씨는 큰 목소리로 허수아비를 향해 불만을 터뜨렸다. 너무 목소리를 크게 냈는지 떨려서 제 목소리가 아닌 것 같았다. 자꾸 붙어서 따라오는 것 같아서 말을 듣지 않는 팔다리로 서둘러 허우적대느라 힘이 들었다. 몸이 무거워서 더 이상 앞으로 나가지 않을다. 자꾸 제 자리에서 빙빙 도는 느낌에 죽는건가 싶을 때 손 끝이 뭍에 닿았다. 물에 젖은 솜처럼 무거운 몸을 겨우 뭍에 올렸다. 한 참 숨을 고르다 몸을 일으켰다. 문득 옆으로 고개를 돌리는데 아까 그 허수아비가 보였다.


“아악! 저리 꺼져. 이거 뭐여.”


남은 힘을 끌어올려 발로 차대는데 김씨의 팔에 걸린 무언가가 보였다. 신발끈 같은 가느다란 끈이 한쪽 팔에 걸려 있었다. 다른쪽 끝은 허수아비의 허리춤에 둘둘 묶여 있었다. 눈을 크게 뜨고 이어진 끈을 살피던 김씨는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긴장이 풀려 몸이 축 늘어졌다.


“에이, 재수 옴 붙었다 했더니 신발끝이 붙었네.”


물 속에서 끌어 앉을 때 팔에 걸려든 모양이었다. 김씨는 허탈한 웃음을 한참이나 흘렸다. 술이 고팠다. 팔뚝에 걸려 있는 지저분한 끈을 벗어재끼고 허수아비 위로 침을 뱉었다.


“허수아비면 얌전히 저 논떼기나 지킬 것이지.”


김씨는 일어나 주저 앉아 술을 마시던 곳을 향했다. 젖은 옷이 무거운 듯 다리를 질질 끌며 가는 김씨의 뒷모습을 향해 바닥에 널부러진 허수아비의 얼굴이 살짝 돌았던 듯도 싶다. 트랙터 위에서 시끄럽게 울어대던 청개구리의 울음소리가 갑자기 뚝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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