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

거기 그녀가 있었다. 새벽까지 일을 한 날이었다. 일이 밀려 반차를 낼 수 없다는 말에 대충 눈만 붙이고 다시 나가는 길이었다. 수 없이 반복되는 자기소개 끝에 잡은 일자리였다. 면접 때 체력에 자신 있는지 물어보는 걸 듣고 눈치챘어야 했다. 이렇게 일이 많을 줄이야. 사람이라도 많이 뽑아서 일을 나누면 얼마나 좋으냐만은. 신입은 달랑 나 하나였다.


사수라는 사람은 뭘 하는지 매번 지각이다. 첫 출근 날 그는 서글서글하게 웃는 얼굴로 커다란 손을 내밀었다. 잘 부탁한다고. 뭐든 힘닿는 대로 도와줄 테니까 말만 하라고 했다. 으리으리한 대궐 같은 곳에서 함께 먹은 갈비탕은 끝내주게 맛있었다. 아마도 앞으로 힘내라는 무언의 압박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그는 그날 이후 회사에 한 번도 얼굴을 비추지 않는다. 때때로 그의 이름이 박힌 메신저 창이 떠오른다. 마치 날 잊지 말라고 외치는 것 같다.


좆같다. 그럼에도 회사를 관둘 수 없는 것은 당장 돈이 필요해서이다. 취업했다며 큰소리치고 집을 나온 게 잘못이었다. 합격했다는 연락을 받고 앞으로 꽃길이 시작될 줄 알았다. 아직 일을 찾지 못하고 집구석에 붙어 늘어져 있는 친구들에게 소식을 전했다. 인생 그렇게 사는 거 아니라고 분발하라며 훈수도 뒀다.


막상 홀로 나오니 신경 쓸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집을 구하면 들어가 살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다. 매달 날아오는 청구서며 매 끼니를 스스로 챙기는 것이며 어느 것 하나 녹녹하지 않았다. 신이 나서 만든 카드는 기억에도 없는 거래내역을 토해내기 바빴다.


벗어날 수 없는 늪에 빠져 허우적대는 기분이었다. 발이 바닥에 닿지 않았다. 몸은 자꾸만 밑으로 가라앉았다. 팔을 아무리 휘적거려도 나아갈 수가 없었다. 집으로 돌아갈까 생각도 해보았다. 취업해서 독립한 자랑스러운 아들이라며 동네방네 떠들고 다니는 부모님께 차마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집에 가지 않은 게 벌써 여러 해 되었다.


그날도 자꾸만 내려오는 눈꺼풀을 들어 올리며 걸었다. 눈감고도 찾아갈 수 있는 회사였다. 엎드리면 코 닿을 곳에 있었다. 야근이 많아 고민 끝에 회사 근처로 이사를 했다. 횡단보도만 하나 건너면 회사가 있는 건물이다. 영혼이 몸과 분리된 것 같은 멍한 느낌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갑자기 옆에서 단단하고 무거운 것이 달려들었다. 몸이 휘청하는 것 같더니 저만치 나가떨어졌다. 몸이 바닥에 눌어붙는 것 같았다.


“저기요. 저기요.”


누가 몸을 계속 흔들었다.


“젊은 양반. 괜찮아? 여보세요.”


멀리서 누군가가 119에 신고하라고 소리를 질러대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불쑥 얼굴이 나타났다. 무거운 손이 가슴팍을 마구 눌러댔다. 숨이 턱턱 막혔다. 제발 그만하라고 소리를 지르려고 벌린 입에서는 투명한 소리가 힘없이 공중에서 사라졌다.


갑자기 눈앞에 있던 얼굴들이 사라졌다. 주황빛이 어른거리며 사람들이 몸을 만져대는 것이 느껴졌다. 공중에 붕 뜨는 느낌이 들었다. 그 바람에 얼굴이 힘없이 옆으로 돌아갔다. 시선 끝에 그녀가 있었다. 일순 눈이 마주친 것도 같았다. 그녀가 웃었던가. 어수선한 사람들 속에서 곧추선 그녀의 자세는 눈에 띄었다. 누굴 기다리는 모양이었다. 나를 기다려주는 저런 사람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정신을 잃을 때까지 계속 그 생각만 했다.


나는 몇 개월에 걸친 병원 생활을 해야만 했다. 내장파열과 더불어 갈비뼈가 몇 개나 부러지고 폐에 구멍이 난 탓이었다. 한동안 제대로 숨을 쉬기조차 힘들었다. 회사에 나가지 못하는 것은. 아니 쉬어도 되는 것은 좋았다. 월급이 손에 들어오지 않아 누워서 목이 죄어오는 것 같았지만.


퇴원을 하고 성공적으로 회사에 복귀했다. 다행히 회사는 나를 위한 자리를 남겨두고 있었다. 어쩌다 들으니 내 대신 사람을 뽑다 잘 안된 모양이었다. 일주일을 못 버티고 도망가버렸다고 한다. 덕분에 월급이 쥐꼬리만큼 올랐다. 조금만 더 다녀보기로 했다.


횡단보도에 서 있는 그녀를 매일 만나고 싶어서. 그녀는 여전히 횡단보도에 서 있었다. 매일 아침 출근길에 나는 곁눈질로 그녀를 힐끔댄다. 매일 아침 출근길에 곁눈질로 그녀를 힐끔댄다. 마주 볼 자신이 없다. 복잡한 출근 시간. 오가는 많은 사람들 속에서 그녀는 늘 같은 곳에 서 있다. 단정하게 땋아 내린 머리를 허리춤에 늘어뜨리고서. 늘 하얀 원피스에 쨍한 하늘처럼 파란 카디건을 걸치고 있다. 어지간이 그 옷을 좋아하나 보다. 그러고 보니 사고가 났던 그날도 같은 옷이었다. 쨍한 파란 카디건이 구름 한 점 없는 하늘과 참 잘 어울렸다.


계절이 몇 번 바뀌었지만 그녀의 모습은 변화가 없다. 날씨가 이렇게 더운데 그녀는 땀 한 방울 흘리지 않는 듯 보인다. 오늘은 가는 길에 그녀와 눈을 맞춰보리라 결심했다. 이 계절이 가기 전에 같이 밥을 먹으러 가야지. 서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시원한 마실 것을 사서 그녀에게 주며 은근슬쩍 손도 마주해 보고. 손수건으로 땀을 닦아주며 그녀의 향을 느끼고. 그녀는 어떤 향이 날까. 갑자기 내 몸에선 이상한 냄새가 나지 않을까 신경이 쓰였다. 아 참. 오늘은 큰맘 먹고 장만한 잘 나간다는 향수를 뿌렸지.


저만치 횡단보도 건너에 그녀가 있었다. 그녀는 늘 그렇듯 어딘가를 바라보며 두 손을 아래로 맞잡고 서 있다. 수많은 사람들 속에 서 있는 그녀는 도도하기까지 했다. 파란불이 되었다. 그녀를 향해 걸었다. 용기를 내어 눈을 마주쳤다. 새카만 눈동자가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것 같아 눈을 뗄 수가 없다. 그녀가 살짝 웃었던 것도 같다. 갑자기 귀청을 찢을 듯이 빵빵 거리는 클락션 소리에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택시기사가 차를 멈추고 손가락질을 해대고 있다.


“미친놈아 지금 빨간 불이잖아. 죽고 싶어?”


갑작스러운 외침에 깜짝 놀랐다.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라 얼빠진 얼굴이 되어 그 자리에 굳어 버렸다.


“얼른 건너가라고. 내 말 들려? 아 씨팔. 아침부터 재수가 없어서.”


택시기사는 뭘 계속 구시렁대더니 차로 돌아갔다. 그러고도 분이 안 풀렸는지 내가 보도로 올라서자마자 클락션을 있는 대로 울리고는 가버렸다. 정신 똑바로 차리라는 마지막 인사도 잊지 않았다.


문득 되돌아본 그곳에 그녀는 없었다.


도돌이표처럼 반복되는 날이 밝았다. 요 며칠 횡단보도의 그녀와는 서로 눈을 마주치는 사이가 되었다. 말을 나눠보지는 못했지만 나는 꼭 가볍게 인사를 하고 지나간다. 새로운 아침 일과가 되었다. 오늘은 그녀에게 고백하기로 마음을 먹어본다. 좋아한다고. 전부터 지켜보고 있었다고. 마음을 전할 생각이다. 빨간 장미 한 송이를 미리 준비해 뒀다.


회사 앞 횡단보도에서 그녀는 언제나처럼 나를 보며 서 있다. 장미꽃을 등 뒤로 숨기고 그녀에게로 간다. 오늘도 역시 그녀의 눈은 나를 집어삼킬 것 같다. 입가에 미소가 사랑스럽다. 그녀의 앞에 선 순간 짧은 한 숨과 함께 장미를 꺼내 들었다.


“저..”


왠 작은 손이 장미가 들려있는 쪽 소매를 확 잡아당겼다. 그 바람에 몸이 그쪽으로 쏠렸다. 넘어질 뻔한 몸을 세우며 얼른 그녀를 향했다.


“죄송..”


“아저씨. 지금 빨간 불인데. 왜 거기서 꽃은 들고 서 있어요?”


돌아본 자리에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 두리번대는 눈에 그녀의 환하게 웃는 얼굴이 들어왔다. 횡단보도가 시작되는 곳에 심어진 나무 그늘 속에 그녀가 있었다. 꽃과 먹을 것들과 함께 작은 액자 속 그녀가 있었다. 쨍한 하늘과 어울리는 카디건을 입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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