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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에 향기로운 향이 떠다녔다. 오랜만에 수환과 만나러 가는 날이었다. 어제저녁부터 입을 옷을 체크했다. 뭘 뿌리고 갈까 고르느라 한 손가락으로 셀만큼의 향수들을 한참이나 킁킁거렸다. 들뜬 마음에 밤새 뒤척댔다. 뜬 눈으로 밤을 새우고도 기분만은 상쾌했다. 내리쬐는 햇빛이 너무나 좋았다.
"아... 다크 서클 어쩔."
아침부터 거울을 붙잡고 한참을 씨름했다. 오랜만에 만나는데 퀭한 눈을 하고 나갈 수는 없지 않은가. 공을 들여 화장으로 피곤을 가렸다. 될 수 있는 한 생기 있게. 원래부터 서투른 화장이라 시간이 꽤 오래 걸렸다. 얼굴을 쉴 새 없이 두드려대는 손을 지지하던 팔이 아파져 올 무렵. 희서는 들고 있던 푹신한 솜 같은 것을 내 던져 버렸다.
“에라, 모르겠다.”
흐트러진 머리를 하나로 꼭 묶어 올리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널브러진 화장품을 뒤로하고 서둘러 밖으로 나서던 그녀는 문을 잠그다 말고 다시 들어왔다.
“아 내 정신.”
침대 위에 올려져 있던 노란색 종이가방을 소중히 집어 올렸다. 입가에 미소가 함박웃음으로 변했다.
“다녀오겠습니다.”
아무도 없는 집에 그녀의 달뜬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콩콩대는 발소리가 한동안 계속되었다.
달려오느라 거칠어진 숨을 헉헉대며 조용히 재즈가 흐르는 카페로 들어섰다. 고소한 커피 향과 옅은 나무 향에 마음이 편안해졌다. 평일이라 그런지 늘 붐비는 카페에는 사람이 없었다. 한강변이 보이는 창가 쪽에 자리를 잡았다. 빛이 들어오는 카페의 의자는 따뜻했다. 시간을 보니 아직 약속 시간까지는 여유가 있었다.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가지고 온 노란 종이가방 안에 물건이 잘 있나 확인했다. 웃음 띤 얼굴은 당혹스러운 표정이 되었다. 종이가방 안을 뒤지는 손길이 거칠어졌다. 이번에는 작은 손가방 속을 뒤적댔다. 한쪽 입술을 깨물고 있던 이빨이 뜯어먹기라도 할 듯 잘근잘근 움직였다.
“뭐야. 편지 안 가져왔나? 아 씨. 제일 중요한 거 두고 왔네.”
뭘 써야 할지 고민하면서 나가기 직전까지 들여다보던 편지를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나갈 때 잘 보이도록 신경 써 놓고 서둘러 나오느라 잊어버렸다. 하필 오늘 같은 날 늘 타던 자전거가 말썽인 것이 이유였다. 자전거만 타고 다니던 길을 걸어서 가려니 얼마나 걸리는지 알 수가 없었다. 좀 더 늦게 나와도 될뻔했다. 괜히 서둘러가지고.
편지를 쓸 생각으로 가방을 뒤졌으나 손때가 탄 다이어리밖에 없었다.
“저기요. 볼펜 좀 빌릴 수 있을까요? 아, 그리고 따뜻한 카푸치노 한잔 부탁드려요.”
다이어리를 꺼내 뒤적거렸다. 제일 깨끗한 페이지에 쓰고 싶었다. 종이를 찾아 빼내는 동안 시나몬 향을 퍼뜨리며 커피가 나왔다. 하얀 거품 위에 시나몬이 뿌려진 것이 먹음직스러웠다. 접시에는 볼펜도 함께 있었다. 희서는 종이를 앞에 놓고 생각에 빠졌다. 눈은 창밖으로 탁 트인 한강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부지런히 손을 움직여 글자를 써 내려가는 희서의 입엔 미소가 걸렸다.
가방 속에 넣어둔 전화기가 요란하게 진동했다. 수환이 분명했다. 받으려고 손을 뻗는 순간이었다. 어디선가 크고 무거운 것이 떨어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쿵' 하는 소리가 난 것 같았다. 땅이 밑으로 꺼지는 느낌에 테이블을 손으로 꼭 잡았다. 운석이라도 떨어진 건가. 창 밖을 두리번거리며 이상한 점이 없나 찾았다. 언제나와 다름없는 모습에 안심했다. 여전히 힘을 꽉 주고 있던 손을 떼어 다시 펜을 들었다. 땅이. 뾰족한 창 같은 것으로 찔러대기라도 하는 듯 위아래로 흔들렸다. 커피가 달그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흘러넘쳤다. 몇 명 없던 손님들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희서가 중심을 잡을 수 없어 일어나 엉거주춤하는 찰나 이번에는 온 세상이 옆으로 흔들거렸다. 시끄럽게 울어대던 커피잔이 바닥으로 떨어져 깨졌다.
테이블 밑으로 들어가 보려 했으나 중심을 잡을 수 없어 나동그라졌다. 사방에서 물건이 떨어지고 넘어지는 소리가 났다. 건물에서 끽끽거리는 이상한 소리가 났다. 희서는 편지와 종이가방을 품에 안고 꿈이라면 얼른 깨어나길 바라고 또 바랬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