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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 거기 팔 때는 특히 조심해. 안에 파묻힌 게 많아서 다 무너져 내릴 수도 있어.”
지저분한 진흙더미 사이로 존재감을 드러내며 얼굴을 내밀고 있는 것들이 있었다. 이곳에 무언가가 있었음을 알리는 것 같았다. 시커멓게 물든 책들. 삐죽 튀어나온 부서진 나무판자의 가시가 돋친 단면. 깨어진 그릇 같은 것들. 오랜 시간 쌓여 있던 탓에 단단히 들러붙어 마치 예술 작품 같기도 했다.
굴착기가 조심스럽게 단단해 보이는 진흙더미를 떠내고 있었다. 한쪽에 덤프트럭이 퍼낸 것을 받아내기 위해 대기하고 있었다. 지저분하게 남겨져 있던 이 자리는 깨끗이 치워져 새로운 건물이 들어설 예정이었다. 이것으로 10년여에 걸친 한강 복구작업이 거의 마무리된다. 허허벌판이었던 강남 일대가 초록이 가득한 공원 같은 곳으로 변했다. 오래전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던 아파트 들은 낮고 귀여운 주택으로 바뀌어 있었다. 아기자기하고 알록달록한 외관은 꼭 외국에 와 있는 기분마저 들게 했다.
사람들이 찾지 않던 이곳은 성지(聖地)가 되었다. 사진을 찍어 자랑하기 좋아하는 젊은이들. 처참했던 기억을 가슴에 품은 사람들. 모두가 새로이 꽃 피우는 이곳을 사랑하게 되었다. 불굴의 의지 같은 어떤 것을 느끼고 싶어 찾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은 이 장소를 글과 사진 같은 눈에 보이는 모든 것으로 사방에 알렸다. 덕분에 유가족을 위한 유실물 센터에도 활력이 돌았다. 한동안 찾는 이가 없어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던 물건들은 지인의 손에. 가족의 손에 들려 있을 곳을 찾았다.
커다랗고 시끄러운 굴착기의 팔이 느리지만 바쁘게 움직였다. 흙 속에 잠들어 있던 것들이 햇빛을 받고 깨어나 요란한 소리와 함께 떨어져 내렸다. 눌어붙은 책과 종이 같은 것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모두 트럭에 실려 분별 작업을 하는 곳에서 쓰레기와 그렇지 않은 것으로 나누어질 것이었다. 한동안 움직이던 굴착기가 멈췄다. 경적이 울렸다.
“오케이”
트럭에 타고 있던 이가 손을 흔들었다. 아까와 다른 경적이 울렸다. 동시에 트럭이 출발했다.
흙더미와 잡동사니로 너저분하게 만들어진 산이 여기저기 자리 잡고 있었다. 한쪽 끝에 임시로 세워진 듯 보이는 건물 속이 떠들썩했다.
“그건 쓰레기여. 뭘 나누고 난리여.”
“아니 여기. 뭐가 쓰여 있는데. 글자는 잘 안 보이는데 이름 같은 게 있는 거 같어서. 이거 잘 씻어내면 보이는 거 아닌가.”
“아 그런 건 그냥 버려. 이제 찾아갈 사람은 다 가져갔을꺼여.”
쓰다 남은 노트의 일부 같은 것이 쓰레기통 속으로 들어가나 싶더니 컨베이어벨트로 향했다.
“그래도 난. 누군가는 이런 종이 쪼가리라도 필요할 것 같더라. 지푸라기라도 붙잡고 싶은 심정이라고들 하잖아.”
말을 하며 꾸깃꾸깃한 노트 같은 것을 조심히 펴내던 주름 가득한 손은 가만히 컨베이어벨트 위에 종이를 올려주었다. 이가 나가고 금이 간 컵들과 진흙이 말라붙은 책 들이 뒤를 따랐다.
“이거 언제까지 해야 하는 거여. 벌써 몇 년인가 말이여. 맨날 흙더미를 들여다 봐싸니 눈이 다 침침해진 것 같어.”
“그러게 말이야. 한 일이 년 하면 끝날 줄 알았더니. 10년쯤 됐나? 말 그대로 강산이 바뀌었어.”
“이제 곧 끝날 거예요. 이번에 들어오는 것들이 마지막이거든요.”
흙더미가 흘러가는 분별기계 앞에서 분주히 손을 놀리던 사람들 뒤에서 굵은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그는 아까부터 뒤에서 입에 먹을 것을 주워 넣고 있었다. 삐쩍 말라 가죽만 남은 것처럼 보였다.
“그걸 어떻게 안댜. 우린 여태껏 여서 일해도 아무것도 모르는디”
“제가 지금 그거 실어 나르고 있거든요.”
눈이 흙더미를 쫓았다.
“아니, 젊은 사람이 뭐 한다고 그런 험한 일을 한 대.”
“찾는 사람이 있어서요."
누군가가 혀를 찼다. 잠시 떠들썩하던 곳이 침묵으로 가득 찼다. 컨베이어벨트가 올려진 것도 없이 홀로 흘러가고 있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