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moon Osmanthus_9

아빠


“아빠!”



얼굴이 벌겋게 상기된 윤후가 문을 열며 소리쳤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기분 좋은 햇살은 맞아주는 사람 없이 침대만 비추고 있었다. 침대 위에는 깔끔하게 접힌 이불이 올려져 있었다. 늘 집에 세영이 있던 시절. 그녀는 물건이 조금이라도 흐트러진 것을 참지 못했다. 하루 종일 집안 곳곳을 다니며 쓸고 닦고 앉을 줄을 몰랐다.


열린 창문으로 불어오는 바람이 기분 좋은 날이었다. 끝날 것 같지 않은 찜통 같은 여름이 드디어 막을 내리려 했다. 오랜만에 찾아온 숨통 트이는 날씨에 수복은 엉덩이가 들썩들썩거리는지 자꾸 일어나 돌아다녔다.


“거기 좀 가만히 앉아 있어라.”


조용하고 작은 목소리가 날아왔다. 수복을 쫓아다니며 장난감을 들이밀던 윤후가 갑자기 소리가 난 곳으로 향했다.


“엄마! 안아줘.”


부엌의 활짝 열어젖힌 냉장고 너머로 빨간 립스틱을 바른 얼굴이 쑥 나타났다. 새빨간 립스틱 너머로 가려지지 않는 쪼그라들고 상처투성이의 입술이 웃고 있었다. 입술색만큼 붉은 냉장고 옆으로 갑자기 흰 얼굴이 튀어나오자 팔을 벌리고 달려가던 윤후가 뚝 멈춰 섰다. 눈을 꼭 감고 크게 입을 벌리고 있는 윤후는 꼭 사진 속 한 장면 같았다. 그러다 비명을 지르는듯한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때까지 빼꼼히 내밀고 있던 하얀 얼굴은 짧은 한숨과 함께 들어가 버렸다.


“괜찮아. 괜찮아. 우리 윤후 무서웠어?”


뛰어들 듯 다가온 수복이 냉큼 윤후를 안아 올렸다. 언제 다가왔는지 세영도 옆에 와 있었다. 그녀는 윤후의 등을 가볍게 두드리다가 두 팔을 내밀었다. 윤후는 여전히 눈물이 가득 담긴 눈을 꼭 감고 얼굴을 수복의 품으로 파묻었다.


“씨발.”


“여보. 애 앞에서 그게 뭐야. 우리말은 가려서 쓰지.”


“뭐? 이게 어디다 대고...”


고개를 치뜨고 수복을 바라보던 세영은 자신을 보고 있던 윤후와 눈이 마주쳤다. 담배 연기를 불어내듯 후 하고 긴 숨을 내쉬던 그녀는 뒤돌아 수복의 방으로 들어갔다. 한참 조용한 것이 담배를 피우는 모양이었다. 세영은 아이를 낳고 담배를 끊는가 싶더니 다시 피기 시작했다. 그것도 수복의 방에서. 자신의 방은 윤후와 함께 자야 해서 냄새가 배면 안된다나 뭐라나. 다른 곳 역시 별 다를 것 없다. 윤후가. 윤후가. 윤후를 위한다는 말에는 진심 대신 핑계가 배어 있었다.


수복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세영은 무슨 말을 하든 꼬투리를 잡아댈 것이 뻔했다. 게다가 지금은 아이 앞이지 않은가. 부부싸움을 일상 속 당연한 한 장면으로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안고 있는 윤후가 꼬물대는 것이 느껴졌다. 옷에 달린 버튼을 만지작대고 있었다. 집중할 때 생기는 이마의 주름이 세영을 꼭 닮았다. 수복은 자기도 모르게 엄지 손가락으로 주름을 만지작거렸다. 다림질이라도 하듯이 힘을 줘서 슥슥. 그런 수복을 바라보는 윤후의 검고 동그란 눈동자가 참 이뻤다. 웃으면 초승달처럼 변하는 그녀의 동그란 눈이 떠올랐다.


“야!”


방문이 벌컥 열리며 맞은편 벽에 부딪혔다 튕겨 나왔다. 수복은 깜짝 놀라 품에 안고 있던 윤후의 머리를 품 안으로 끌어들였다.


“침대 정리 제대로 안 해? 귀를 쳐드셨나.”


“거기 내 방이야. 마음대로 들락거리지 않았으면 좋겠어.”


“왜. 뭐 켕기는 거라도 계셔? 내 방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이 집을 누가 샀었는지 잊으셨나?”


“알았어. 조심할게.”


수복에 품에 폭 안긴 윤후는 말이 없었다. 그저 단추만 잡아당겨댔다.


그날 이후로 수복의 방 침대는 항상 깨끗이 정리되었다. 윤후도 은근 신경이 쓰여 아빠의 방을 몰래 체크했다. 어젯밤 저녁을 먹을 때에도 아빠는 없었다. 메다카와 노느라 엄마 몰래 불을 끈 채 늦게까지 놀았던 윤후는 잠이 들 때까지 아빠가 들어오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아빠는 늘 잠들기 전에 들어와서 함께 나란히 침대에 누웠다. 누워서 뒤척이던 윤후는 머리맡의 창문이 훤해지도록 혼자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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